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밑 여행자들의 보물창고 해방 후 실향민 정착하며 이름 생겨 지금은 외국인·예술가들의 ‘자유 해방구’ MZ세대 핫플레이스로 경사 급한 골목 만만찮지만 365일 매일 사람꽃·집꽃·이야기꽃 만발 남산 뷰·인생 버거 즐기며 느릿느릿 걷는 재미
서울 해방촌 골목.
해방촌은 보물창고
자연과 도시, 여행 취향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도시가 취향이다. 나이 지긋한 도시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는 재미를 좋아한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우선 데리고 가는 곳 역시 서울의 옛 골목들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은 없지만, 오랜 시간 평범한 사람들이 일군 자잘한 흔적은 살아 있는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남산 밑 해방촌은 서울의 자랑이고, 여행자들의 흥미로운 보물창고다. 광복과 6·25전쟁의 역사 위에 새로움이 빠르게 추가되고 있는 해방촌. 경복궁이 과거를 대표하는 명소라면, 해방촌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골고루 섞인 젊은 여행지다.
실향민들의 임시 거주지
해방촌은 행정구역상 서울 용산2가동 대부분과 용산1가동 일부를 말한다. 해방 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다른 나라 동포들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해방 후의 마을이라 해서 이름도 해방촌. 전쟁 통에 고향을 잃은 이들이 남산 밑에 토굴과 판잣집을 지으며 마을이 시작됐는데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술집, 음식점이 요란하게 반짝이는 곳이기도 했다. 빈민촌이면서 영어가 어디서나 들리는 독특한 성격의 국제적 동네였다. 70년이 지난 지금, 10%가 넘는 외국인이 해방촌에 산다. 여전히 국제적인 동네다. 게다가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역시 해방촌 주변에서 촬영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빙의해 흥분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귀엽다.
서울 해방촌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
한겨울 서울 해방촌 골목에 눈이 쌓여 있는 모습.
한때 한 집 건너 한 집 스웨터공장
해방촌 초창기엔 실향민들이 담배를 말아 생계를 유지했다. 포장이 있는 정식 담배가 아닌, 집에서 말아서 파는 일명 가짜 담배. 정부에서 가짜 담배를 단속하자 그때부터 스웨터와 털장갑, 청바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거대한 봉제공장 타운이 된다. 한때 우리나라 스웨터의 30%가 해방촌에서 나왔으니 한 집 건너 한 집은 재봉틀을 돌렸다는 얘기다. 북한에서 토지개혁으로 땅을 빼앗기고, 쫓겨나듯 남쪽에 내려와서는 고된 노동으로 입에 풀칠하며 자신의 신세를 기막혀했다. 부유했던 이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겨우 먹고사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MZ세대 눈이 휘둥그레지는 핫플레이스로 가득하다. 주인 없는 산비탈이란 이유로 마구 지어졌던 허름한 집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다세대주택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아파트에 익숙한 이들에게 경사가 급한 골목은 새로움이 됐고 특색 있는 음식점, 개를 끌고 산책하는 외국인들은 외국 어디쯤인가 싶은 이색적 감흥을 선사한다.
서울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곳
해방촌 여행은 체력을 요구한다. 씩씩한 국군 장병에게는 산책 정도의 난도지만, 무릎이 시큰한 중장년층에겐 만만치 않은 급경사다. 아기를 태운 유모차까지 있다면 해방촌 여행은 무리다. 수많은 계단을 유모차로 오르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청춘의 튼튼한 무릎과 자유가 해방촌 입장권인 셈이다. 직선거리 2㎞가 명동, 3㎞가 종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빌딩숲이 코앞인데, 변변한 빌딩 하나 없는 해방촌 골목은 시간이 멈춘 느낌을 준다. 레고블록으로 하나씩 쌓아 올린 거대한 성 같기도 하다. 남산도서관 건너편에 바와 카페가 특히 많은데, 옥상에서 독보적인 서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신흥시장 음식점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한 건물에 그려진 벽화.
해방촌 신흥시장의 카페.
해방촌의 또 다른 핫플레이스 신흥시장
해방촌을 상징하는 신흥시장은 디자인 공모로 당선된 작품. 원래 시장 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모자의 챙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길을 따라 카페, 술집, 맛집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하늘로 뚫린 개방적 공간은 작지만 작지 않고, 오래됐지만 참신한 느낌도 동시에 준다. 대부분 전국구 맛집이라 평일에도 웨이팅 줄이 길다. 해방촌 맛집을 추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골목골목을 걷다가 손님이 붐비는 곳, 흥미로운 곳으로 그냥 들어가 보자. 남들이 많이 가는 핫플레이스도 좋지만, 이제 막 문을 연 곳을 발견하는 것 역시 해방촌의 큰 재미다. 일식, 중식은 물론 미국·아프리카·중동 음식점들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외국 반찬가게도 있다. 월요일에 문을 닫는 가게가 특히 많으니 가고 싶은 식당이 있다면 미리 검색하고 방문할 것.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다른 모습
해방촌은 사계절 각각 다르게 예쁘니 한 번 가 봤다고 발길을 끊으면 안 된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남산이 보이거나 이태원으로 향하게 되거나 한다. ‘햄버거 덕후’는 인생 햄버거를, 채식주의자라면 각양각색의 채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더 국제적인 곳이 있을까? 경리단길, 이태원으로 이어지는 한국인가 외국인가 알쏭달쏭한 해방촌에서 비행기를 안 타고도 해외여행이 가능하다. 꽃구경은 봄이어야 가능하지만 해방촌이라면 365일 매일 사람꽃, 집꽃이 만발이다. 웰컴투 해방촌! 사진=필자 제공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EBS ‘세계테마기행’ 등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계 각지의 생생한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남산 밑 여행자들의 보물창고 해방 후 실향민 정착하며 이름 생겨 지금은 외국인·예술가들의 ‘자유 해방구’ MZ세대 핫플레이스로 경사 급한 골목 만만찮지만 365일 매일 사람꽃·집꽃·이야기꽃 만발 남산 뷰·인생 버거 즐기며 느릿느릿 걷는 재미
서울 해방촌 골목.
