2022년 12월 북한의 무인기들이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녔다. 이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외교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원한다면 우리의 과학기술로 오래 걸리지 않고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하거나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던 시기였다. 이 무렵 각종 여론조사에서 핵무장 지지율은 70%를 넘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한국인의 70% 이상이 핵무장을 원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는 북핵 고도화로 확연하게 달라진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할 것을 건의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런 소식을 접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우리의 핵무장에 동의할 날이 머지않다” “미국 의사와 관계없이 핵무장을 강행해야 한다” 등의 반응들이 나돌았다. 하지만 어떤 결론을 도출하든 핵무장 여론에 숨어 있는 ‘진실과 오해’를 먼저 식별해야 한다.
첫째, 핵무장 지지자 중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라는 정상적인 이유를 드는 사람이 많지만 “남북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통일을 해야 강대한 통일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강대국들이 핵 보유 통일한국의 등장을 용인하지 않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면 현실을 모르는 천진무구이고, ‘미·일과 맞먹는 핵 보유 연방제 통일국가’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위험한 좌파적 논리다. 어쨌든 ‘높은 핵무장 여론이 곧 높은 애국심’이라는 등식이 무조건 성립하지는 않는다.
둘째, 미국 내 핵무장 허용론에도 친동맹과 반동맹이 혼재한다. 가중되는 북핵 및 중국 위협 때문에 한국의 핵무장을 통해 동맹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친동맹 논리다. 신고립주의적 논리 아래서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반동맹파의 외침이다. 예를 들어 카토(CATO)연구소의 더그 밴도우 박사는 “미국이 왜 부자 나라들을 위해 돈을 쓰고 피를 흘려야 하는가”라면서 핵무장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철수하자고 주장해 왔다.
셋째, 정상적인 이유로 핵무장을 원하더라도 그 대가로 동맹을 포기해야 한다면 현재로서는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은 선택이다. 그것이 진실이다. 필자는 한국을 핵무장 강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호연지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오른 사람이다. 그러나 학위를 마칠 무렵에는 핵무장론자가 아니라 ‘평화적 핵주권론자’로 변신했다. 최악의 지정학적 여건에 놓여 있는 한국에 생존과 번영을 가능하게 해준 국제정치 메커니즘을 파괴해서는 안 됨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맹의 동의가 있기 전까지는 핵무장보다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등 국제규범의 틀 내에서 위급상황 도래 시 신속히 핵무장을 할 수 있는 핵잠재력을 키우자는 ‘평화적 핵주권’을 주장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30여 년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정부는 없었다.
요컨대, 정책결정자들은 국내 핵무장론이나 미국 내 핵무장 허용론에 혼재하는 반길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핵무장 여론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반겨야 하는 것이 아니며, 미국 내 신고립주의적·반동맹적 핵무장 허용론은 열광할 대상이 아니라 악몽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모 후보가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인가를 묻는 기자에게 “잘해 보라고 하세요(have a good time)”라고 퉁명스럽게 답하는 걸 보고 섬뜩함을 느껴야 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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