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현대 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지성사’ 흐름 파악해야 서양문명 이해 쉬워져

입력 2024. 01. 10   16:59
업데이트 2024. 01. 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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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 왜 서양세계 지적 흐름 이해가 중요할까(1)

인간의 정신이 걸어온 역사 ‘지성사’
사상은 추상적 개념으로만 보이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주체기도 해
AI가 발달해도 질문은 결국 사람의 몫
논리적 사유·지식 구조화 능력 키워야
배경지식 쌓여야 사고력 더 깊어지듯
사회 전 분야에 서구문명 도입한 한국
사상적 뿌리 알아야 또다른 도약 가능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한 영국 과학자 아이작 뉴턴. 게티이미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한 영국 과학자 아이작 뉴턴. 게티이미지


19세기 말 이래 우리나라는 처음에는 일본을 통해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 이후에는 주로 미국을 통해서 서양문물을 접하고 수용했다. 1960년대 이래의 빠른 산업화는 서구화를 더욱 촉진해 오늘날 우리 사회는 거의 전 분야에 걸쳐서 서양문명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특히 우리 군의 경우에는 군대조직에서부터 무기체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서양에서 도입한 기본 틀 위에 형성돼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다양한 제도는 ‘외피’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으나 드러난 겉모습의 진정한 형성력인 사상(思想)이라는 ‘내피’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 분야까지 알아야 진정 서양세계를 이해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양문명 속 지적(知的) 토대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추적해 오늘날 서양인과 서양사회의 심층을 이해하려는 것이 본 연재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시대 순으로 엄선한 전체 약 15개 주제를 격주로 게재한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애독을 기대한다.


“생각을 조심하라, 생각은 말이 되나니
말을 조심하라, 말은 행동이 되나니 
행동을 조심하라, 행동은 습관이 되나니 
습관을 조심하라, 습관은 인격이 되나니 
인격을 조심하라, 인격은 너의 운명이 되나니.” 

마거릿 대처 전(前) 영국 총리의 언급처럼, 인간 행동의 출발점은 바로 두뇌의 작용인 생각이다. 바로 이 ‘생각하는 힘’ 덕분에 인간이란 종(種)은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지성사(知性史)란 역사학의 여러 분야 중 ‘인간의 정신이 걸어온 역사, 즉 인간의 정신에서 비롯한 관념과 사상의 역사’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유럽 지성인들의 정신이 펼쳐낸 각양각색의 관념과 사상이 당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현재까지 서양인의 사고와 생활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하는 역사학의 한 분야다. 지성사는 인간의 정신활동 전체를 아우르나 주로 역사상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일류 사상가들의 주장과 이를 담지(擔持)하고 있는 고전(古典)이 당대 혹은 후대의 인간 행위나 사회제도에 끼친 영향 및 상호 관련성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사상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흔히 지성사의 입장에서는 ‘마음이나 정신이 전(全) 역사 발전 뒤에 있는 궁극적인 동력이다’고 전제한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사상은 정신에서 기인해 물질세계에서 자신을 표출하고자 하는 나름의 동력’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사상 그 자체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사상은 사람을 움직여 행동하게 함으로써 물질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주체가 된다.

우리는 통상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처럼 특정한 사상의 발견이나 창조를 개인의 업적으로 돌린다. 하지만 인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사상들은 다른 사람들의 누적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을 통해서 성숙해 적당한 시점에 한 빼어난 사상가의 자각을 통해 발현됐을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뉴턴 스스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 비유를 말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상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산물이고 특수한 역사적 및 문화적 환경의 산물이다. 동시에 사상은 이러한 역사적 및 문화적 경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광범위한 지역에 전파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면서 때론 강력한 변화의 동인(動因)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일찍이 독일의 대표 시인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번갯불이 천둥에 앞서듯이 사상은 행동에 앞선다”고 갈파한 바 있다.

그리고 어떠한 사상가도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을 수는 없으나 위대한 사상가들이 남긴 글은 시공을 초월해 후대인에게 큰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된다. 이들은 자신이 처했던 시대적 문제를 철저하게 사유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부터 선인들은 현자(賢者)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그릇인 ‘고전(古典)’의 중요성과 이의 정독(精讀)을 강조해 왔다.

‘철의 여인’이라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연합뉴스
‘철의 여인’이라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연합뉴스


싫든 좋든 오늘날 우리는 서양 세계의 영향 속에서 그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양인 혹은 서양사회에 대해 잘 알려고 다각적인 노력을 펼친다. 평소 생활 속에서 어느 특정인을 짧은 시간 내에 잘 알기 위해서는 그의 이력서를 보면 된다. 이처럼 한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려면 그 사회의 과거사, 즉 역사를 살펴보면 된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한 개인 또는 인간집단의 움직임을 통해 형성되는 것인바, 근원적으로는 행동하게 만드는 단초인 생각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서양세계 또는 서양문명을 이해하려면, 우선적으로 사상적 측면에서 이들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와 오늘에 이르렀는지 지성사(知性史)의 큰 흐름을 대략적으로라도 인지(認知)하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사고력이란 배경지식이 쌓여야 그 속에서 연상하고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지식 습득 과정이 너무 단편적이고 단타적인지라 필요한 배경지식을 쌓을 만한 여유가 없다. 의도적으로라도 사상의 흐름처럼 긴 호흡으로 생각하면서 느리게 나아가는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논리적 사유를 통해 지식을 구조화하는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결국에는 범람하는 가짜 뉴스 유형의 자극적인 정보에 쏠리게 됨으로써 자칫하면 이러한 정보 생산자의 희생물로 전락할 소지가 다분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요즘 거세게 밀려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사용자인 인간이 필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른바 ‘좋은’ 질문을 하려면 사전에 인간 자신이 해당 이슈의 전체상을 뇌 속에 정리된 생각으로 갖고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체계적이고 일관된 학습을 통해 무엇보다도 지성적 측면에서 서양 세계가 어떠한 발전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전체 그림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이 깔아 놓은 판에서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나라가 ‘전술국가’라면, 직접 판을 펼치는 나라가 ‘전략국가’라고 모 교수가 단언한 바 있다. 우리는 그동안 ‘빠른 모방’을 통해 기적적으로 경제력 측면에서 세계 10위에 버금가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야만 한다. 이는 군사적 측면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듭해 말하지만 오늘날 서양 세계를 형성해온 지적(知的) 뿌리가 무엇인가를 어렴풋하게라도 알아야 한다. 우리 국방체계도 원래는 대부분 서양 세계에서 파생된 것이기에 이들의 사상적 근원에 대한 이해는 매우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19세기 말이래 우리가 힘들여 수용한 서구 시스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이어서 거기에 우리 고유의 것을 창의적으로 덧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본 시리즈가 이러한 필요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필자 이내주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고, 영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고, 영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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