해방촌은 보물창고
자연과 도시, 여행 취향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도시가 취향이다. 나이 지긋한 도시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는 재미를 좋아한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우선 데리고 가는 곳 역시 서울의 옛 골목들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은 없지만, 오랜 시간 평범한 사람들이 일군 자잘한 흔적은 살아 있는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남산 밑 해방촌은 서울의 자랑이고, 여행자들의 흥미로운 보물창고다. 광복과 6·25전쟁의 역사 위에 새로움이 빠르게 추가되고 있는 해방촌. 경복궁이 과거를 대표하는 명소라면, 해방촌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골고루 섞인 젊은 여행지다.
실향민들의 임시 거주지
해방촌은 행정구역상 서울 용산2가동 대부분과 용산1가동 일부를 말한다. 해방 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다른 나라 동포들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해방 후의 마을이라 해서 이름도 해방촌. 전쟁 통에 고향을 잃은 이들이 남산 밑에 토굴과 판잣집을 지으며 마을이 시작됐는데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술집, 음식점이 요란하게 반짝이는 곳이기도 했다. 빈민촌이면서 영어가 어디서나 들리는 독특한 성격의 국제적 동네였다. 70년이 지난 지금, 10%가 넘는 외국인이 해방촌에 산다. 여전히 국제적인 동네다. 게다가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역시 해방촌 주변에서 촬영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빙의해 흥분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귀엽다.
서울 해방촌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
한겨울 서울 해방촌 골목에 눈이 쌓여 있는 모습.
한때 한 집 건너 한 집 스웨터공장
해방촌 초창기엔 실향민들이 담배를 말아 생계를 유지했다. 포장이 있는 정식 담배가 아닌, 집에서 말아서 파는 일명 가짜 담배. 정부에서 가짜 담배를 단속하자 그때부터 스웨터와 털장갑, 청바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거대한 봉제공장 타운이 된다. 한때 우리나라 스웨터의 30%가 해방촌에서 나왔으니 한 집 건너 한 집은 재봉틀을 돌렸다는 얘기다. 북한에서 토지개혁으로 땅을 빼앗기고, 쫓겨나듯 남쪽에 내려와서는 고된 노동으로 입에 풀칠하며 자신의 신세를 기막혀했다. 부유했던 이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겨우 먹고사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MZ세대 눈이 휘둥그레지는 핫플레이스로 가득하다. 주인 없는 산비탈이란 이유로 마구 지어졌던 허름한 집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다세대주택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아파트에 익숙한 이들에게 경사가 급한 골목은 새로움이 됐고 특색 있는 음식점, 개를 끌고 산책하는 외국인들은 외국 어디쯤인가 싶은 이색적 감흥을 선사한다.
서울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곳
해방촌 여행은 체력을 요구한다. 씩씩한 국군 장병에게는 산책 정도의 난도지만, 무릎이 시큰한 중장년층에겐 만만치 않은 급경사다. 아기를 태운 유모차까지 있다면 해방촌 여행은 무리다. 수많은 계단을 유모차로 오르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청춘의 튼튼한 무릎과 자유가 해방촌 입장권인 셈이다. 직선거리 2㎞가 명동, 3㎞가 종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빌딩숲이 코앞인데, 변변한 빌딩 하나 없는 해방촌 골목은 시간이 멈춘 느낌을 준다. 레고블록으로 하나씩 쌓아 올린 거대한 성 같기도 하다. 남산도서관 건너편에 바와 카페가 특히 많은데, 옥상에서 독보적인 서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신흥시장 음식점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한 건물에 그려진 벽화.
해방촌 신흥시장의 카페.
해방촌의 또 다른 핫플레이스 신흥시장
해방촌을 상징하는 신흥시장은 디자인 공모로 당선된 작품. 원래 시장 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모자의 챙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길을 따라 카페, 술집, 맛집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하늘로 뚫린 개방적 공간은 작지만 작지 않고, 오래됐지만 참신한 느낌도 동시에 준다. 대부분 전국구 맛집이라 평일에도 웨이팅 줄이 길다. 해방촌 맛집을 추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골목골목을 걷다가 손님이 붐비는 곳, 흥미로운 곳으로 그냥 들어가 보자. 남들이 많이 가는 핫플레이스도 좋지만, 이제 막 문을 연 곳을 발견하는 것 역시 해방촌의 큰 재미다. 일식, 중식은 물론 미국·아프리카·중동 음식점들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외국 반찬가게도 있다. 월요일에 문을 닫는 가게가 특히 많으니 가고 싶은 식당이 있다면 미리 검색하고 방문할 것.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다른 모습
해방촌은 사계절 각각 다르게 예쁘니 한 번 가 봤다고 발길을 끊으면 안 된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남산이 보이거나 이태원으로 향하게 되거나 한다. ‘햄버거 덕후’는 인생 햄버거를, 채식주의자라면 각양각색의 채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더 국제적인 곳이 있을까? 경리단길, 이태원으로 이어지는 한국인가 외국인가 알쏭달쏭한 해방촌에서 비행기를 안 타고도 해외여행이 가능하다. 꽃구경은 봄이어야 가능하지만 해방촌이라면 365일 매일 사람꽃, 집꽃이 만발이다. 웰컴투 해방촌! 사진=필자 제공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EBS ‘세계테마기행’ 등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계 각지의 생생한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