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남베트남의 패망과 군의 정신전력

입력 2024. 03. 03   13:15
업데이트 2024. 03. 0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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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KIMA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김태우 KIMA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미국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을 지낸 레이 클라인(Ray Cline)이 제시한 ‘국력 방정식’에 따르면 한 나라의 국력은 국토, 인구, 경제력, 군사력 등 수치로 나타나는 유형적 요인에 국가의 전략, 국민의 의지 등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무형적 요인을 곱한 것이다. 즉 아무리 큰 국토와 많은 자원, 큰 군대가 있어도 국가의 전략 능력이나 국민의 의지가 없으면 국력은 ‘제로’가 된다. 무기와 장비라는 유형전력과 정신력과 전략이라는 무형전력으로 싸우는 군대도 마찬가지어서 둘 중 한쪽이 없으면 허수아비가 되고 만다. 그래서 큰 경제력과 고첨단 군대를 가진 나라도 국론이 분열되고 군인들의 정신전력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조그마한 외침에도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10만 명의 부패한 정부군이 5000명의 공산반군에게 순식간에 궤멸당했던 1959년 쿠바 혁명이 바로 그런 사례다. 

신원식 장관이 취임한 이래 국방부가 정신전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방위·자유민주주의 수호·조국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국군의 이념’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제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국군의 사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군의 정신전력이란 투철한 국가관, 확고한 안보관 그리고 강인한 군인정신을 말하며, 한국군은 정신전력 극대화를 통해 국군의 이념을 구현하고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한국군의 정신전력이 고첨단 무기와 눈부신 방산 수출로 대변되는 유형전력에 비례해 발전하고 있는가에 대해 많은 의문을 표한다.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 6·25전쟁의 진실, 북한이 가진 불변의 대남전략 등을 제대로 배운 사람들인가? 급속한 병 봉급 인상과 군 복지 개선으로 인해 국토수호 의무보다는 금전적 보상이 청년들의 입대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한국이 대만·이스라엘과 함께 세계에서 안보가 가장 취약한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까? 부질없는 걱정이기를 바라지만, 어쨌든 이런 걱정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1975년 남베트남 패망은 영혼이 빠져나간 군대에게 첨단 무기란 고철에 지나지 않음을 처절하게 증명해줬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으로 베트남 수렁에서 벗어나면서 미국은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남·북베트남, 미국, 베트콩 등 4개 당사자 이외에 안보리 상임이사국 4개국과 중립국 4개국을 서명에 동참시켰다. 북베트남에는 40억 달러 원조를 제공하고, 남베트남에는 방위조약 체결과 함께 엄청난 양의 무기와 장비를 남겨줬다.

하지만 이후 2년 동안 남베트남은 분열과 혼란의 도가니였다. 5만여 명의 간첩과 공산당원들이 암약하는 가운데 시민단체, 종교단체, 언론 등이 ‘반미·평화·민주’를 외치면서 거리를 누볐다. 1975년 1월 8일 북베트남군 18개 사단이 남침을 재개하자 남베트남군은 미군이 제공한 군복, 소총, 군모 등을 벗어던지고 도주했다. 조종사들이 달아나는 바람에 미제 전투기들을 이륙 시키지도 못했다. 공산군은 남베트남군이 버린 미제 전차를 타고 사이공에 진주해 대통령궁을 유린했다. 재침 후 56일 만인 4월 30일 남베트남은 지도상에서 사라졌고, 이후 10여 년간 수백만 명이 처형·숙청·실종되는 ‘죽음의 산야’가 펼쳐졌다. 군의 정신전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안보 진리를 일깨워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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