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가 있는 병영] 희망

입력 2024. 04. 11   16:03
업데이트 2024. 04. 11   16:07
0 댓글
조두현 시인
조두현 시인

 


길 잃은 이들에게
앞을 밝혀주는 것이 있다 
행복할 때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 끝에 섰을 때 오는 것이 있다 
살아있는 것들의 머릿속을 보라 
숨 쉬는 것들의 가슴속을 보라 
누구인들 절망의 고통이 없으랴 
어느 것인들 이별의 슬픔이 없으랴 
겉모습이 화려해도 
큰소리로 웃어도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모두가 포기하라 외칠 때 
우리가 무저갱의 구렁텅이에 떨어질 때 
거짓말처럼 그는 온다 
추락하는 것을 안아주며 
구원자가 되어 온다 
어두운 앞날에 빛을 비추고 
폭풍우를 물리쳐 태양이 떠오르게 한다 
원한다면 그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다 


<시 감상>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화란 우주의 무한한 에너지를 인간에게 쏟아붓는 비밀스러운 통로”라고 말했다. 흔히 시인을 가리켜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시인이 시를 통해 신의 전언(傳言)을 들려준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신이 시인을 통해 사람에게 전하는 시원(始原)의 말씀은 무엇일까?

판도라가 신에게 받은 상자를 열었을 때 모든 것이 사람 곁을 떠나갔어도 희망만은 마지막까지 남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줬다. 그래서 희망은 ‘추락하는 것을 안아주며/구원자가 되어 온다’. 희망은 ‘어두운 앞날에 빛을 비추고/폭풍우를 물리쳐 태양이 떠오르게 한다’. 심지어 ‘무저갱의 구렁텅이에 떨어질 때’조차 사람 곁에 있다. ‘무저갱’은 ‘바닥없는 깊은 구덩이, 즉 지옥’을 뜻하는 성경에서 따온 말이다. 희망은 ‘언제나 우리의 친구’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 곁을 지켜주는 희망은 신이 건네준 사랑과 다를 바 없다.

시인의 ‘희망’ 노래는 신화에 닿아 있다. 그의 ‘희망’ 노래는 상투적인 관념어가 아니라 신이 선사한 시원의 사랑 노래로 들린다. 절망과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언술을 들려주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래서 기쁨의 시든 슬픔의 시든, 시는 사람의 삶을 위로하고 희망을 북돋아 준다. 시는 삶이 우리를 아무리 여러 번 배신해도 살아 내야 한다는 희망의 노래, 다시 말하면 지극한 사랑의 노래다. 시인이 여러분과 함께 부르고 싶어 하는 노래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