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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자·조난자·의무요원은 적군이라도 보호해야

입력 2024. 01. 19   16:12
업데이트 2024. 01. 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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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도법 바로알기
전장의 군인은 항상 공격의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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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상병자와 조난자, 의무요원 및 종교요원의 보호: 1949년 제네바 제1, 2협약


부상·질병으로 의료지원 필요한 군인
적대행위 취하지 않으면 인도적 대우
조난 항공기서 낙하산 하강 때도 적용
착지 후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 대상 돼


미국 드라마 ‘더 퍼시픽’의 한 장면. HBO 제공
미국 드라마 ‘더 퍼시픽’의 한 장면. HBO 제공


괌과 필리핀 사이의 작은 산호섬 펠렐리우.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시체가 즐비한 전장에서 주변을 살피던 한 미군이 쓰러져 있던 일본군의 입을 열어 대검으로 금니를 뽑으려 한다. 그러나 죽지 않고 혼절해 있었던 일본군 병사가 깨어나 고통에 몸부림치자 이를 보다 못한 다른 미군이 그 일본군의 머리에 총을 쏴 버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 미 해병대가 일본군과 사투를 벌였던 전쟁의 참상을 재현한 미국 드라마 ‘더 퍼시픽(The Pacific)’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국제인도법상 전투원은 애초부터 합법적인 공격의 대상이므로 드라마 ‘더 퍼시픽’ 속 행위는 전시에 불가피하게 용인될 수밖에 없는 걸까?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를 규율하는 국제규범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1859년 솔페리노전투의 참상을 목격한 앙리 뒤낭(Henry Dunant)이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저서에서 전장의 부상자와 병자, 즉 상병자들의 구호를 보장하기 위한 협약 체결을 제안하면서 채택된 1864년 제네바협약과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통해 보완·발전된 1949년 제네바 제1, 2 협약에 따라 전장의 군인도 일정한 경우 직접적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는 국제규범이 확립됐다.

국제인도법은 무력충돌 시 상대 교전 당사국 군인들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을 허용하지만, 이들이 일단 부상이나 질병으로 무력화되면(국제인도법에서는 이를 ‘전투 능력 상실(hors de combat)’ 상태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직접적·고의적 공격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1949년 제네바 제1협약 제12조는 지상전에서, 제네바 제2협약 제12조는 해전에서 군대의 부상자와 병자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여기서 ‘존중’ 의무는 이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소극적 의무에 불과하지만 ‘보호’ 의무는 이들의 구호를 위해 구체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적극적 의무에 해당한다.

물론 교전 상대국의 군인이 다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들에 대한 존중 및 보호 의무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다. 전투 중 적 부상자가 생길 때마다 이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제네바 제1, 2협약상 상병자 보호는 부상이나 질병으로 의료지원이 필요한 자가 적대행위를 취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일단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면 이들은 성·인종·국적·종교·정치적 견해 등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없이 인도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치료 순서의 우선순위 역시 오로지 의료상 사유에 근거해 결정돼야 한다. 따라서 부상 경중을 가리지 않고 아군 상병자를 무조건 적군 상병자보다 우선적으로 치료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에서 부상당한 군인을 들것으로 실어 나르는 영국 육군 의무대원을 그린 길버트 로저스의 작품. 필자 제공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에서 부상당한 군인을 들것으로 실어 나르는 영국 육군 의무대원을 그린 길버트 로저스의 작품. 필자 제공


제네바 제2협약은 부상자나 병자가 아니더라도 해상에서 조난을 당한 자로서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이들을 상병자와 동일하게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2조). 나아가 1977년 채택된 제1추가의정서 제42조는 조난한 항공기에서 낙하산으로 하강하는 자를 공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낙하산으로 하강하는 동안 전투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아 지상에 착지한 이후 항복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에 대한 보호는 낙하산으로 하강하는 동안에만 유지되므로 이들이 착지 후 항복하지 않는다면 공격의 대상이 된다. 물론 공수부대는 그 보호 대상이 아니므로 하강 중에도 공격할 수 있다.

심지어 국제인도법은 교전 당사국에 상병자를 적극 수색·수용해 보호하고 사망자를 찾아 이들이 약탈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지상전에서 이러한 의무는 ‘항상, 특히 매 교전 후에’ 적용된다(제1협약 제15조). 따라서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 미군이 일본군 상병자를 약탈하고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국제인도법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설령 그 일본군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다양한 위협이 상존하는 전장에서 ‘항상’ 적 상병자와 사망자를 수색·구호할 것을 요구하는 국제인도법 규정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특히 해전에서는 이러한 의무가 오히려 부대를 위험에 노출시키거나 임무 수행을 저해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이 같은 이유로 교전 당사국이 부담하는 수색·구호 의무의 이행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지상전에서 이 의무가 ‘항상, 특히 매 교전 후에’ 적용되는 것과 달리 해전에서는 ‘매 교전 후에’만 적용되는 것도 전장의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제2협약 제18조). 따라서 잠수함이 교전 직후 적 상병자 구호조치를 포기했다고 해서 국제인도법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해당 잠수함은 생존자 위치를 주변 선박에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수색·구호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력충돌 시 군대의 상병자와 조난자에 대한 보호 의무가 실질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이들을 치료하는 의무요원의 보호가 전제돼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1949년 제네바 제1협약 제24조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의무요원을 존중하고 보호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의무요원은 정규군에 속한 군인이지만, 전적으로 의료 업무에 종사하는 한 직접적·고의적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의무요원은 군 당국이 발급한 특수표장이 표시된 완장을 왼쪽 팔에 두르고 신분증명서를 휴대해야 한다(제1협약 제40조). 여기서 의무요원은 해당 국가에 의해 전적으로 의료 목적이나 의무부대 행정 또는 의료수송 운영이나 행정에 배속된 자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동물 치료를 전담하는 수의사는 의무요원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의무요원이 생포될 경우 교전 상대국은 포로 수나 건강상태를 고려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들을 억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들을 원 소속국으로 송환해야 한다(제1협약 제30조). 또한 억류된 의무요원들이 일반 군인들과 같이 전쟁포로 지위를 갖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자국 포로에 대한 의료활동을 계속 수행해야 하며, 이를 거부하는 경우에 한해 포로 지위를 갖게 된다. 전적으로 성직에 종사하는 종교요원 역시 의무요원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

필자 안준형은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인도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필자 안준형은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인도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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