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는 분명 설레고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담되고 긴장되는 일이기도 하다. 부담스럽지 않게 상대방에게 관심을 표함과 동시에 이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탐색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 수 있으며 대화가 끊기 않는 ‘적당한’ 주제를 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날씨 같은 무난한 이야기만 하자니 친밀감 형성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고, 그렇다고 바로 가족관계나 고향 같은 인적 사항을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날의 가십이나 연예계 화젯거리는 너무 가볍고, 정치나 종교 관련 질문은 성향이 일치한다면 급격하게 친해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얼굴 붉히기 딱 좋은 주제다. 이럴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질문이 바로 성격유형검사인 MBTI다. 요즘 자기소개를 할 때 약속이나 한 듯 MBTI를 밝히는 걸 보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보다.
MBTI는 2019년 말 MZ세대들의 ‘놀이’로 유행한 뒤 이제는 대한민국 대중들의 일상에 안착했다. 한동안 대한민국은 MBTI 열풍이었다.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지만 아직까지도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는 걸 보면 쉽게 유행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한계와 비판 여론도 많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이력서나 면접질문에도 MBTI가 활용되는 현상에 우려를 표한다. 또한 이 검사는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기 때문에 긍정편향이 심하고, 따라서 정확도도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각인된 주제인 만큼 다양하게 대화가 전개될 수 있다는 건 이 주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고 생각한다.
비판적이든 우호적이든. 상대방이 아직 MBTI를 모른다면, 일종의 성격유형 검사로서 내가 외향(E)적인지 또는 내향(I)적인지, 감각(S)적인지, 직관(N)적인지, 사고(T)형 혹은 감정(F)형 판단을 하는지, 판단(J) 혹은 인식(P)적 생활양식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는 검사라고 설명해주면 된다.
실제로 나는 얼마 전 업계 사람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MBTI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내가 INFJ인 걸 말하자 상대방은 임영웅과 아이유도 같은 성격유형이라고 답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평소에 즐겨 듣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는 원래 아이돌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출산 후 요즘은 동요를 가장 많은 듣는다고 했고,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이 정치인이었지만 대학 졸업 후 아나운서로 진로변경을 했다는 것까지 이어졌다. 약 2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간 우리는 내 생일이 있는 다음 달인 2월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때는 서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곱창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INFJ에요”로 시작된 대화가 다음 약속을 기약하는 사이로 이어진 것이다. “나는 나를 이러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알아가면 더 좋을까요?”라고 물었다면 대화는 꽤 어색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국방일보의 지면을 이런 사적인 이야기로 채우다니! 사실 이 모든 대화는 여러분께 내 소개를 하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이었다. 앞으로 격주로 여러분과 만나며 일상에서의 소소한 경험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어색하지 않은 첫인사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선정한 주제가 또 MBTI인 걸 보면, 첫 만남의 긴장감을 풀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대화주제는 당분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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