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현대 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인간 이성에 의한 탐구심 확산…‘합리주의’ 크게 발현

입력 2024. 02. 07   16:55
업데이트 2024. 02. 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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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3. 서양 근대사상의 뿌리 - 그리스문명과 지성 ‘헬레니즘’ (1) 

페르시아 전쟁 이긴 아테네 문화 융성
개인의 가치 인정…직접민주정치 실천
자연→인간 범주 이동 ‘철학의 탄생’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고전철학 ‘3인방’ 헬레니즘 발전 초석
로마에 전파·수용 더 풍성한 꽃피워

흔히 사람들은 현대 서양문명의 근원을 고대 그리스·로마문명, 그중에서도 앞선 그리스문명으로 보면서 두 문명을 서양의 ‘고전문명’으로 통칭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서양세계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합리주의, 개인주의 등의 뿌리가 기원전 7~4세기 그리스 반도에서 융성한 문화적 유산에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원전 5~4세기경 도시국가(Polis·폴리스) 아테네에서 학문과 예술을 중심으로 꽃피운 인간 중심적이며 지성적인 문화적 특질은 이후 로마제국과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현재 서양문명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됐다. 비록 오늘날 탈유럽 중심주의의 물결이 거세지만 고전시대에 서양문명이 배태한 개인 존중 및 자유의 개념은 여전히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세워진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전경. 사진=위키백과
페리클레스 시대에 세워진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전경. 사진=위키백과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개인의 모든 활동은 정치·군사공동체 성격의 폴리스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리스는 에게해 남쪽 크레타섬의 미노아문명과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미케네문명을 거쳐 기원전 8세기경부터 그리스 본토에 등장한 폴리스를 주축으로 문명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빠른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에 직면해 그리스인들은 주변 지역으로 진출했고, 그 결과 기원전 7~6세기경에 이르면 지중해 전역에 걸쳐 수많은 대·소규모의 폴리스가 등장한다.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세력 확대는 당시 동방세계 강대국 페르시아와의 일전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두 진영 간 3차례에 걸친, 이른바 페르시아전쟁(BC 492~479)이 벌어졌다. 객관적 전력상 열세였던 그리스 연합세력은 중무장밀집보병대(Phalanx)를 주축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에게해의 패권을 차지했다.

전후 전쟁 승리를 주도한 폴리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학문과 예술이 활짝 피어났다. 더구나 이 시기에 아테네에선 페리클레스(BC 495~429)라는 유능한 정치지도자의 활약으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흥, 이에 기초한 문화적 융성이 이뤄졌다. 이때 아테네에서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시민의 정치 참여가 달성됐고, 파르테논신전 건축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예술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그리스 반도 곳곳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어 가히 ‘백가쟁명’에 가까운 논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리스문명과 지성의 특징으론 인간중심주의(Humanism)와 합리주의(Intellectualism)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왜 인간중심주의적 문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폴리스 아테네의 경우 직접민주정치를 채택하고 이를 실천했다. 대략 20세 이상의 폴리스 성년 남자들이 매년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고 자신들을 통치할 지도자를 선출했다. 비록 오늘날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당시 오리엔트나 동양세계에서 절대자 국왕만이 통치권을 행사한 점과 비교하면 인간 개인의 가치를 인정한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갖고 있던 ‘신인동형(神人同形)’의 신개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른 문명권의 신들은 반인반수(半人半獸)거나 태양이나 달과 같은 자연물인 데 비해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완전한 모델로서의 12신을 설정하고 이를 닮고자 했다.

그리스문명은 ‘지성적 특징’이 두드러졌다. 인간은 이성(理性)적 존재라는 인식하에 합리주의가 크게 발현됐다. ‘생각하는 힘’인 이성을 무기 삼아 주변 자연환경을 관찰·탐구해 우주 만물의 근원(아르케)을 밝히려고 시도했다. 드디어 신화의 범주에서 벗어나 철학이 탄생한 것이다. 맨 먼저 관찰 대상이 된 것은 자연 만물이었다. 이 세상의 근원을 ‘물’에서 찾은 탈레스에 이어 ‘원자’의 존재까지 유추한 데모크리토스 등 다양한 인재가 등장했다. 초기에 외부세계로 향했던 관찰의 눈은 점차 내부세계, 즉 인간 자신에게로 모여 인간의 본성과 행동 탐구로 이어졌다. 최고선이나 삶의 목적과 같은 근원적 주제에 의문을 제기했다. 연구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기는 데 초반에 기여한 인물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금언으로 잘 알려진 프로타고라스(BC 480~411)였다. 흔히 소피스트로 알려진 프로타고라스의 이 말속엔 세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87년 독배를 마시기 직전의 소크라테스 모습을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사진=위키미디어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87년 독배를 마시기 직전의 소크라테스 모습을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사진=위키미디어



소피스트에 이어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탐구가 시도됐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인물은 바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로 유명한 소크라테스(BC 469~399)였다. 그는 본격적으로 인간 사유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 내면으로 옮겨 놓았다. 특히 그는 이성의 논리성을 무기로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아의 무지를 일깨우는 가르침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기존 권위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기득권 세력의 미움을 받고 결국엔 독배형(刑)을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소크라테스의 탐구심은 그의 수제자 플라톤(BC 427~347)에 이르러 더욱 발전했다. 특히 플라톤은 현실세계 저편에 있는 비(非)가시적 세계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다. 그는 그림자에 불과한 현실세계가 아니라 불변하는 존재인 ‘이데아(Idea)’ 개념에 입각해 자신의 철학을 체계화했다. 『국가』 『향연(심포지엄)』 등 다양한 책을 쓰고 ‘아카데미아’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제자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가 단연 발군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물꼬를 튼 인간 본성의 이성적 탐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됐다. 스승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탐구 대상을 다시 보이는 세계 쪽으로 끌어내렸다. 비록 그는 플라톤의 수제자였으나 비물질적이며 영원히 존재한다는 스승의 이데아론을 따르지 않았다. 그에게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는 오히려 허상일 뿐이며 진리는 가시적인 자연의 세계에 놓여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현실세계에 관한 깊은 관심을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같은 저술로 표출하고 ‘리케이온’이라는 학원을 설립해 제자를 양성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차이점은 1510년 르네상스 대표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아테네학당’에 잘 묘사돼 있다. 헬레니즘(Hellenism) 시대에 활약한 무려 5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 그림의 중앙 왼편에 서 있는 플라톤은 책 『티마이오스』를 들고 손가락으로 하늘, 즉 이데아의 세계를, 오른편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땅, 즉 현실세계를 가리키고 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고전철학계의 3인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그리스 철학은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사업과 더불어 소아시아로 전파돼 ‘헬레니즘’ 발현의 초석이 됐다.

이 시기에 발전한 것은 철학 분야만이 아니었다. 학문 전 분야에 걸쳐 인간 이성에 의한 탐구심이 적용되면서 그 토대가 마련됐다. 예컨대 헤로도토스는 현장 답사를 기초로 『페르시아 전쟁사』를 집필함으로써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히포크라테스는 환자의 증상을 관찰하고 비교 분석하는 방법으로 치료함으로써 ‘의학의 아버지’로 회자됐다. 이러한 그리스문명은 이후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로마인들에게 전파·수용돼 더욱 풍성하게 꽃을 피운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다.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고, 영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다.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고, 영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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