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스파이, 그들이 온다

아랫집 이웃·옆자리 동료, 혹시 당신도?

입력 2024. 03. 03   15:22
업데이트 2024. 03. 0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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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채용장 된 SNS 

SNS, 첩보 활동의 혁신적 도구로 부상
미 CIA, 러시아인 스파이 채용 위해
텔레그램·유튜브에 동영상 업로드
중 ‘링크드인’에서 프랑스·영국인 포섭
일대일 접촉 방식, 은밀한 채용 탈피
공개모집 통한 적임자 물색·접촉 늘어
교육·홍보 강화 방첩 경각심 키워야

예전에는 기업·단체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주변의 추천을 받거나 신문 광고 등을 활용했지만 요즘은 인터넷 직업 알선 플랫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수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적합한 인재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데이트 상대를 구할 때도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한다. 서로의 필요를 손쉽게 연결할 수 있는 혁신적 도구가 탄생한 것이다. 정보기관이 스파이를 채용할 때도 이런 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각국 정보기관은 SNS로 스파이를 채용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스파이 채용은 우선 목표 접근성과 포섭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물색하고 인간적 관계를 맺으며 여건을 조성한 뒤 임무 수행에 합의(포섭)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중요한 업무다. 그중 첫 단계인 물색은 정보 목표에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찾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과정에 속한다. 일대일 접촉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을 동반하고 실패 확률도 높다. 그런데 이제는 해당국에 출장을 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수천·수만 명 가운데 적임자를 찾아내거나 아예 공개 모집해 지원자들이 스스로 오게끔 만드는 스파이 채용의 혁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CIA, 동영상으로 스파이 공개 모집 

미국 중앙정보국(CIA) 윌리엄 번스 국장은 지난 1월 30일 자 미 국제관계 전문잡지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인들의 불만이 CIA에 스파이 채용의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CIA는 지난해 5월 이후 러시아인들을 스파이로 채용하고자 러시아어로 동영상을 제작해 텔레그램, 유튜브, X, 페이스북 등 SNS에 배포해 왔다. 지난 1월 말 공개된 내용은 부정부패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암호화된 인터넷망인 다크웹에서 안전하게 CIA와 접촉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개 모집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번스 국장이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좋은 기회다. CIA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데서 상당한 성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스파이 채용시장이 된 링크드인 

중국은 수년 전부터 세계 최대 비즈니스 인맥 사이트 링크드인(Linkedin)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스파이를 물색·포섭해 왔다. 2019년 6월 스파이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은 전직 CIA 요원 케빈 맬러리는 퇴직 후인 2017년 2월 링크드인을 통해 중국 상하이 소재 싱크탱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는 두 번에 걸쳐 상하이를 방문한 뒤 포섭됐다. 맬러리는 중국이 제공한 휴대전화 형태의 특수장비로 국방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당시 미 국가방첩안보센터(NCSC)의 책임자였던 윌리엄 에바니나는 “중국 정보기관이 링크드인에서 수천 명을 접촉하며 공격적으로 스파이 포섭을 시도하고 있다”고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2022년 11월 미국에서 경제 스파이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은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 쉬옌쥔이 미국 GE에이비에이션의 기술자를 포섭할 때도 링크드인을 활용했다.

미 방첩기관에 따르면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은 민간업체와 협력해 위장 계정을 만든 뒤 공무원뿐 아니라 슈퍼컴, 원자력, 반도체, 나노기술, 헬스케어, 그린에너지 등 여러 분야의 학자, 과학자, 엔지니어 등에게 강연료나 연구비 등을 제안하며 접근한다고 한다. 특히 퇴직자들은 취업을 위해 SNS에 비밀로 취급되는 내용까지 공개하며 자신들의 경력을 밝히고 있어 쉽게 타깃이 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백악관에서 외교정책을 담당하던 한 관료는 퇴직 5개월 만에 홍콩의 R&C캐피털이란 컨설팅사가 링크드인으로 연락해 이력서상 경력이 국제투자, 지정학 이슈, 공공정책 등을 다루는 자신들의 업무에 적합하다며 중국 방문을 요청해 왔는데, 해당 주소엔 아예 그런 기업이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SNS를 활용한 포섭 시도는 유럽에서도 빈번하다. 덴마크 외교부 출신 파렐로 플레스너는 2011년 항저우 소재 헤드헌팅사 DRHR로부터 중국 방문을 요청받고 2012년 베이징을 방문해 정부연구소 관계자들과 만나 연구자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의심이 들어 귀국 후 당국에 신고했는데, DRHR은 독일 방첩기관인 헌법보호청(BfV)이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확인한 3개의 회사 중 하나였다. 프랑스 정보기관도 2018년 10월 중국 정보기관이 SNS를 활용해 공무원, 과학자, 기업체 간부 등 4000여 명의 프랑스인과 접촉 중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엔 영국 신문 더 타임스가 로빈 장이라는 가명을 쓰는 중국 국가안전부 스파이가 영국을 포함한 각국 공무원들에게 강연, 무료 여행 등을 제안하며 포섭을 시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영국 방첩기관(MI5)도 2021년 중국이 SNS을 이용해 수천 명의 전·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스파이 포섭을 시도한다며 경보를 발령했다.

러시아·중국의 SNS 활용한 영향력 공작 

정보기관들은 출처를 숨길 수 있고 정보 확산이 빠른 SNS를 여론 조작을 위한 영향력 공작 수단으로 활용 중이다. SNS가 정보전에 활용된 대표적 사례는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주고자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해 미국을 분열시키기 위한 각종 메시지를 유포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여론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악용해 조작된 여론으로 힐러리 클린턴이 낙선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도록 영향력 공작을 추진했다. 이는 2017년 1월 작성된 미 정보기관의 보고서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후 2019년 8월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중국 당국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계정들이 시위가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비치도록 사전 조율된 패턴으로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같다’ ‘급진주의자들을 추방하라’ 등의 주장을 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조사를 실시해 이들 계정이 중국 정보기관의 허위정보 유포 공작에 이용됐다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1000여 개 이상의 계정을 폐쇄했다.

방첩 대상 확대와 경각심 제고 필요 

스파이 채용이 일대일 접촉으로 은밀히 진행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일자리 정보를 교환하는 인터넷 채용 형태로 진화한 만큼 더 많은 사람이 외국의 스파이로 포섭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됐다. 미 CIA가 퇴직자들에게 포섭의 위험성이 있다며 경고편지를 보내고, 영국 등 유럽 각국 정보기관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외국 정보기관의 포섭에 주의하라며 경고하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도 민감한 정보 접근권한을 가진 공무원, 군인, 과학자, 기술자 등이 이런 위험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 방첩 경각심을 확산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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