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모형으로 만나는 항공기 세상

6·25 직후 피폐해진 국민 위해…자존심 회복과 행운 빌며 우리만의 ‘1007호’ 제작

입력 2024. 04. 03   16:00
업데이트 2024. 04. 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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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으로 만나는 항공기 세상 - 대한민국 최초 항공기 ‘부활호’

공군 기술학교 교관진 중심으로 제작

현재 공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 중
당시 외형 도면 기초로 작업방법 고민
모델링 과정에서 각 파트 부품화

 

제작 완료된 1/48 스케일의 부활호 요소별 라운델과 구조가 보인다. 필자 제공
제작 완료된 1/48 스케일의 부활호 요소별 라운델과 구조가 보인다. 필자 제공

 

3D 모델링. 필자 제공
3D 모델링. 필자 제공



우리 민족은 창조 DNA가 풍부하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 하늘을 날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항공기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6·25전쟁이 정전 상태로 끝나고 모든 것이 피폐한 상황에서 공군은 공군 기술학교 교관진이 중심이 돼 우리만의 항공기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1953년 항공기 설계 제작 실습 및 훈련기로 제작된 부활호의 탄생이다. 당시 이름도 없는 상태에서 제작된 부활호는 훈련기와 연락기로 사용되다가 1954년 4월 3일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復活(부활)’이라는 휘호를 하사해 부활호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어찌 됐든 부활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경항공기로 탄생됐다. 물론 이전에 해군의 해취호가 있었지만 해취호는 개조 성격이 강했다. 부활호는 설계부터 제작, 시험, 운영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이뤄진 이유로 대한민국 최초의 항공기다. 이 항공기를 둘러싸고 다양한 사연도 존재하는데 대부분 항공기는 기체 고유번호를 부여받는데 항공기 제작 연도와 제작 순서를 이용해 항공기의 기체번호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기체 번호는 53-001이 되는 것이 맞지만 국산 1호기인 부활호는 1007호다.

이는 기체 번호의 1000은 1950년 9월 1일 L-4 항공기를 몰고 다부동 상공에서 산화한 천봉식 중위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지막 7은 국민들에서 행운을 기원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즉, 부활호는 단순히 최초의 항공기라는 타이틀보다 당시 우리 민족의 자랑이고 자부심이었다.


3D 프린터 출력. 필자 제공
3D 프린터 출력. 필자 제공

 

명명식에 참가한 부활호. 이원복/공군역사기록관리단 제공
명명식에 참가한 부활호. 이원복/공군역사기록관리단 제공



이후 1960년에 한국항공대학으로 옮겨져 제작 실습용으로 사용되다가 한국항공대학이 1966년 2월 문을 닫으면서 부활호 역시 사라졌다. 물론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원제작자인 이원복님의 끈질긴 수소문과 노력 끝에 부활호는 2004년 1월 13일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서 발견됐다. 경상공고가 폐교된 한국항공대학 자리에 들어서면서 지하창고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발견 당시 부활호는 뼈대만 남아 있었고, 공군은 이를 복원해 공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했다.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 411호로 지정됐다. 사실 이 복원은 개량 제작으로 실제의 복원이 아니라 레플리카에 가깝다.

부활호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당시 군사원조로 공급된 알루미늄 합금 골격재와 판재를 사용했으며, 조종석의 일부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당시 설계 기술이 충분하지 않아 개략설계를 하고 현장 맞춤식으로 제작했다.

연구개발 필수요소가 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이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완성된 부활호는 꼬리 바퀴식(tail-dragger) 항공기였는데 특이한 점은 꼬리바퀴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보통의 꼬리 바퀴식 항공기와 달리 꼬리 바퀴가 2개이며, 동체 중간 아래쪽에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상에서 기수의 높이를 낮춰 지상활주 시 전방 시야를 좋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반도라는 대한민국의 지리적 특징상 수상기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주 바퀴다리의 바퀴를 떼어내고 부주(float)를 설치할 수 있었다. 이때 2개의 꼬리 바퀴는 2개의 부주를 고정하기 위한 하드 포인트로 사용한다. 또한 전단을 살포하고 사진 촬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동체 뒤쪽에 여닫을 수 있고 투명한 투하창이 설치됐다.




필자는 부활호를 제작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오래전부터 수집해왔다. 하지만 다른 사례처럼 별다른 소득은 없었지만 관련 업계의 지인으로부터 입수한 당시 외형 도면을 기초로 제작 방법을 고민했다. 최초의 제작은 1/48 세스나 기체를 개수해 만들었으나 전체적인 비레나 디테일이 문제가 있어 만들어 본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 후 오랫동안 도면을 기초로 3차원(3D) 모델링을 진행했으나 3D 프린터의 해상도가 문제가 돼 원하는 만큼 출력의 퀄리티를 내지 못하다가 2022년 액상 기반의 DLP 프린터를 활용해 출력했다. 4K의 해상도를 가지고 있는 장비라 원하는 디테일을 표현할 수 있었다. 모델링 과정에서도 실질적으로 프라모델과 같이 실내를 재현할 수 있도록 각 파트를 부품화해 제작했다. 액상 프린터의 경우 긴 물체는 휘는 문제가 있어 동체 길이보다 긴 주익 때문에 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려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지속해서 휘어 결국 내부에 2㎜ 황동봉을 삽입해 휨을 방지했다.

3D프린터의 경우 아주 세밀한 부분의 표현이 가능해 엔진부의 인테이크 형상이나 동체의 도어 부분 표현, 동체의 동작부분 등은 모델링에서 표현해 출력했다. 세부적인 부분인 주익지지대, 랜딩기어 파이프 등 가는 부품은 황동봉 등을 이용해 제작하게 된다. 투명부 즉, 콕핏 글라스는 프린팅으로 제작이 어려워 3D프린팅으로 형상을 제작한 후 진공성형기를 이용, 투명 플라스틱을 열성형해 제작했다.

물론 사출물처럼 완벽하지 않지만 이미 많은 모델러가 사용하는 방식이라 최선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항공기 모델에서 조종석은 매우 중요하지만 부활호 내부 모습은 구할 수 없어 세스나 조종패널을 단순화해 제작했다. 3D프린팅물들은 기존 플라스틱과 달리 일반 접착제가 아니라 순간접착제를 활용해 제작한다. 제작 특성이 플라모델과 달라 접합 후 많은 후작업(성형, 사포질, 평탄화)을 했다. 부활호 제작 프로젝트는 재현을 위해 오랜 시간의 준비 작업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방법과 도구를 사용해 제작한 사례가 됐다.

대한민국의 최초 항공기라는 상징성과 제작 및 운영, 실종, 발견, 복원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부활호를 제작하면서 제작 기법의 숙달과 만족도를 떠나 민족적 자긍심도 갖게 됐다. 하지만 다른 사례들과 같이 근대화 과정에서의 많은 것이 잊히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필자 유승용은 동서울대 교수이며, 항공기 관련 스케일 모델러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 『ROKAF COLORS VOL.1 대한민국공군 특수비행팀 블루세이버 1956~1966』 등이 있다.
필자 유승용은 동서울대 교수이며, 항공기 관련 스케일 모델러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 『ROKAF COLORS VOL.1 대한민국공군 특수비행팀 블루세이버 1956~196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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