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이영미의 스포츠IN

찢어진 유니폼도 아랑곳하지 않고 타격 분석 골몰

입력 2024. 04. 16   16:44
업데이트 2024. 04. 16   16:53
0 댓글

이영미의 스포츠 in - ‘재키 로빈슨 데이’ 이정후의 활약 

모든 선수가 등번호 42번 다는 기념일

생소한 마이애미 구장서도 ‘허슬플레이’
천금같은 동점 적시타로 역전승 발판
멀티히트 포함 7경기 연속 안타 행진
어려운 여건 속 꾸준함에 감독도 칭찬

 

‘재키 로빈슨 데이’를 기념해 등번호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선 이정후(왼쪽 셋째). 필자 제공
‘재키 로빈슨 데이’를 기념해 등번호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선 이정후(왼쪽 셋째). 필자 제공



메이저리그는 해마다 4월 15일(현지 시간)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정하고 모든 선수들이 등번호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선다. 재키 로빈슨은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인종 차별의 벽을 깬 선수로 그가 데뷔한 1947년 4월 15일을 재킨 로빈슨 데이로 기념한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밥 멜빈 감독은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원정 경기에 앞서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재키 로빈슨 데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런 날이 있다는 게 멋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날에 대한 의미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야구 시즌 동안 특별한 날들이 있는데 오늘이 그중 하루다. 재키 로빈슨이 얼마나 개척자 같은 삶을 살았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가 이룬 모든 것들로 인해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야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정후도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원정 경기에 앞서 등번호 42번을 달고 더그아웃에 나타났다. 이정후는 처음 방문한 마이애미 말린스 홈구장인 론디포 파크에서 1번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1회초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이정후는 투 스트라이크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3구째 볼을 골라낸 다음 4구 84.6마일(136.1km/h)의 커브볼을 커트해냈고, 5구 볼까지 지켜본 다음 6구째 바깥쪽 높게 들어온 97.1마일(156.3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중견수 왼쪽에 떨어지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안타를 만들며 7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였다.

1루에 출루한 이정후는 2번 타자인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의 타석에 도루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이애미 선발 투수인 에드워드 카브레라가 이정후의 도루를 의식해 1루에 견제구를 던졌지만 이정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내 호르헤 솔레어 타석에서 초구에 과감히 2루 도루를 시도했는데 마이애미 포수 닉 포테스의 송구에 걸려 아웃 판정을 받았다.


몸을 사리지 않은 슬라이딩으로 이정후의 유니폼은 흙투성이가 됐다. 필자 제공
몸을 사리지 않은 슬라이딩으로 이정후의 유니폼은 흙투성이가 됐다. 필자 제공



4회 선두타자로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이정후는 초구 스트라이크 후 4구 연속 볼을 골라내면서 볼넷으로 출루한다. 이후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다음 호르헤 솔레어가 우전 안타를 터트리자 1루에 있던 이정후는 빠른 발로 2루를 향해 달렸고, 2루를 지나 3루로 슬라이딩을 해 들어간다.

세이프 판정 후 일어선 이정후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는 듯 했다. 맷 윌리엄스 코치(전 KIA 감독)가 다가왔고, 이정후는 바지 뒤쪽이 찢어졌다는 걸 확인한 다음 벤치에 신호를 보냈지만 경기가 진행 중이라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정후는 마이클 콘포토의 우전 안타로 홈을 밟았고, 팀의 첫 득점을 올렸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이정후는 바지를 바꿔 입으려 했지만 후속 타자들이 아웃되면서 그냥 찢어진 유니폼 그대로 수비하러 나선다.

4회말 마이애미의 공격이 끝난 후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이정후는 찢어진 바지를 입은 채 태블릿을 들고 한참 동안 영상을 본다. 투수 분석 영상 또는 자신의 직전 타석에서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통역 한동희 씨가 갖고 새 유니폼 바지를 갖고 오자 이정후는 더그아웃 뒤편에서 바지를 갈아입은 후 다시 나왔다.

7회 1사 후 타이로 에스트라다가 2루타를 치고 출루했다가 바뀐 투수인 조지 소리아노의 와일드 피치로 3루에 안착한다. 이후 마이크 야스트렘스키가 볼넷으로 1루에 나갔고, 패트릭 베일 리가 좌익수 뜬공으로 아웃되면서 3루에 있던 타이로 에스트라다가 홈을 밟게 돼 샌프란시스코는 2-3으로 마이애미를 추격한다. 다음 타자인 닉 아메드도 볼넷으로 나가자 마이애미의 스킵 슈메이커 감독은 앤드류 나르디로 다시 투수를 교체한다.

이정후는 2-1 카운트에서 3구 연속 파울로 대응하다 7구째 존 안으로 들어온 94.5마일(152.1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밀어쳐 좌전 안타을 만든다. 이때 2루에 있던 야스트렘스키가 3루를 지나 홈을 밟게 되면서 1타점 적시타, 3-3 동점을 이룬다. 이후 계속된 2사 1,3루에서 샌프란시스코는 대타 윌머 플로레스의 중전 적시타로 4-3 역전을 만들었고, 마침내 샌프란시스코는 4-3의 스코어를 유지한 채 경기를 마무리 짓는다. 이날 이정후는 4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경기 후 만난 이정후는 경기 초반 리드를 내줬다가 동점에 역전을 이룬 상황이 기분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특히 7회 동점 적시타가 터진 데 대해 “중요한 상황에서 치는 안타가 제일 좋고, 또 좋은 타구가 나온 것 같아 더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정후는 홈구장인 오라클파크 외엔 모든 메이저리그 구장이 처음 경험하는 곳이다. 야구장 뿐만 아니라 상대하는 투수들도 모두 처음이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정말 어려운 여건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밥 멜빈 감독은 이정후의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한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선수가 꾸준히 안타를 치고 출루하며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정후는 지금의 성적에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아직 적응할 것도 많고, 더 많은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찢어진 바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고 생존해 가는 것이다.


필자 이영미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다. 추신수, 류현진의 MLB일기 등 주로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세상, 그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필자 이영미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다. 추신수, 류현진의 MLB일기 등 주로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세상, 그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