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첨단무기와 미래 전쟁

민간인 대상 ‘인간방패·인종청소 작전’ 불법 규정

입력 2024. 02. 23   16:21
업데이트 2024. 02. 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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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무기와 미래 전쟁-무력 충돌과 민간인 보호 

제네바 제4협약·추가의정서 통해

민간인 보호하고 인도적 대우 보장
나치의 홀로코스트·르완다 대학살
보스니아 내전선 무슬림 여성 강간
특정 민족·종교 집단 제거 수단 활용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병원 폭격도
국제인도법 기본원칙 위반한 사건
전쟁법 지키는 것은 군인의 의무
체계적 교육으로 인식 전환 필요

우크라이나 적십자사 자원봉사자가 임시 보호소에서 아이들에게 심리사회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국제적십자사연맹
우크라이나 적십자사 자원봉사자가 임시 보호소에서 아이들에게 심리사회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국제적십자사연맹


무력 충돌은 국제적(국가 간 무력 충돌)이든 비국제적(내전)이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희생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들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체계인 국제인도법은 상병자에서 시작돼 포로, 민간인이나 일반주민으로 확대됐고 오늘날에는 민간인 중에서도 여성 및 아동과 같은 특정 부류의 개인이나 문화재, 자연환경으로 보호 대상을 넓혔다.

무력 충돌의 최대 희생자는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이라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항공기의 사용, 대량파괴무기의 출현, 게릴라전의 전개 등 전투 수단의 발달에 따라 적대행위로 피해를 입는 민간인이 급증하고 피해의 질도 대량 파괴화, 잔혹화되고 있다. 이는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 보호에 관한 주요 조약으로는 1949년 제네바 제4협약(민간인 보호 협약)과 1977년 2개의 추가의정서(특히, 제1추가의정서)가 있다.

민간인 보호 협약은 159개 조항과 3개의 부속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범위의 민간인이 아니라 교전국 영역 및 점령지역에 있는 적 국민과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외국인을 보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된 범주의 보호 대상을 거의 모든 민간인으로 확대하고 보호 내용을 보완, 발전시킨 것이 102개 조항과 2개 부속서로 이루어진 제1추가의정서이다.

이들 조약에 규정된 핵심 내용은 적대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은 일반적으로 보호되며 불리한 차별 없이 인도적으로 대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평범한 인간의 상식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서, 규범적 무지와 제도적 흠결을 이유로 규정을 준수하지 않거나 처벌을 회피하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현대 무력 충돌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경우로는 첫째 ‘인간방패 작전’을 들 수 있다. 무력 충돌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거나 공격 의도를 좌절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인간방패 작전은 1999년 코소보 사태에서 세르비아의 군 캠프 코리사 공습(캠프 내 민간인 존재), 1991년 걸프전(이라크가 억류한 쿠웨이트인들을 군사시설 주변에 배치) 등에서 국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현장 접근이 어렵고, 정보도 제한적이어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묻혀버리기도 하지만, 인간방패 작전은 국제인도법상 불법적인 전투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제1추가의정서 제51조 7항에서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나치의 인종 청소를 폭로한 영화 ‘아우슈비츠’. 2018년 제작됐으며, 국내에는 2019년 소개됐다.
나치의 인종 청소를 폭로한 영화 ‘아우슈비츠’. 2018년 제작됐으며, 국내에는 2019년 소개됐다.


둘째 ‘인종청소’ 문제다. 인종청소는 ‘폭력과 공포 수단을 동원해 특정 지역에서 민족적 및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을 제거하려는 정책’으로 살인, 고문, 성폭력, 강제 구금 및 민간인 거주지역 폭격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몰살시킨 홀로코스트,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에서 세르비아계가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에 자행했던 학살과 성폭력, 1994년 후투족이 투치족 80만 명을 살해한 르완다 대학살 등이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특히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인종청소의 한 수단으로 성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돼 큰 충격을 주었다.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은 무슬림 여성에 대한 강간을 전투 방법의 하나로 사용하였는데, 세르비아계 혈육을 낳게 하려고 여성을 강간하고 임신시켰다. 피해 여성과 그 가족들은 공포와 수치심으로 살던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인종청소로 이어졌다. 200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영화 ‘그르바비차(GRBAVICA)’는 세르비아군의 무자비한 인종청소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무력 충돌 시 성폭력은 국제인도법상 불법이라 민간인 보호 협약은 ‘부녀자들은 그들의 명예에 대한 침해 특히 강간, 강제 매음 또는 기타 모든 형태의 외설 행위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규정(제27조)하고 있다. 제1추가의정서도 ‘부녀자는 특별히 보호의 대상이 되며 특히, 강간, 강제 매음 및 기타 모든 형태의 저열한 폭행으로부터 보호된다’고 규정(제76조)하고 있다.

세르비아군의 무자비한 인종청소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영화 ‘그르바비차(GRBAVICA)’
세르비아군의 무자비한 인종청소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영화 ‘그르바비차(GRBAVICA)’


셋째 무력 충돌 당사국은 민간인 및 민간물자와 전투원 및 군사 목표물을 항상 구별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많은 무력 충돌에서 이러한 구별 원칙을 무시한 채 민간인 거주지역, 병원, 학교 등에 무차별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사례로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알아흘리 병원을 폭격해 환자와 의료진 등 5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무차별 공격이 국제인도법의 기본원칙에 반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격은 군사 목표물에만 행해져야 한다는 원칙은 이미 1923년 헤이그 공전 규칙에도 규정됐고 최근 제1추가의정서에서도 재확인됐다. 충돌 당사국은 자신들의 폭격을 상대국의 폭격에 대한 보복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비록 상대국의 위반이 있더라도 민간인에 관한 법적 의무는 그것으로 면제되지 않는다(제51조 8항).

무력 충돌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이러한 참상을 예방하고 인도적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고통을 야기하거나 무차별적 효과를 발휘하는 전투 수단과 방법의 금지, 군사 목표물과 민간인 및 민간물자의 구별, 대량파괴무기 사용 금지, 배신적 수단과 방법의 사용 금지, 공격시 예방조치의 강구 그리고 불법행위의 처벌 및 지휘 책임 강화 등이 요구된다.

문명사회에서 타당한 보편적 기준에 따라 부과된 이러한 인도적 원칙들은 이미 구체적인 조약으로 채택돼 있고, 모든 무력 충돌에 적용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34조와 ‘전쟁법 준수를 위한 훈령’에서 전쟁법 준수를 군인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무력 충돌 상황에서 민간인의 인도적 보호가 군인의 책무임을 선언한 것이다. 무력 충돌 현장에서 인도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군이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 뿌리 깊이 내면화되어 있지 않으며, 실제 충돌 현장에서 충분히 이행되거나 존중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한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이 필요한 때다.

필자 이민효는 해군사관학교 명예교수 겸 초빙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인도법이다. 현재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민효는 해군사관학교 명예교수 겸 초빙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인도법이다. 현재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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