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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뚫을 듯 한없는 상승과 땅에 닿을 듯 하강의 선들…시카고, 라인 예술이네

입력 2024. 03. 14   17:02
업데이트 2024. 03. 1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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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볼까 미국여행 ③ 양파 같은 도시, 시카고 

석조건물·현대건축 한데 어우러진 빌딩숲…높이도 디자인도 제각각 스카이라인, 마치 예술작품인 듯 
유람선 타고 건축투어, 442m·103층 전망대서 야경투어
선술집서 블루스 음악에 취하고, 두툼한 딥 디시 피자 맛에 취해볼까

 

시카고강을 따라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크루즈 건축투어’.
시카고강을 따라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크루즈 건축투어’.



‘떠나볼까 미국여행’ 연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도시를 소개한다. 미국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국립공원과 대자연이라고 생각하지만, 도시를 선망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 말이다. 어디부터 가 볼까. 최대 도시 뉴욕은 가장 아름다울 때인 가을로 미룬다.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LA), 그러니까 서부 캘리포니아주 도시는 사계절 언제 가도 좋으니 역시 다음 기회에.

그래서 떠오른 도시가 시카고다. 시카고 하면 딱히 연상되는 이미지가 없을 수도 있다. 마이클 조던이 활약했던 미국 프로농구(NBA) 농구팀 시카고 불스나 뮤지컬 ‘시카고’ 정도랄까. 시카고는 양파처럼 겹겹이 매력을 간직한 도시다. 한 꺼풀씩 그 매력을 벗겨 보자.


300m 넘는 건물만 7개

시카고는 마천루의 도시다. 하늘을 가린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높이 150m를 넘는 빌딩이 125개, 300m를 넘는 빌딩이 7개나 된다. 고층 건물 숫자는 뉴욕이 더 많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미국 최고의 건축도시로 시카고를 꼽는다. 단지 높은 빌딩이 많아서가 아니다. 흥미로운 도시 형성의 역사와 빼어난 건축미 때문이다.

근사한 고층 건물을 감상하기 위해 도시를 헤집고 다닐 필요는 없다. 시카고강을 떠다니는 유람선을 타고 건축투어를 즐길 수 있다. 시카고건축재단에서 90분짜리 ‘크루즈 건축투어’를 운영한다. 윌리스타워, 트리뷴타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름이 큼직하게 걸린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 타워 등 유서 깊은 건물과 기괴한 현대건축물을 관람할 수 있다. 낡았지만 기품 있는 석조건물과 서 있는 게 위태해 보이는 기하학적 건물이 유람선 좌우로 슬라이드 필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높이도 디자인도 제각각이지만 여러 건물이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예술작품 같다.

시카고에는 고층 건물이 왜 이리 많을까?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1871년 대화재 당시 목조건물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후 도시 재건 과정에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인구 유입과 경제 발전을 예측해 고층 빌딩을 올리기 시작한 것. 이전까지 최고 5층 건물이 대부분이던 시카고에 10층·20층짜리 건물이 척척 들어섰다. 현재 시카고 인구는 약 297만 명으로 뉴욕, LA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많다.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윌리스타워(110층, 442m)다. 1980년대까지 세계 최고층 빌딩의 지위를 누렸던 윌리스타워는 필수 방문코스로 꼽힌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1분 만에 103층 전망대에 닿는다. 건물 밖으로 툭 튀어나온 유리바닥 위에 서면 오금이 저릿저릿하다. 100층짜리 건물인 존 행콕 센터의 전망대 ‘360 시카고’에서 야경을 감상하며 칵테일을 마시는 것도 좋다.

시카고에는 높은 건물만 있는 건 아니다. 시민 쉼터이자 공공예술 전시장인 밀레니엄파크에서도 독특한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볼 수 있다. 시카고의 상징인 조각품 ‘클라우드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인도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으로, 철판 168개를 붙였다는데 이음매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쪽같다. 공원 주변 고층 건물이 ‘클라우드 게이트’에 왜곡된 형태로 비치는 모습도 이채롭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만든 야외공연장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도 꼭 봐야 한다. 철판으로 만든 무대 디자인이 기묘하다. 이 자리에서 블루스·재즈 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열린다. 주말에는 벼룩시장이 서고, 봄부터 가을까지 크고 작은 공연도 곳곳에서 진행되니 공원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미리 살펴보면 좋겠다.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 있는 야외공연장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필자 제공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 있는 야외공연장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필자 제공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윌리스타워 전망대 에서 바라본 풍경.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윌리스타워 전망대 에서 바라본 풍경.

