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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몸, 아름답다

입력 2024. 04. 02   17:03
업데이트 2024. 04. 0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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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이 보여주는 현대사회와 인간의 삶


복잡한 룰·언어 장벽 뛰어넘은
100인의 서바이벌 몸 대결
1위부터 100위까지 낙인
일생 경쟁 쳇바퀴, 우리 삶 그 자체
환희와 절규, 땀 흘리는 그대들
원초적 승부에 빨려 들어가

‘피지컬: 100 시즌2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피지컬: 100 시즌2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20대 초중반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성인이 된 이후 규칙적인 생활이나 운동 비슷한 것에 매진한 적이 전혀 없다. 그러니 최고의 피지컬을 찾기 위한 100인의 서바이벌 따위에 흥미가 쉬이 생길 리 만무했다. 지난해 넷플릭스 ‘피지컬: 100’의 글로벌 흥행, 다시 돌아온 ‘피지컬: 100 시즌2-언더그라운드’의 시끌벅적한 스타트에도 시큰둥하게 한참을 요지부동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누른 플레이 버튼으로 인해 빨려 들어간 ‘피지컬: 100 시즌2’의 화면 속 세상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서바이벌이란 자고로 이런 것이지!’라는 감탄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복잡한 장치나 어려운 설명조차 없다. 그저 원초적인 승부와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서바이벌 예능은 역사가 켜켜이 쌓이는 과정에서 더 복잡해지고 다면화됐다.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라가는 소비자의 피로도 축적될 수밖에 없던 상황. 물론 표면적으로는 충분히 ‘서바이벌의 진화’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만큼 전체 프로그램의 만듦새는 보다 세련되고 훌륭하게 변화했지만, 때로는 복잡한 룰이 유발하는 뇌의 과부하 없이 순수하게 보고 몰입할 수 있는 원초적 경쟁에 갈증이 있었던 듯싶다. ‘피지컬: 100 시즌2’를 시청하는 동안 그러한 감정의 골이 조금씩 차오르는 기분에 휩싸였다.

핀 조명을 받은 100명의 참가자가 무동력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동시에 질주하는 프리 퀘스트는 놓치기 아까운 장관이었다. 100명에서 50명, 50명에서 10명, 그리고 최후의 1인으로 축약되는 과정은 엄청난 규모에 비해 집요할 만큼 단순하고 명료했다. 땀, 기합, 흐트러진 호흡, 환희와 절규 등이 한데 뒤엉킨 그곳에서 딱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많이 뛰면 족했다.

이어지는 퀘스트도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구성됐다. 주어진 3분 안에 공을 차지하는 ‘일대일 데스매치’, 더 많은 무게를 각자 팀의 저울로 옮겨 채우는 ‘미로 점령전’, 제한된 기둥을 차지하는 ‘기둥 쟁탈전’ 등 뭐가 됐든 명쾌한 숫자와 선명한 결과치로 순위를 매겨 승자와 패자를 정확하게 갈랐다. 참가자는 순차적으로 살아남거나 탈락했다.


‘피지컬: 100 시즌2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피지컬: 100 시즌2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광산 운송전’이 치러진 지하광산을 모티브로 한 세트장의 위용은 ‘피지컬: 100 시즌2’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선덕여왕’ ‘마마 어워즈(MAMA AWARDS)’ 등의 작업을 했던 이영주 미술감독과 대형 스테이지 작업 전문가인 김광석 세트감독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한 공간이었다. 더불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김성수 음악감독이 시즌1에 이어 시즌2에도 참여해 ‘보는 맛’에 ‘듣는 맛’까지 더했다.

이렇게 공들여 탄생한 ‘피지컬: 100 시즌2’는 이번에도 글로벌 흥행을 빠르게 일궈 낸 분위기다.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 TV쇼 부문 1위에 올랐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87개국 톱10 차트인에 성공하기도 했다. 브라질의 테크투도(TechTudo)는 ‘피지컬: 100’이 성공한 이유를 다루며 “여전히 재밌고 강렬하며 원초적”이라고, 남미의 FINDE LT는 “‘피지컬: 100’은 K드라마뿐 아니라 한국 논스크립티드 콘텐츠가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호평을 내놓았다. 참가자 100인이 한 공간에 모여 몸으로 대결한다는 심플한 설정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누구라도 직관적 이해를 가능케 도운 모양새다.

‘피지컬: 100 시즌2’에 다수가 매료됐던 것은 단순하고 명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서바이벌은 의외로 우리 삶과 깊숙이 밀착해 있고, 굉장히 닮은 구석들이 존재한다. 시작과 함께 1위부터 100위까지 낙인을 찍고, 순위에 따라 일정 부분의 베네핏을 부여한다. 획득한 순위와 성적은 누적되고, 이후 경쟁의 순간에 남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경쟁이라는 쳇바퀴를 돌며 끊임없이 순위와 등급이 매겨지는 현대의 삶. 남보다 더 높은 성적을 거둬 더 좋은 학교에 가고, 더 나은 직장에 취업해 더 확실한 성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더 비싼 집에서 더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려 쉬지 않고 부단히 애를 쓴다. 유한한 재화를 얻기 위해 우리는 좋든 싫든 타인과 무한한 경쟁을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누군가의 동료가 되거나 상황에 따라 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향한 노력보다 경쟁자를 막아서고 끌어내리는 변칙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생긴다.

‘미로 점령전’에서 경쟁팀의 운반을 통로에서 저지하는 모습이나 패자 부활을 위한 ‘기둥 쟁탈전’에서 아군과 적군이 뒤바뀌어 협동과 경쟁이 빠르게 오가는 모습은 그래서 익숙하다. 한 참가자가 협공당하는 팀원을 돕고자 자신이 붙들고 있던 기둥을 놓고 달려갔다가 탈락하자 “왜 그랬어”라는 관중석의 야유와 탄성이 날아와 박힌다. 스스로도 “아, 선비 짓을 하면 안 되는구나”라며 자책하는 인터뷰는 현실과 왠지 맞닿는다. ‘팀플레이’는 또 어떤가.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상황에 직면해야 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능력은 언제나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이다. “팀전은 우리 사회를 예능적으로 조명한 것”이라고 했던 장호기 PD의 말은 곱씹어 볼수록 그 맛이 쓰디쓰다. 실제 우리 인생과 사회가 고스란히 투영된 ‘피지컬: 100’은, 어쩌면 서바이벌을 빙자한 우리 삶의 단면 그 자체가 아닐까.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느려도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느려도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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