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이슬처럼 내리던 비가 조금씩 굵어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좁쌀만 한 얼음 알갱이가 돼 자동차 앞창에 부딪혀 떨어졌다. 비는 곧 완연한 눈이 됐고 종일 내렸다. 한낮에는 꽤 굵은 함박눈이 돼 있었다. 내리는 눈의 모양새에 어울리지 않게 기온은 꽤 따뜻했고, 큰 도로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그날 아침 나는 이미 그날 날씨를 시간별로 대강 예상했다. 요즘은 일기 예보도 시간별로 알려주고, 꽤 많은 눈과 비가 올 것 같으면 나라에서 대국민 경고도 보내고 해서 나답지 않게 준비도 많이 하고 다니게 된다.
나 어린 시절에는 그날 날씨를 포함해 그날 하루의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가 많았다. 그날 하루도 불확실하니, 가깝든 멀든 미래라 할만한 시간대의 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많은 것이 희미한 그때는 뭔가를 구체적으로 바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시절, 버스나 택시를 타면 소녀가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채 다소곳이 기도하는 모습과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이 적혀 있는 그림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하루의 무사함을 비는 소녀의 그 기도가 참 소박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마도 그 또한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했으리라 생각하니 짠한 느낌이 든다. 바람은 그렇게 삶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사실 나 같은 소시민들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거창한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생활이 조금 나아지길 바라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웃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요즘같이 추울 때면 빨리 봄이 오길 바랄 뿐이다.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망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바람이 빠지며 빙빙 돌다 떨어지는 고무풍선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최선과 열정은 무언가를 얻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 바람이 어느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인생을 위한 바람이 아닌 바람을 위한 인생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람은 욕망이 되고, 욕망은 탐욕이 되어 인생의 한순간, 심지어 전부를 집어삼키기도 한다. 무언가에 너무나 집착하게 되면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고, 너무나 당연한 삶의 규칙을 어기게 되기도 한다.
나의 성형외과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더 아름답고, 더 젊고, 더 멋진 모습이 되고 싶어 한다. 운동이나 다이어트와 같은 방법보다 대개는 더 쉽게, 더 짧게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심지어는 불가능해 보였던 수준의 아름다움에 이르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어떤 형태이든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름다움에는 만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위험한 유혹이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을 바라고 이룸으로써 삶에 에너지를 주는 것은 좋지만, 탐욕스럽게 집착하면 그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이문재 시인의 ‘농담’이라는 시의 일부다. 시인의 말처럼 정말 아름다워지고, 정말 좋은 것을 가지려는 이유는 결국 사람이어야 한다. 나의 지금이 생의 어디쯤이든, 무언가를 가지기를 소망하기보다 누군가와 있기를 소망해야 한다. 그래서 새해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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