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현대 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기독교 중심 ‘헤브라이즘’ 이성 강조 ‘헬레니즘’ 주도

입력 2024. 01. 24   15:49
업데이트 2024. 01. 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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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 유럽 문명 형성과 서양 지성 흐름(2)

세계 주도 미국 문화 바탕은 유럽 문명
주요 인종·종교 거주 권역 나눠 분포
개인 중시 자유민주주의 성향 강하고
동양과 달리 상업 위주 도시 형성 발전
중세 1000년은 헤브라이즘의 시대
르네상스 겪으며 헬레니즘 대세 장악
산업혁명 이후 낭만주의·자유주의로
2차례 세계대전 거치며 개인 자유 중시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된 페테르 루벤스가 그린 ‘에우로페의 납치’(1629). 사진=위키미디어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된 페테르 루벤스가 그린 ‘에우로페의 납치’(1629). 사진=위키미디어



20세기에 세계 최강 대국으로 부상해 현재까지 군림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상승한 미국의 국력을 등에 업고 일명 ‘미국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됐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나 역사를 깊이 파고들면 그 기저에 유럽 문화(유럽 문명)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오늘날 여전히 세계의 주 흐름인 서양 문화를 올바르게 파악하려면 유럽인들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가를 외관과 더불어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원상 그리스 주신(主神) 제우스(Zeus)의 페니키아 공주 에우로페(Europe) 납치 신화에서 유래한 유럽은 넓이가 약 1018㎢에 불과한 지구상 최소 대륙이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유럽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 끝자락에 마치 우리 몸속 쓸개처럼 붙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럽은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공간적 범위를 넓혀 왔다. 그리스 시대에는 주무대가 기껏해야 에게해 일대였다가 로마 시대에 지중해 주변으로 크게 확장돼 오늘날 모습을 조형했다. 이후 중세 침체기를 거쳐서 16세기부터는 대서양을 주무대로 해외로 적극 진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크기는 작으나 유럽 대륙은 나름 복잡한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유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바다는 누가 뭐래도 지중해(地中海)다.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명을 산출한 서양 문명의 모태와 같은 바다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고대 이래 유럽사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쳐온 알프스산맥이 흡사 병풍처럼 뻗어 있다. 알프스 정상에서 녹아내린 빙하수는 북쪽으로 흘러서 라인강을, 동쪽으로 흘러서 다뉴브강을 이룬다. 우리에게 훨씬 친숙한 강인 센강(파리), 테베레강(로마), 템스강(런던), 엘베강(베를린) 등에 비하면 지류 급에 해당한다.

유럽 대륙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해 왔다. 아마도 멕시코 만류(灣流) 덕분에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온난한 기후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유럽 대륙에는 대체로 세 부류 인종이 나름의 거주 공간을 차지하면서 번성해 왔다. 라틴족은 주로 남유럽에, 게르만족은 중·서·북유럽에, 그리고 슬라브족은 동유럽 지역에 군집해 살았다. 이러한 인종 분포는 묘하게도 유럽의 종교 분포와 중첩된다. 전체적으로는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이지만 대체로 라틴족 지역 국가들(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은 가톨릭 신앙을, 게르만족 지역 국가들(독일 중북부·영국·네덜란드·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개신교 신앙을, 그리고 슬라브족 지역 국가들(러시아·불가리아 등)은 정교회 신앙을 신봉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과정을 통해 서양은 동양과는 다른 특성의 문명을 형성해 왔다. 정치 면에서 동양이 공동체 중시의 권위주의적 문명을 이뤄온 데 비해 서양은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경제 측면에서는 동양이 농업 지향 추세 아래 주로 촌락 공동체 중심의 생활을 영위해 왔다면, 서양은 상업적 경향이 강한 분위기 아래 도시를 형성해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사상 측면의 경우 농업 사회였던 동양이 사람과 자연의 유기적 합일(合一)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 데 비해, 서양은 자연과 거리를 둔 채 합일이 아니라 관찰 대상으로 여기면서 이를 개발하려고 시도해 왔다. 이러한 경향은 대략 BC 300년~AD 200년 사이에 드러나기 시작해 이후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그 차이가 점차 분명해졌다.


1595년 지도 제작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가 제작한 유럽 지도. 사진=위키백과
1595년 지도 제작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가 제작한 유럽 지도. 사진=위키백과



그렇게 출발한 서양 문명은 이후 사상적으로 어떠한 궤적을 그려 왔을까? 흔히 서양 문명의 두 기둥으로 기독교 중심의 헤브라이즘(Hebraism)과 개인 이성 중심의 헬레니즘(Hellenism)을 꼽는다. 서양 고전문명인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서양 문명은 바로 이 두 흐름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발전돼 왔기 때문이다. 대체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는 5세기 말까지는 그리스 문명에서 표출된 인간 이성 중심의 헬레니즘이 강세를 보였다면, 6세기 초~15세기경까지 이른바 중세 1000년 동안에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중심을 이룬 헤브라이즘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다가 다시 15세기 이래 이탈리아반도에서 점화한 르네상스와 이어진 17세기 과학혁명 및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는 이성을 강조하는 헬레니즘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었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인지 18세기 후반기에 정치적으로는 프랑스혁명을 통해, 사회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절정에 이른 인간 이성은 ‘휴브리스(Hubris)’, 즉 오만(傲慢)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채 다시 감정을 부추기는 낭만주의에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이러한 낭만주의와 함께 시작한 유럽의 19세기는 지성사 측면에서 가히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오늘날까지 여전히 풍미하고 있는 다양한 사상들(-isms)이 등장해 본격적으로 발아했기 때문이다. 크게 보아 19세기 전반기가 자유주의의 시대였다면, 후반기에는 사회주의와 특히 민족주의가 크게 유행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상들은 현실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단순히 지적 차원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든 개혁과 변화의 원동력이 됐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사람들의 삶에 획기적 영향을 미친 다양한 발명품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이와 더불어 진화론이나 정신분석학 등 새로운 획기적 이론들을 알아냄으로써 긴 세월 지구상에서 ‘만물의 영장’이라 우쭐댄 인간의 위상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이때 한번 휘청한 인간의 이성 만능주의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양차 세계대전이란 대량 파괴와 살상을 겪고 난 후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서양 문명이 그대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파국적인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에는 긴 세월 서양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던 ‘인간 이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특히 독일 출신의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인간 이성의 일탈을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이어서 자크 데리다 및 미셸 푸코와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에 의해 ‘합리성’이라는 미명 아래 그동안 인간 이성이 자행한 억압과 차별 등에 대해 성찰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思潮)를 통해 근대성의 어두운 이면을 들추어내는 작업이 이뤄졌다. 그 결과 근대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이성이 구축해 놓은 구조(構造)라는 거미줄로부터 개인의 자율성이 해방되고, 긴 세월 고급문화의 그림자에 가려지거나 억눌려 온 민중 문화가 새롭게 주목받게 됐다.

획일성보다는 개인의 해방과 자유를 중시하는 이러한 기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 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 맹활약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양 문화가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되어 점차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필자 이내주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고, 영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고, 영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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