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전쟁 억제와 유엔사의 역할

입력 2024. 02. 15   15:35
업데이트 2024. 02. 15   16:02
0 댓글
김태우 KIMA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김태우 KIMA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안보란 주택이나 아파트의 외벽과 같다. 외벽이 붕괴되면 따뜻한 공간에서 가족이 누려온 행복은 일순간 산산조각 찢어져 광풍에 흩날리고 만다. 그래서 전쟁은 억제하고 봐야 한다. 요즘 북한은 연일 ‘남조선 전 영토 점령과 평정’을 외친다. 제76주년 건군절이었던 2월 8일에도 북한 김정은은 ‘가장 위해로운 제1 적대국’ ‘한국 괴뢰 족속들’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전쟁 억제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사람들은 새삼 ‘자강과 동맹’을 상기한다. 

이런 시기에 전쟁 억제와 관련한 유엔군사령부(UNC)의 역할을 배운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유엔사는 1950년 북한의 공산 통일 기도를 저지했고, 이후 전쟁 재발을 억제하는 데 기여해왔다. 북한이 ‘선제 핵사용’을 협박하는 지금 유엔사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던 날 유엔 안보리는 북한군 철수를 촉구하는 결의 82호를, 그리고 27일에 결의 83호를 채택해 한국 지원을 위한 집단안보를 발동했다. 7월 7일 채택한 결의 84호에 따라 24일 도쿄에 유엔사를 창설했다.

참전국들은 유엔의 깃발을 달고 미군 통합사령부 지휘하에서 싸웠다.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렸던 한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반격에 나섰고,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혈전으로 북한군의 도하를 막았다. 미국은 3만4000여 명의 젊은 목숨을 이 땅에 바쳤고, 9만20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정전과 함께 참전 16개국은 워싱턴에서 모여 한국전 재발 시 다시 참전할 것을 결의한 ‘원조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자유 대한민국은 그렇게 생환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유엔사는 1957년 본부를 서울로 옮겼고, 89개 주일 미군기지 중 육·해·공군 및 해병대 기지 7곳을 유엔사 후방기지(UNCRB)로 지정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후방지휘소도 설치했다. 현재 유엔사 회원국은 2개국이 탈퇴하고 의료지원 3개국이 가입해 17개국이다. 유엔군 주력이 미군이기 때문에 유엔사와 한미동맹은 상당 부분 동전의 양면이며, 그래서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과 한미연합군사령관을 겸직한다. 그럼에도 유엔사는 전쟁 재발 시 한국을 지원한다는 국제적 약속으로서의 상징성이 크다.

실제로도 전쟁 억제에 매우 긴요하다. 유엔사 후방기지들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발진기지이자 여타 회원국들이 병력과 장비를 한반도로 보내는 보급기지다. 일본 오키나와 후텐마에는 명령이 떨어지면 금방 달려올 수 있는 미 해병3원정단이 있고, 미 공군의 최대 해외기지인 가데나의 전투기들은 한 시간 만에, 그리고 도쿄 인근 요코스카 해군기지의 7함대 함정들은 48시간이면 한반도로 전개될 수 있다. 요코다 공군기지는 6·25 때 수많은 폭격 임무를 수행했던 발진기지이며, 제주도 남방의 사세보 해군기지는 서태평양 최대의 미 군수물자 비축시설로 엄청난 양의 탄약·유류 등 전쟁물자들을 유지·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작년 11월 13~14일 한국 국방부가 제55차 한미 국방장관회의(SCM)에 이어 사상 최초의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해 ‘유사시 공동 대응’을 재확인하는 공동성명을 끌어낸 것은 전쟁 억제를 위한 큰 성과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는 정치인들도 있고 이에 동조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한국 국민이면서 북한의 70년 숙원을 해결해 주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전쟁을 아는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