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모형으로 만나는 항공기 세상

세 글자 ‘K.A.C’<Korean Air Corps: 한국 공군> 새겨 독립 열망으로 뭉친 청년들 창공을 날다

입력 2024. 01. 10   16:43
업데이트 2024. 01. 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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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으로 만나는 항공기 세상 - 조국 독립의 꿈, 창공에 심다

1920년 2월 ‘윌로스 비행학교’ 설립

독립군 공군 양성소, 재정난에 문닫았지만
한인 청년 비행사들 미·중·일서 독립운동 이어가
초기 훈련기 ‘슬론사의 스탠더드 J-1’ 사진 없어
‘제니스사의 JN-4D’ 통해 항공 역사 확인

JN-4D 모형.
JN-4D 모형.



1910년 강제 한일합병 이후 우리 민족은 다양한 계층에서 각자의 가능한 방식대로 독립운동을 펼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남겨져야 할 역사적인 사실과 기록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단편적이고 조각의 파편으로 남아 우리 후손들에게 그 독립운동의 위대한 역사가 보이지 않게 된 이유라 생각한다. 필자가 모형비행기 제작 취미를 갖게 된 단초도 이러한 우리의 항공 역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흩어져 사라져가고 있음이 안타까워서다. 항공기의 본격적인 역사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라이트형제의 비행이 성공하며 시작된 상업비행과 1차 세계대전에서의 항공기의 위력을 보면서 우리 민족은 창공에 독립의 꿈을 심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3·1운동 이후, 1920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약 230㎞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북부 윌로스(Willows) 시(市) 일원의 대평원에 문을 연 비행학교에서는 ‘독립군 공군 양성’이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원대한 꿈이 최소 1년 6개월 정도 이어졌다. 수십 명의 한인 청년들이 이곳에서 비행사 훈련을 받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중 최소 2명을 (독립군) 비행장교로 공식 임관시켰다. 이는 윌로스 비행학교가 단순히 재미동포 김종림 개인의 독립운동이 아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책적 독립운동이었음을 알려준다. 이 또한 최근에서야 여러 자료를 발굴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사실들이다.
윌로스 비행학교는 1920년 2월 20일 설립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윌로스 비행학교에는 2월 19일 이전에 비행기 3대와 비행장 부지 40에이커 구매, 교관과 정비사 채용, 학교건물 임대차 계약, 학생 15명 모집 등이 모두 마무리된 것으로 기록들이 전하고 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부호였던 김종림의 농장이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보면서 지속적인 지원이 어려워진 비행학교는 공식적으로 1921년 4월에 폐쇄됐다. 하지만 당시 비행학교의 훈련생들은 미군이나 중국 군벌의 비행단에 입대하는 등 독립을 위한 비행을 지속했으며 향후 대한민국 공군의 실마리가 됐다.

당시의 윌로스 비행학교에서 사용된 항공기는 자료들이 많지 않다. 초기에는 제니스사의 JN-4D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항공 역사들의 확인을 통해 당시 최첨단 훈련기 가운데 하나인 ‘스탠더드 J-1(Standard J-1)’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의 기체들은 복엽기에 기능과 구조들이 유사하고 명확한 사진이 없어 그동안 잘못 알려진 것으로 판단된다. 결과적으로 기종의 확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재조명하게 만든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윌로스 비행학교의 훈련기에는 ‘K.A.C’라는 표시도 선명히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무엇의 약자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이 학교를 깊게 연구한 케네스 클라인 남가주대학(USC) 동아시아도서관장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이 비행학교는 동호인 모임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군 양성을 위해 공식적으로 추진한 곳”이라며 “따라서 ‘K.A.C’는 대한민국 공군을 뜻하는 ‘Korean Air Corps’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당시 비행학교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을 ‘사관생도’라 여겼고 재미동포들이 이 학교를 ‘사관 양성소’라 불렀다는 기록들을 통해 이 비행학교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 공군은 지난 1992년 ‘1920년 임시정부 군무총장(국방장관) 노백린 장군 등이 캘리포니아 윌로스에 설립한 비행사 양성소에서 오림하, 이용선, 이초, 한장호, 이용근, 장병훈 등 6명의 비행사를 배출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이는 1920년 4월 독립신문이 최초의 조종사 6명이 탄생했다는 사실과 함께 약 40명의 조종훈련생이 미국에서 양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윌로스 비행학교의 1920년 모습. ‘미국 가주(加州·캘리포니아) 한인 비행대… 노백린 장군 지휘하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사진=USC 동아시아 도서관
윌로스 비행학교의 1920년 모습. ‘미국 가주(加州·캘리포니아) 한인 비행대… 노백린 장군 지휘하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사진=USC 동아시아 도서관



스탠더드 J-1은 미국 스탠더드 항공사가 슬론(Sloan) 항공사의 비행기 ‘Sloan Model H’를 기반으로 개발한 훈련기였다. 1916년부터 생산된 스탠더드 J-1은 당시 훈련기로서는 첨단 기종이었으나 경쟁 기종이었던 제니 시리즈에 비해 엔진의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총 1601대가 생산된 스탠더드 J-1은 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잉여기체들이 남아돌기 시작하지만 김종림의 후원으로 구입한 항공기는 미 육군항공대에서도 막 장착하기 시작한 무전기까지 갖춘 최첨단의 항공기였다. 이때 윌로스 비행학교에서는 개소 당시 3대의 항공기와 후에 2대를 추가해 총 5대의 스탠더드 J-1항공기를 운영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당시 일본 첩자의 보고서 ‘국외정보: 최근 구미에 있어서 불령선인의 행동’에 연습생 25명, 무선전신장치가 있는 완전한 비행기 5대라는 보고를 했다. 하지만 1차 대전 종전은 김종림의 사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농장의 주요 생산품인 쌀의 수요 급감과 태풍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로 지속적인 항공 독립의 꿈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윌로스 비행장의 폐쇄에도 불구하고 김종림, 노백린 등 비행학교의 주역들은 향후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당시 윌로스 비행학교 출신 비행사들은 중국이나 미국의 비행사가 돼 직간접적으로 대일전쟁에 참전하고 일부는 민간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필자가 이를 모형으로 구현할 당시에는 정설이 JN-4D기체로 알려져 있었던 때라 1/48 JN-4D 모노그램 키트로 재현했다. 현대에는 이 기체에 흥미를 두거나 관심을 갖는 모형인들이 없다보니 구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키트의 상태도 1960년대 올드킷으로 이미 골동품화해 파손, 건조, 변형 등이 있었다. 각 파트의 재구성, 재가공, 부품의 자작, 리깅(와이어) 부분의 자료 수집, 기체 도색을 위한 컬러의 확인 등 제작에 어려움이 많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리깅 작업과 디테일 파트 부품들도 자작으로 만들면서 복원하는 재미를 느끼게 했던 작업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한국공군 시리즈의 복원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기종에 따라 향후 스탠더드 J-1을 제작할 예정이나 키트로 발매된 것은 현재로서는 없고 3D프린팅 기술의 발전에 따라 3D모델링과정을 거쳐 향후 제작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유승용은 동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이며, 제품 디자인 개발이나, 항공기 관련 스케일 모델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ROKAF COLORS VOL.1 대한민국공군 특수비행팀 블루세이버 1956~1966』『Fly to Rome_Illustbook』등이 있다.
필자 유승용은 동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이며, 제품 디자인 개발이나, 항공기 관련 스케일 모델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ROKAF COLORS VOL.1 대한민국공군 특수비행팀 블루세이버 1956~1966』『Fly to Rome_Illustbook』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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