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유엔 무용론과 주한 유엔군사령부

입력 2024. 04. 15   16:14
업데이트 2024. 04. 1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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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5개국은 거부권을 가진 무기한 임기의 상임이사국이고, 나머지는 임기 2년의 비상임이사국이다. 오직 안보리만 경제·외교제재, 군사행동 등 강제력을 집행할 수 있어 안보리를 빼면 유엔은 ‘팥소 없는 찐빵’이다. 그 안보리가 무기력증에 걸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테러, 핵확산 등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하고 있어 ‘유엔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안보리는 신냉전 구도하 중·러 합작이 기승을 부리면서 마비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입원치료가 필요한 중증이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다음 날 소집된 안보리에서 러시아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에 ‘셀프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해 9월 점령지 합병을 규탄하는 결의안도 거부했다. 북핵과 관련해서도 안보리는 2017년 2397호 이후 단 한 건의 제재도 결의하지 못했다. 매번 중·러가 “북한의 합리적 안보 불안을 먼저 해소해 줘야 한다”는 궤변을 앞세워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28일에는 러시아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을 거부했다. 매년 임기를 1년씩 연장하면서 작동해 온 이 기구는 올해 4월 말일부로 해산되며, 2006~2017년 동안 채택된 11개 안보리 결의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 기능은 사실상 소멸한다. 이렇듯 안보리가 ‘식물기구’로 전락하면서 매년 유엔총회에서는 특정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 횡포를 막는 안보리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다.

이론적으로는 상임이사국을 늘려 특정국의 거부권 오남용을 희석하는 방법이 있다. 일본, 독일, 인도 등이 이 방식을 원한다. 하지만 기존 상임이사국들이 비토권을 나눠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엔 헌장을 개정, 중·러 자격을 박탈하는 방법도 이론으로만 존재한다. 러시아는 1991년 소련연방 해체 시 구소련의 상임이사국 지위 승계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통보했고, 중국은 1971년 제26차 총회에서 59%의 찬성으로 상임이사국이 됐다. 즉 러시아는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고, 중국은 총회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유엔 헌장을 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장 109조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를 문제 삼아 헌장 23조의 상임이사국 명단에서 중·러를 빼자는 것인데 이 역시 총회의 3분의 2, 그리고 모든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찬성이 필요한 헌장 개정사안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거부하면 그만이다.

안보리 무력화로 인류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고도화, 미사일 발사, 불법 무기 거래, 노동자 해외 송출 등을 지속해도 유엔이 강제하기 어렵다. 누가 전쟁을 도발해도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위한 유엔군 파병은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안보리 결의 83호(1950.6.27)와 84호(1950.7.7)에 의거해 창설된 유엔군사령부(UNC)가 그대로 존치돼 있어 새로운 결의가 없어도 외국이 파병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고, 일본에는 한반도 파병 유엔군에 무기와 병참을 제공할 유엔사 후방기지(UNCRB)들이 유지되고 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이것이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전쟁 억제장치임을 모르는 젊은이가 많다. 하기야 필자도 젊은 시절 주권국의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유엔사를 해체하자고 했었다. 그때는 우리가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기적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한 평화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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