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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책임 면하려 용병기업 고용 골치 아픈 일 맡겨

입력 2024. 03. 22   16:41
업데이트 2024. 03. 2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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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과 민간군사기업
군납업자라 불리며 경호·자문에 중점
유엔 1989년 용병 관련 모든 활동 금지
소련 붕괴 후 상당수 군인 PMC 합류
우크라이나전 계기 직접 대리전 수행
러시아 국방부 장관 용병 모집 포고령
국가가 PMC 전쟁 개입 공식화한 셈
목적 달성 위해 수단 안 가리는 기업
국제인도법 준수 기대하기 어려워

바그너그룹 부대원들이 지난해 6월 24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서 탱크를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바그너그룹 부대원들이 지난해 6월 24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서 탱크를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전이 발발한 지 2년이 지났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장기집권이 확정되면서 전쟁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를 군사 지원했던 바그너그룹이 반란을 일으키고, 푸틴의 측근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의문사하면서 민간군사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에 관심이 높아졌다.

PMC는 국가 등과 계약을 맺고 국방 분야에 종사해 ‘Contractor’로 불리기도 한다. PMC는 일반기업처럼 법인(法人)으로 등록하고 직접적인 전투 수행이 아닌 경호, 군사지원, 군사훈련 또는 군사자문을 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바그너그룹을 비롯한 PMC가 조직적으로 대리전쟁을 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기존 PMC 역할과 큰 차이점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거의 모든 전쟁에는 용병(傭兵)이 존재했다. 본격적으로 용병산업이 수면으로 올라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많은 국가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상당수의 신생 독립국이 정치적 불안정기를 겪었다. 정부와 반란단체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했고, 군사역량이 부족한 정부 또는 반란군을 대리해 용병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제인도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유엔과 아프리카연합(AU)을 중심으로 용병을 법적으로 규제하고자 했다. 1977년에 체결된 ‘1949년 8월 12일 자 제네바 제협약에 대한 추가 및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 제47조는 최초로 용병의 전투원 자격과 포로 지위를 부인했다. 이때부터 용병은 전투 중 생포되면 포로가 아닌 범죄자로 처벌받게 됐다.

나아가 유엔은 1989년 ‘용병 모집·이용·자금조달·훈련의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Against the Recruitment, Use, Financing and Training of Mercenaries)’을 맺어 모든 용병 관련 활동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연합뉴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연합뉴스


용병산업이 급성장한 계기는 소련의 붕괴에 따른 냉전 종식이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군비 축소에 나서자 상당수 베테랑 군인이 군에서 퇴출당해 PMC로 흡수됐다. 서구 국가들은 유지비용을 줄이고자 남아 있는 정규군의 일부마저 PMC로 대체했다. 그런데 PMC도 과거 용병처럼 국제인도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면서 PMC 규제와 함께 고용국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제여론이 형성됐다.

이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스위스 정부가 PMC의 국제법 위반행위에 대해 국가 책임을 규정한 ‘몽트뢰 지침(Montreux Document)’을 제시했다. 2010년에는 PMC 대표와 NGO, 관심 국가 등이 모여 ‘민간군사기업을 위한 국제행동규범(International Code of Conduct for Private Security Service Providers)’을 제정했고, 2013년부터 PMC를 회원으로 하는 국제행동규범협회(ICOCA)가 설립돼 자발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PMC와 고용국은 국제적 감시와 자구 노력에 역행해 국제인도법을 위반하고 있다.

국가가 PMC를 적극 활용하는 주된 이유는 국가 책임을 면제받기 위해서다. 법인화된 PMC와 용역계약을 체결해 골치 아픈 일들을 처리하지만,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국가 책임과 정치적 비난은 용역을 수행한 기업에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군사기업을 다룬 2018년 개봉 한국 영화 ‘PMC’ 포스터.
민간군사기업을 다룬 2018년 개봉 한국 영화 ‘PMC’ 포스터.


사망한 프리고진의 반란이 있기 직전인 2023년 7월 1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PMC에 참여하려는 개인은 국방부를 통해 계약해야 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포고령 이후 러시아 국방부는 해당 병무 담당관실에서 PMC와 의용군 자원 입대자를 모집하고 충성맹세 의무를 법령으로 강제했다. 이때부터 PMC는 러시아군 일부를 구성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상 국가가 PMC의 전쟁 개입을 공식화한 셈이다. PMC의 포로 학대·고문, 민간인 학살 등 반인도적 범죄 혐의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그동안 PMC가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의용병인지, 러시아군의 지휘·통제를 받고 있는지 불분명해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어려웠는데 포고령 발령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러시아 정부는 바그너그룹이 죄수들을 상대로 조직원을 모집할 때 이를 적극 지원했다. 심지어 죄수들이 바그너그룹에 지원하면 남은 형기를 사면해 준다고 약속했다. 보도에 따르면 5000명의 죄수가 바그너그룹에 지원한 것을 근거로 형을 면제받았다. 만약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그룹을 비롯한 PMC의 전쟁법 위반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를 방지하려 노력하지 않거나 위반자를 적절히 처벌하지 않았다면 전쟁법 위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한 데 대해 국가 책임을 추궁받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방어로 막대한 피해를 본 러시아가 동원령의 국민적 저항 타개 및 부족한 병력 확보를 위해 PMC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패로 끝맺은 바그너그룹의 반란사태는 차치하고서라도 러시아의 PMC 활용이 과연 성공적이었는지 의문이다. PMC는 이윤 추구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사기업으로 목적 달성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고용국의 감시와 통제 없이는 정규군 수준의 국제인도법 준수를 기대하기 힘들다.

PMC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국제인도법 위반행위는 그러한 면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결국 스웨덴과 같은 중립국마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에 맞서는 나토 회원국이 됐으니 러시아가 전쟁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나토 확장 방지라는 목표는 이미 실패했다.

현대전에서 국제인도법 위반으로 전투에선 승리해도 전쟁에선 패배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러나 충분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는 유사시 러시아와 같이 PMC를 전투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해 전투에만 승리하고 전쟁에 패배하고자 하는 국가가 아니라면 그럴 때일수록 PMC에 대한 통제와 감시, 국가 책임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필자 김회동은 미 에모리대에서 법학 박사를 취득하고 국제인도법(전쟁법)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법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한국제법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필자 김회동은 미 에모리대에서 법학 박사를 취득하고 국제인도법(전쟁법)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법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한국제법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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