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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가득 뽀오얀 향 입안 가득 감칠맛 목포 바다가 휘몰아치다

입력 2024. 04. 2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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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골목 속으로 ⑦ 맛과 멋 부자 도시 ‘목포’

사람 북적이는 ‘민어 거리’
조기 사촌 민어, 살은 부드럽고 탕은 진해
그 어떤 생선과도 비교 불가
원도심 명물 간짜장 ‘중깐’
잘게 썬 고기에 훅 터지는 달걀노른자의 협업
이보다 맛있을 수 없다, 짜장면

르네상스풍 ‘근대역사관’
청년 쉼터 ‘괜찮아마을’
오라, 목포로…

 

목포 유달산 노적봉에서 바라본 목포대교와 구도심.
목포 유달산 노적봉에서 바라본 목포대교와 구도심.


일본 식민지 시절 그 어느 도시보다 부유했던 전남 목포는 여전히 부자다.
변변한 빌딩은 없어도, 서울이나 부산처럼 거대하지 않아도 목포는 가진 게 많다. 
목포는 특히 ‘역사 부자’다. 100년도 더 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입장료 없는 민속촌이다.
전북 전주·경북 경주와는 결이 다른 옛 향기로 가득하다.
목포에만 오면 마음이 바빠진다.
여기도 가야 하고, 저기도 가야 한다. 이것도 먹어 보고, 저것도 먹어 봐야 한다. 입도, 눈도 쉴 틈이 없다.
구성진 사투리에 휩싸인 채 그 옛날 불야성의 도시를 상상한다. 
돈이 넘치고, 사람이 넘치던 100년 전 번화가에서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특별하다.
페루의 마추픽추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처럼 목포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한국의 큰 자산이다.


민어의 도시, 맛의 도시


친구가 목포해양대 교수라서 종종 목포를 찾는다. 가면 그 비싼 민어를 항상 사 준다. 민어 거리가 따로 있을 정도로 목포 사람의 민어 사랑은 각별하다. 민어 거리에 가면 그 귀한 민어를 사계절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다.

민어는 조기의 사촌이다. 대부분 조기는 알아도 민어는 생소할 것이다. 조선시대, 아니 1970년대만 해도 민어는 흔한 생선이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남획으로 신분이 급상승했다. 비쌀 때는 마리당 40만 원이 넘는다. 살은 부드럽고 감칠맛은 그 어떤 생선보다 뛰어나다. 끓이면 곰탕 저리 가라고 할 만한 진한 국물이 우러난다. 민어탕의 맛은 그 어떤 생선 육수와도 비교 불가다.

왜 목포 음식은 맛이 좋을까? 그건 좋은 식재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가 세계 으뜸인 이유도 지중해를 끼고 있어서다. 라면집 반찬조차 남다른 목포에서 민어는 왕 대접을 받는다. 좋은 친구와 최고의 음식, 목포가 내게 특별한 이유다.

 
작은 포구에 흙을 채워 거대 도시 만들다

일본 식민지 시절 목포는 바다를 매립했다. 호남의 곡창지대에 군침을 흘리던 일본인들이 목포에 식민 지배기관을 설치했다. 일본인들은 매립한 땅에 반듯한 집을 짓고 살았다. 일본인이 모이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본인 마을이 됐다. 그 화려함과 이국적인 분위기는 당시 조선인들에겐 별천지였을 터. 수산물과 쌀과 사람이 오가는 부티가 철철 넘치는 도시였을 것이다.

지금은? 전남도청이 있는 남악신도시 쪽으로 상권이 옮겨 가면서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 쓸쓸함마저 멋스럽다. 옛 모습은 그 자체로 골동품이다. 시간이 갈수록 가치를 더한다. 100년 전 풍경을 일부러 조성한 영화세트장 같다. 감사한 마음마저 들 정도로 독특하고 이국적이다. 앙코르와트나 마추픽추에 열광한다면 목포 역시 같은 이유로 떠받들어야 마땅하다. 과거의 찬란한 영광이 식당 건물로, 카페로 변해 손님을 기다린다.
 

