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처가 식구에 요리 대접·아이와 댄스 챌린지…“아빠 안 잔다”

입력 2024. 01. 17   16:12
업데이트 2024. 01. 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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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서 만나는 2024 트렌드 - 요즘 남편, 없던 아빠 

맞벌이 늘고 밀레니얼 세대 주축 되자
결혼 과정·가정 내 전통적 남성상 깨져
지난해 男 뷰티 시장 1조 원 돌파하고
살림·요리 잘하는 남자 콘텐츠 대세로
주목할 건 ‘남편’ 자체가 줄고 있는 점 
원하는 삶 가능케 하는 지원 이뤄져야


결혼정보회사에 A와 B 두 사람이 찾아왔다. A와 B는 원하는 배우자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A: 제가 버니까 경제력은 중요치 않고요, 외모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B: 상대가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기업 다니면 좋고요. 
두 사람의 발화를 읽고 A는 남성, B는 여성일 것이라 생각했다면 이제 고정관념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결혼정보회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매니저에 따르면, A의 말은 요즘 고소득 여성 회원들에게서 많이 듣는 말이고 B의 말은 맞벌이를 원하는 남성 회원들이 많이 하는 요청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통용된 고정관념이 변화하고 있다. 가정에서 남성은 경제활동을 책임지고 집안일이나 육아에서는 보조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밀레니얼 가족 내에서 남편과 아빠의 모습이 다변화된다. 말 그대로 요즘 시대 감성을 탑재한 ‘요즘 남편’, 이전 세대에게서 볼 수 없던 아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없던 아빠’의 등장이다.

먼저 가정생활에 앞서 결혼 과정이 달라졌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혼 남녀가 배우자에게 바라는 모습에서 성별 간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력이 커진 만큼 남녀 모두 1순위로 외모를, 2순위로 경제력을 중요하게 본다. 이에 따라 외모를 가꾸는 남성들이 많아졌다. 스킨케어·향수·면도용품을 모두 합친 국내 남성 뷰티 시장 규모는 2023년 1조1100억 원으로 추산되며 젊은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CJ올리브영에서는 2023년 남성 뷰티 매출이 전년 대비 30% 성장했다고 한다. 남성 또한 여성의 경제력이 중요해지는 만큼 배우자의 요건으로 고소득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업 안정성을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예비 신랑·신부의 결혼 준비도 이전과는 다르다. 결혼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점차 의례는 생략하고 실용적인 살림살이와 신혼여행 위주로 지출하는 것을 선호하며 비용 부담 또한 남성에게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예비부부가 함께 부담하는 ‘반반결혼’을 지향하는 커플도 많아졌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최근 결혼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혼 비용을 남성이 60%(1억7272만 원), 여성이 40%(1억1467만 원) 정도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을 꾸린 후에 역할 분담도 유연해진다. 밀레니얼 부부는 ‘팀플(팀플레이)’처럼 가정을 경영한다. 각자의 R&R(Role&Responsibility)을 논의해 정할 때 시간·공간·일의 특성 등 다양한 기준으로 가사를 분담하고 효율성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 남성이 해야 할 일, 여성이 해야 할 일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하는 사람이 요리·장보기·인테리어·가드닝 등 효율이 높은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가장’의 역할 또한 그렇다. 여성의 소득이 더 높고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여성이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방송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 등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남편상도 달라졌다. 살림에 일가견을 보이는 기혼 남성들이 ‘능력 있는’ 남편으로 그려진다. 유튜브 채널 ‘취미로 요리하는 남자’에서 특히 인기있는 영상 역시 단지 요리만 잘하는 모습보다는 아내·처가 식구·아내의 직장 동료들에게 직접 만든 요리로 대접하는 모습이다. 댓글을 통해 시청자들은 ‘아내분 기를 살려준다’면서 내조의 의미 변화를 드러낸다.

‘아빠’의 존재도 꽤 오래전부터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했지만 시대에 따라 어떤 아빠가 될 것인지 지향점이 조금씩 달라졌다. 10년 전 처음 방영된 ‘아빠 어디가?’에서는 당시 출연자 윤후가 첫 방송에서 아빠와 둘이서만 자고 와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당시 아버지는 아이에게 서먹한 존재였고 이때 ‘프렌디(프렌드+대디)’ 개념이 등장하면서 많은 아버지가 꿈꾸는 이미지가 됐다.

한편, 2020년대에 이르러 방송에 로망으로 등장하는 아빠는 ‘열혈 아빠’에 가깝다. ‘물 건너 온 아빠들’에서는 육아에 관한 노하우와 철학을 나누고, ‘녹색아버지회’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환경보호 활동을 할 때도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틱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에는 아빠와 아이가 옷차림을 똑같이 맞춰 입은 사진이나 댄스 커버를 함께 하는 영상 등이 인기가 많다. 이제 친구처럼 놀아주는 것을 넘어 주 양육자로서 가정에 깊숙이 자리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한 가정생활의 변화는 오랫동안 서서히 진행돼 온 변화이자 향후에도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변화이다. 사회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최신 자료(2022년 기준)에 따르면 30대 가구 중 맞벌이의 비율은 54.6%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면서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워킹맘’만의 문제였던 일 가정 양립이 이제는 과반수의 가구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요구되는 이슈로 부상했다.

단순히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요인뿐만 아니라 세대가 변화한 이유도 있다. 밀레니얼 가족이 주말에 가장 자주 찾는 곳은 근교에 위치한 아웃렛이다. 과거 쇼핑몰이란 여성들의 공간이며 남성은 매우 지루하게 기다리는 공간이었던 것에 반해 요즘은 함께 유모차를 밀며 쇼핑 공간을 산책하고 남성들은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 들러 ‘득템’의 기회를 노린다. 요즘 남편에 해당하는 젊은 남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비 문화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남성들도 맛집을 가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올리고 자신만의 취미와 취향을 가진 만큼 가정생활의 모습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많은 가정에서 여전히 남성이 경제활동을 책임지고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고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 남편’ 트렌드를 다루며 언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는 요즘은 ‘남편’ 자체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가치관과 지향점의 변화와는 달리, 실제 사회에서 경험하는 제도와 문화는 더디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요즘 남편, 없던 아빠가 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 전체가 가정의 변화를 상상하고 누구나 원하는 삶의 모습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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