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중문고+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자리

입력 2024. 02. 28   16:56
업데이트 2024. 02. 28   17:03
0 댓글

『제1차 세계대전』을 읽고


양희준 일병 육군15보병사단 을지여단
양희준 일병 육군15보병사단 을지여단



중대 선반에 가득 꽂혀 있는 진중문고 중 어떤 책을 볼지 고민이 됐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쉽게 못 고르고 있을 때 전쟁사를 좋아하는 전우의 추천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접하게 됐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시하던 터라 주저 없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저자인 마이클 하워드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정세부터 전쟁 발발 과정, 개전 국면 이후 연도별 특징을 반영한 전쟁의 흐름을 요약해 설명했다. 또 독일을 필두로 한 중립세력과 협상국 각국을 하나씩 조명하며 당시 참전국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어떤 결단을 내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 객관적 위치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기술했다.

책에 묘사된 제1차 세계대전 중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전쟁 전후의 전선과 전쟁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민간인들의 모습이었다. 단기전을 목표로 했던 각국의 예상과 달리 전쟁은 길어졌고, 교착상태에 빠진 전선에선 무수한 전사자가 발생했으며, 각국의 전략은 소모전으로 변해 갔다.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의 삶은 더없이 피폐해졌는데, 당시 사진에서 끔찍했던 그들의 피해를 일부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마이클 하워드 지음 / 최파일 번역 / 교유서가 펴냄
마이클 하워드 지음 / 최파일 번역 / 교유서가 펴냄



이는 단지 서구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또한 동일 세기에 6·25전쟁으로 시대적 참상을 겪은 바 있다. 아주 어릴 적에 할아버지께서 잠들기 전 전쟁터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곤 하셨다. 너무도 어렸기에 그 이야기의 무게를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잠결에 흘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휴전을 앞두고 병력을 계속 투입해 고지를 뺏고 뺏기는 전투가 이어졌다는 말씀이다. 시간이 흘러 현재 할아버지와 선배 전우들이 피땀 흘려 지킨 땅에서 GOP 최전선을 수호하고 있다. 멀고도 가까운 북녘땅은 표면적으로는 고요해 보인다. 그러나 제1·2차 세계대전, 6·25전쟁과 같은 뼈아픈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나의 안일함이 곧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실감했다.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혹독한 날씨 속에서 장구류의 무게를 버티며 근무를 서고 있노라면, 문득 조용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허망한 기분이 들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 이곳에 있는 의미를 묻는다.

인류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바로 눈앞의 풍경은 그러한 위기와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군인의 본분은 나라를, 나아가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데 있다는 것을 전란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닫게 됐다. 초소에서 견디는 매 순간순간이 결코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만에 하나 벌어질지 모를 살상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음을, 그것이 생명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일임을 이해하게 됐다. 근무가 고되더라도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됐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