 

도심의 오래된 건물들.
도심의 오래된 건물들.

 

블루스 클럽 ‘킹스턴 마인스’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다.
블루스 클럽 ‘킹스턴 마인스’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다.



블루스의 본고장

시카고는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전자음악(EDM)의 뿌리인 하우스를 비롯해 재즈·R&B 등 수많은 음악 장르가 시카고에서 탄생하고 발전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시카고의 음악은 블루스다. 유명 식당이나 술집, 심지어 시장 한편에서도 블루스 연주가 들린다. 원래 블루스는 남부지방에 사는 흑인 노예들의 음악이었다. 19세기 말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한 시카고로 흑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그들의 음악도 북상했다.

블루스의 본고장에 왔으니 블루스 공연을 본다면 각별한 추억으로 남을 터. 1968년에 문을 연 블루스 클럽 ‘킹스턴 마인스’와 유명한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버디 가이가 운영하는 식당 ‘버디 가이스 레전드’ 등이 유명하다. 시카고 강변엔 ‘하우스 오브 블루스’라는 재미난 공연장도 있다. 매일 밤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는데, 가수도 음악도 낯설 수 있다. 그래도 체험 차원에서 ‘미국 본토 블루스의 맛’에 취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카고식 피자로 불리는 ‘딥 디시 피자’.
시카고식 피자로 불리는 ‘딥 디시 피자’.



다양한 먹거리도 눈길

시카고를 대표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피자다. 시카고식 피자로 불리는 ‘딥 디시(Deep Dish) 피자’가 그 주인공이다. 1980년대부터 시카고에 살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이 이 피자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내기도 했다. ‘딥 디시 피자’는 두툼한 도우 안에 묵직하게 토마토소스와 시금치 같은 채소, 치즈를 넣어 굽는다. 피자를 굽는 팬이 깊어 ‘딥 디시 피자’다. 한국인이라면 한두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큼직하다. 지노스 이스트, 지오다노, 핏제리아 우노가 대표적인 ‘딥 디시 피자’ 맛집이다.

시카고는 소고기 스테이크도 유명하다. 중부 목장지대가 가까워 예부터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 여러 소고기 요리 중에서도 4~6주간 저온 숙성한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깁슨스 바 & 스테이크하우스가 대표 맛집이다.

시카고를 여행한다면 꼭 들러 봐야 할 카페도 있다. 스타벅스(시애틀), 블루보틀(오클랜드), 커피빈(LA) 등 한국에도 진출한 미국의 국가대표 카페는 대부분 서부가 원조다. 중·동부지역의 커피 브랜드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낯선데, 최근 시카고에서 탄생한 카페 ‘인텔리젠시아’가 서울 서촌에 상륙했다. 인텔리젠시아가 미국 외에 점포를 낸 건 한국이 최초다. 1995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최고급 원두를 사용하고 묵직한 탄 맛보다는 화사한 산미로 유명하다. 커피 맛도 맛이지만, 시카고 시민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공간에 잠시 머무는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정말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이 활약했던 농구팀 시카고 불스나 전통의 명문 야구팀 시카고 컵스의 경기를 ‘직관’하는 걸 추천한다. 이정후나 오타니 쇼헤이처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선수는 없어도 어떤가. 야구와 농구의 본고장에서 그 열기를 느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필자 최승표는 중앙일보 레저팀 기자다. 국내외 여행 기사를 두루 쓰고 있다. 미국 15개 국립공원을 취재한 뒤 『미국 국립공원을 가다』(공저)를 펴냈다.
필자 최승표는 중앙일보 레저팀 기자다. 국내외 여행 기사를 두루 쓰고 있다. 미국 15개 국립공원을 취재한 뒤 『미국 국립공원을 가다』(공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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