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소통 부재가 호기심으로… 횹사마에 빠져든다

입력 2024. 02. 20   15:24
업데이트 2024. 02. 2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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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협 주연의 일드 ‘아이(Eye) 러브 유’ 향한 관심과 기대

 

사진=TBS·넷플릭스
사진=TBS·넷플릭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마음을 궁금해한다. 이러한 바람은 콘텐츠에서 ‘초능력’ 형태로 발현되곤 했다. 여자들의 마음을 읽는 ‘왓 위민 원트’ 닉 마샬(멜 깁슨), 마음을 읽고 조종하는 ‘엑스맨’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 눈을 보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이종석), 상대의 거짓말을 확인할 수 있는 ‘소용없어 거짓말’ 목솔희(김소현) 등 영화와 드라마, 로맨스와 공상과학(SF) 등 플랫폼과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종류도 다채롭다. 지난달 23일 일본 TBS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 역시 이러한 독심(讀心)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전면에 등장한다.

‘아이 러브 유’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려 사랑을 포기했던 여자 앞에 낯선 언어로 생각하는 한국인 유학생이 나타나 새로운 설렘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상대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때문에 사람들과 교류를 어려워하는 초콜릿회사 대표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는 어느 날 한국 음식을 주문했다가 배달원으로 온 한국인 유학생 윤태오(채종협)를 만나 로맨스가 싹튼다.

일본 대학에서 멸종위기 동물을 연구하며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유학생 윤태오는 일본어로 말을 하지만, 머릿속 생각을 가득 채우는 것은 한국어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연애할 때 독(毒)이 됐던 모토미야 유리는 들려도 뜻을 알 수 없는 윤태오의 마음이 궁금해 알고 싶어진다. 인간관계의 첫 단추는 언제나 상대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법. 언어 차이로 빚어진 소통 부재가 상대의 마음을 읽는 모토미야 유리에게는 오히려 득이 된 모양새다.

드라마 소재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주연을 맡은 한국 배우 채종협의 존재다. 앞서 후지TV ‘솔직하지 못해서’의 김재중, TV 아사히 ‘7인의 비서’와 NHK ‘군청 영역’의 심은경 등 일본 드라마에 한국 배우가 출연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일본 지상파 프라임타임 시간대 주연 자리를 꿰찬 것은 채종협이 처음이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KBS2-TV ‘너에게 가는 속도 493㎞’ 등을 거쳐 지난해 tvN ‘무인도의 디바’까지 꾸준한 활약과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채종협이 이번 작품 ‘아이 러브 유’에서 전례가 없는 새로운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현재 5회까지 방영된 ‘아이 러브 유’를 둘러싼 반응은 긍정적이다. 5.5%로 시작한 시청률은 6%대에 진입해 안정궤도에 올랐고, 일본 넷플릭스 주간 순위 1위도 꿰찼다. 주인공을 맡은 채종협의 개인 SNS 계정은 단기간에 200만 팔로어를 넘어섰으며, 일본 팬들의 댓글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채종협을 ‘횹사마(ヒョプサマ)’라 지칭하며 인기를 분석하는 현지 매체 기사들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아이 러브 유’의 인기요인에는 한·일 간 문화 차가 만들어 내는 신선함이 있다. 거리가 가깝고 교류도 활발한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차이가 꽤 존재하다. 이는 모토미야라는 ‘성’을 말하자 ‘이름’을 되묻거나 “귀엽다” “예쁘다” “좋아한다”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윤태오가 모토미야 유리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과 복사, 서명까지 하는 약속 방식에 신기해하고, 술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는 말이 한국에선 호감 표시라는 것을 검색으로 파악하곤 쑥스러워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모토미야 유리가 윤태오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과 비례해 ‘한국 남자’에 대한 현지의 관심, 극 중 등장하는 한국 음식들(비빔밥, 전, 라볶이, 순두부, 잡채 등)을 포함한 다양한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늘고 있다는 게 현지 매체들의 설명이다.

방송 형태의 독특함도 드라마의 매력을 배가하는 데 일조했다. ‘아이 러브 유’는 본방송 중 윤태오가 하는 한국어 대사에 별도의 일본어 자막을 표기하지 않는데, 이는 윤태오의 말과 생각을 듣고 궁금해하는 모토미야 유리의 마음을 일본 안방 시청자에게도 고스란히 전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다만 편의를 위해 재방송과 스트리밍에서는 자막이 붙는다).

K콘텐츠가 전 세계로 빠르게 뻗어 나가는 것처럼 해외 여러 국가의 작품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국내에 동시 공개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작품뿐 아니라 배우와 제작진이 협업하는 경우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일본 드라마 ‘아이 러브 유’에 채종협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것과 유사하게 일본 배우 사카구치 겐타로는 국내 OTT 플랫폼인 쿠팡플레이 시리즈 ‘사랑 후에 오는 것들’로 이세영과 연기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대만 드라마 ‘상견니’로 국내에도 팬층이 두꺼운 쉬광한(許光漢·허광한)은 STUDIO X+U 드라마 ‘노 웨이 아웃’에 출연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아이 러브 유’는 현재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등의 OTT를 통해 국내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여전히 VOD 시장이 활발해 TV 방송과 OTT 공개 시차가 상당한 일본의 콘텐츠 시장을 고려하면 분명 이례적인 모양새다. 한국과 일본에서 순항을 시작한 ‘아이 러브 유’가 작품의 재미·완성도와 더불어 한·일 국경을 넘어 전개되는 유기적인 콘텐츠 작업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느려도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느려도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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