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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사고 예방활동, 그 시작

입력 2024. 04. 26   16:43
업데이트 2024. 04. 2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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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 소령 육군수사단 1광역수사단
오수정 소령 육군수사단 1광역수사단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마주 보며 웃던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죽었다. 사고 전날 교실 문을 나서던 그 친구와 우연히 눈이 마주쳐 “잘 가”라고 어색한 인사를 나눈 것이 마지막이 됐다. 밤새 악몽을 꿨다. 다음 날 등교하는 버스 안에선 뉴스가 흘러나왔다. 

종례 후 반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흐느낌이 시작됐다. 시간이 멈춘 듯 반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통곡했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고, 웃어도 공부를 해도 죄책감과 무기력감만 들었다. 사고 전날 어색하게 인사했던 그 친구의 무표정한 얼굴이 머릿속을 내내 맴돌았다.

몇 년 후 육군 군사경찰 병과 소위로 임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맡은 안전학습 과제가 ‘자살사고 예방교육’이었다. 교육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생각나서다. ‘좀 더 따뜻하게 관심을 보였더라면 그 친구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다시 밀려왔다. 앞으로는 방관자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미술심리치료·상담심리자격증 등을 취득했다.

부대원과 수용자 상담 때 집-나무-사람(HTP) 그림 검사를 활용할 기회가 있었다. 부대에서 임무 수행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았던 용사의 그림에 ‘자살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면담 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더니 “어떻게 알았냐”며 펑펑 울어 놀랐던 경험이 있다. 이후 상담을 받았던 용사에게 12회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과 면담을 진행했고, 그 결과 군복 입은 민주시민으로 건강하게 전역했다.

현재 나는 수사전문부대에서 근무 중이다. 최근 사고 현황을 종합하다 ‘자살 징후’ 항목을 작성하며 또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 고민 끝에 한마디를 흘리는 ‘징후’를 보이지만 주위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힘들다. 죽음 뒤에야 ‘맞아, 생각해 보니 평소와 조금 달랐어’라고 느끼는 것이 대다수다.

학창 시절 겪은 일로 ‘자살’이 얼마나 주변에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다.

‘자살사고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최근 전군으로 납품되는 의약품 봉투에 ‘혼자 힘들어하지 마세요! 국방헬프콜 1303’ 문구를 넣기 위해 군수사령부에 소요 제기를 했다.

이르면 올해 6월부터 연간 85만 장의 의약품 봉투에 이 문구가 반영된다. 작은 변화지만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는 장병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바쁘겠지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고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도와줄 건 없는지’ 이야기를 나눠 보자. 죽기 전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기만 해도 우리는 소중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우리 모두 소중한 전우를 지키는 마음지기임을 항상 생각하며 생명지킴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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