목포에서 맛볼 수 있는 간짜장 ‘중깐’.
목포에서 맛볼 수 있는 간짜장 ‘중깐’.


짜장면의 편견을 깨다…‘중깐’

기차를 타고 목포역에 내리면 바로 원도심이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동선이다. 맛집이 즐비하다. 목포는 민어나 홍어 같은 해산물이 워낙 유명하지만 사실 내게 목포는 짜장면의 도시다. 목포에서는 간짜장을 ‘중깐’이라고 부른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터줏대감 중국집 ‘중화루의 간짜장’을 줄여 ‘중깐’이 됐다고 한다. 지금은 중화루 말고도 여러 중국집이 경쟁하며 목포를 대표하는 명물 ‘중깐’을 요리한다.

고기와 채소를 잘게 썰어 볶는 게 ‘중깐’의 특징이다. 이제 서울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달걀프라이를 짜장면에 얹어 준다. 잘게 썰린 고기가 씹힐 때마다 감칠맛이 폭발한다. 때마침 터지는 달걀노른자의 협업은 짜장면 맛을 극강으로 끌어올린다. 짜장면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면, 목포의 ‘중깐’을 꼭 맛보길 권한다. 짜장면의 편견을 확실히 깨 줄 것이다.
 

유달산 기슭에 있는 ‘목포근대역사관’, 예전에 일본영사관으로 쓰이던 곳.
유달산 기슭에 있는 ‘목포근대역사관’, 예전에 일본영사관으로 쓰이던 곳.


이순신의 지혜, 유달산 노적봉

목포 구도심 산책이 끝났다면 유달산 노적봉을 올라 보자. 쉬엄쉬엄 올라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노적봉은 곡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봉우리란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기지로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은 산에 짚과 섶을 쌓아 군량미처럼 보이게 했다. 또 주민들에게 군복을 입혀 군인의 숫자가 훨씬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고, 백토 가루를 바닷물에 흘려보내 쌀뜨물을 흉내 냈다. 얼마나 많은 병사가 있기에 저 많은 쌀을 먹는단 말인가? 왜군은 그 규모에 압도당해 줄행랑을 치게 된다.

그 지혜 덕에 이곳은 지금도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인기 여행지가 됐다. 유달산 기슭에 있는 르네상스풍 일본영사관은 지금은 근대역사관으로 쓰인다. 작은 포구 마을이 조선을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을 사진자료들과 함께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쉼이 필요한 이들 대환영 ‘괜찮아마을’

상권은 아파트가 들어선 남악신도시로 진즉에 넘어갔지만, 청년들이 구도심에 모여 ‘괜찮아마을’을 조성했다. 어디든 젊은이들이 모여야 활력이 생긴다. 공장이나 변변한 직장이 없는 지방에서 탈출해 도시로 이동한다. 청년들에겐 꿈도 필요하지만 쉼도 필요하다.

목포는 그걸 재빨리 알아챘고 ‘괜찮아마을’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쉬어 가라고, 살아도 보라고 유혹한다. 군 전역 이후 목포에 머물면서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려 보는 것도 좋겠다. 관심 있는 이들은 ‘목포 괜찮아마을’을 검색해 보기를 바란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늘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를 틀어 놓으셨다. 우리나라 최고의 노래는 단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었다. 카세트테이프 잡음과 함께 들리는 목소리가 구성지고 절절했다. 꽃도 피고 지듯이, 도시도 피고 진다. 언제나 전성기일 수는 없다.

내 눈에 목포는 여전히 전성기다. 맛있는 음식들 천지고, 골동품처럼 우아한 건물들 천지다. 여행 고수들도, 삶에 지친 이들도 목포로 오라. 과거에 머물지 않고 더 젊어지는 목포가 보인다. 내일의 목포가 기대되는 이유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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