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는 대로, 닿는 대로 ③ 이질적인데 매력적인…두 얼굴의 ‘당진’
걷다 멈춰 서서 찰칵찰칵
잔잔한 저수지에 화려한 관람차 ‘삽교호 유원지’
넓고 평온한 평야에 삐죽 서 있는 ‘신리성지’
낯선 풍경에 빠지고 품은 이야기에 끌려
인증샷 찍는 여행자들 북적
떠나기 아쉽다면 90년 전통 신평양조장 들러
연잎주 빚고 누룩전 부쳐보면 어떨까
10여 년 전 여행자들이 난데없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사진 하나 찍자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조금 특이했다.
여행자들은 지극히 실험정신이 투철한 작가의 미술작품,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댄 논두렁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했다. 이른바 ‘인생샷’을 위해서였다.
충남 당진시는 ‘인생샷’ 또는 ‘인증샷’이라는 신조어가 일반적으로 쓰이기도 전부터 여행자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던 곳이다. 전국 어디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을 많이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생샷’ 배경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도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핫플레이스를 찾는 당신, 이번 주말에는 당진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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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인생샷’ 명소, 삽교호 유원지.
최근 몇 년 사이 당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를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이곳이지 않을까. 삽교천은 충남 홍성군에서 발원해 예산과 아산, 당진평야에 물을 공급하는 하천이다. 물줄기는 서해로 향하는데, 바다와 접하는 구간에서 방조제를 만나 삽교호라는 이름의 거대한 인공저수지를 만들어 낸다.
어떻게 생각하면 흔한 풍경일 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곳을 찾는 여행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유가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모내기를 시작한 논과 화려한 놀이공원이 그 주인공이다. 이 둘의 조화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질적인 풍경 덕분인지 몇 년 전부터 이색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프레임을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삽교호 놀이동산은 오래전부터 그곳에 자리했는데 말이다. 논과 함께 어우러지는 대관람차 역시 나름대로 역사가 깊다. 인생샷 한 장 찍고 떠나기보다는 슬렁슬렁 거닐며 산책을 즐겨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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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원조는 여기, 아미미술관
아미미술관은 설치미술과 폐건물이라는, 이전까지 흔하지 않았던 조합을 선보이며 전국 각지의 예술공간을 ‘인생샷 핫플레이스’로 탈바꿈시켰다.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해 만든 곳으로,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생태미술관’을 지향한다. 교실도, 운동장도, 앞마당과 뒷마당도 그대로다. 건물을 뒤덮은 담쟁이덩굴과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줬던 아름드리나무들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복도를 따라 작품이 이어진다. 주로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이 전시된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작품은 독창적인 분위기의 포토존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꾸려 나가는 박기호 작가와 구현숙 설치미술가가 작품 선정부터 배치까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다.
미술관 내에는 쉬어 갈 만한 공간이 많다. 초록으로 가득한 오솔길이 건물 뒤로 조성돼 있으며,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 ‘지베르니’도 운영 중이다.
90년 역사의 전통주 양조장, 신평양조장
당진에는 드넓은 평야에서 기른 ‘해나루쌀’로 막걸리를 빚어내는 90년 전통의 양조장이 있다. 지역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신평양조장’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양조장답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정성껏 술을 만들어 내는 게 이곳의 특징이다. 특히 대표 상품인 ‘백련막걸리’는 발효 과정 중 연꽃잎을 첨가해 독특한 향과 깊은 맛을 구현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해 투어 및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애주가가 아니어도 좋다. 양조장의 역사와 막걸리의 다양한 활용방법 등을 배우는 시간이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신평양조장은 양조박물관과 체험장을 별도로 갖춰 손님을 맞이한다. 양조박물관은 오래된 쌀창고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박물관에는 신평양조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유물과 기록이 전시돼 있다. 1933년 1대 김순식 대표를 시작으로 2대 김용세, 3대 김동교에 이르기까지 한자리에서 켜켜이 쌓아 올린 전통주의 역사를 여러 전시물을 통해 소개한다. 여러 번 붙인 항아리, 막걸리 생산 및 판매기록, 옛날에 사용했던 술병과 말통 등등 양조장의 시간이 묻어나는 물건이 가득하다.
전통주에 관심이 많다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연잎주 빚기, 쌀누룩 입욕제 만들기, 누룩전 부치기, 막걸리 소믈리에 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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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풍경으로 유명한 신리성지
당진은 천주교 성지가 많은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서해와 접해 있으며, 충청도 내륙으로 이어지는 교통편이 잘돼 있어 천주교가 뿌리내리기 쉬웠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박해가 자주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합덕평야 한가운데 자리한 신리성지는 조선 후기 천주교가 한반도 구석구석을 스며들도록 노력한 신부와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이었다. 제5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마리 다블뤼 주교의 거처 또한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박해 때마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가 특히 더 많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신리성지는 오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성지 내에 흐르는 고요한 공기는 핍박의 역사를 끊임없이 되뇌기라도 하듯이 무겁고 엄숙하다. 그렇다고 마냥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탁 트인 하늘과 드넓은 들판이 평온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곳을 찾는 모든 성지순례자가 마음의 안식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성지 내 산책로를 따라 거닐어 보자. 가톨릭 성인의 이야기를 담은 비석과 안내문, 조각상이 곳곳에 자리한다. 순교미술관의 독특한 모습은 신리성지를 더욱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다. 신리성지를 찾는 이들에게 이 건축물은 최고의 배경이다.
천주교 신자라면 순례길을 걸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솔뫼성지까지의 길은 꽤 긴 편이지만, 중간에 만나게 되는 당진평야는 모내기 철을 맞아 한껏 푸릇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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