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파란만장 커피사

급격한 기후 변화, 커피가 멸종될 수도 있다

입력 2023. 12. 26   15:50
업데이트 2023. 12. 2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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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커피사 - 커피의 미래 <끝> 

야생커피 124종 중 75종 멸종 위험
고단해지는 인류, 커피 더욱 갈망해
커피 소비량이 생산량 뛰어넘어
맛·수익성 따져 재배하지 않았던
리베리카·엑셀사·스테노필라 재배
실험실 세포 배양 빈리스 커피도 등장
미래엔 AI 활용 품종·취향 선택할수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커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온 상승, 불규칙한 강수량, 질병, 가뭄, 산사태 등 인류가 초래한 기후위기는 커피 재배 농가를 빈곤에 빠뜨리고 있다. 2050년까지 커피 재배지의 절반이 홍수와 가뭄으로 폐허가 되고, 온도 상승으로 인해 병충해가 극성을 부려 2080년에는 커피나무가 멸종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영국왕립식물원은 기후변화로 전 세계 야생 커피 124종 중 75종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갈수록 고단해지는 인류의 삶은 커피를 더욱 갈망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커피협회(ICO)에 따르면 커피 소비량이 마침내 생산량을 넘어섰다. 2021/2022년도에 전 세계 커피 소비량은 약 1억7030만 포대로, 이전 커피 연도(2020/2021)의 세계 커피 소비량 1억6490만 포대에 비해 3.3%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2021/2022년도에는 커피 소비량이 생산량을 약 310만 포대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커피 연도(coffee year)는 재배 및 수확 시기 등을 고려해 매년 10월부터 다음 해 9월까지이다.

이대로 두면 커피는 사라지게 된다. 생산지와 소비지를 따지지 않고 커피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각종 사업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맛이나 수익성을 따져 재배하지 않았던 리베리카 종과 엑셀사 종 커피나무도 다시 재배되기 시작했다. 향미 품질이 우수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지구온난화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아라비카 종은 고온과 병충해에 강한 신품종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이와 함께 나무에서 수확하는 게 아니라 실험실에서 세포 배양되거나 공장에서 커피가 아닌 다른 재료들을 섞어 만드는 빈리스 커피(Beanless Coffee, 콩이 없는 커피)도 등장했다.


고온이 악영향을 주는 메커니즘

기온이 오르면 강우량과 일조량이 격변하고, 이에 따라 커피의 수확 시기를 불안하게 만들어 생산량이 줄어든다. 병충해가 급증하면 나무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이 기온이 낮은 산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면서 재배 면적의 감소에 가속도가 붙는다.

기온이 어떨지는 하늘에 달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병충해와 기온 변화를 견딜 수 있는 품종의 개발이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음료로서 맛을 유지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일교차가 충분하지 않게 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커피나무는 본래 아열대성 식물로서 추위에 약하다. 그렇다고 날씨가 덥기만 해서도 안 된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일교차가 커야 한다. 이 때문에 품질이 좋은 커피는 해발고도 1000~2000m인 열대 지방 고산 지대에서 주로 재배된다. 낮에는 온도가 높고 밤에는 서늘한 날씨 덕분에 열매가 서서히 숙성되면서 씨앗에 영양분을 가득 채울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구원투수 ‘스테노필라’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없다면 적응이라도 해야 한다. 온난화에 살아남으면서 맛이 유지되는 품종을 찾아내는 것이다. 학계에 보고된 다양한 신품종 가운데 스테노필라 커피(Coffea stenophylla)가 위기를 구할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라비카 커피의 대안으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품종이다.

스테노필라는 1834년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처음 발견됐다. 커피 열매가 일반적으로 빨간색인 것과 달리 검은색이다. 20세기 초까지 서부 아프리카에서 재배됐으나 이보다 생산량이 좋은 로부스타로 대체되며 잊혔다. 기니와 코트디부아르에서도 야생종이 발견됐으나 삼림 벌채로 대부분 사라졌다. 열매를 맺는 시간이 아라비카보다 2배 가까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스테노필라가 재배종으로서 외면받은 이유가 됐다.

스테노필라가 재배되는 기온은 연평균 섭씨 24.9도로 로부스타보다 1.9도, 아라비카보다 6.8도 더 높다. 스테노필라는 가뭄에도 잘 견뎌 아라비카보다 적은 강우량 조건에서도 성장할 수 있고 치명적인 커피잎녹병(CLR)에도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왕립식물원이 스테노필라를 키워 향미 테이스팅을 했는데, 샴페인을 마시는 것처럼 산미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셜티커피협회(SCA) 기준에 따른 향미 평가에서 스테노필라는 80.25점으로 ‘스페셜티 커피’ 기준인 80점을 넘겨 아라비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아라비카 가격의 절반 수준인 로부스타와 비슷한 조건에서 자랄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왕립식물원은 “스테노필라가 5~7년 안에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 진입해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커피가 될 것”이라며 “스테노필라의 재발견으로 커피의 미래가 조금 밝아졌다”고 평가했다.


인공지능으로 품종 선별

커피 생산량이 부족할 때 품질이 좋아 쓰임이 많은 커피만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기술도 요긴하다. 콜롬비아 기업인 데메트리아(Demetria)는 커피 생두가 어떤 맛과 향을 만들지 예측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생두에 근적외선을 쏘고 반사파를 분석해 어떤 유기분자가 있는지 알아내는 방식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적외선 카메라로 외계 행성의 대기 성분을 가늠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인공지능은 커피 전문가들의 테이스팅 빅테이터를 분석해 향미가 어떤 유기분자와 연관됐는지 파악했다. 인공지능은 이를 토대로 근적외선 반사 결과를 해독해 생두의 향미적 품질을 예측했다. 재배 단계부터 품질을 파악하는 것은 커피 음용 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사건이다. 가까운 미래에 소비자들은 와인을 고르듯 커피의 원산지와 품종을 보고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면적당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벌 같은 수분 매개자 곤충을 늘리는 방법도 강구되고 있다. 커피 꽃이 피었을 때 곤충이 많이 찾아와 수분이 많이 일어난다면 그만큼 열매를 많이 수확할 수 있다. 국제열대농업연구센터(CIAT)는 수분 매개 곤충을 활용해 새롭게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열대우림을 넓혀 나가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벌이 많으면 생산성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커피 열매 무게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키가 큰 엑셀사 커피나무. 사진=필자 제공
키가 큰 엑셀사 커피나무. 사진=필자 제공



커피밭서 밀려났다 돌아온
‘엑셀사’서 희망을 보다

로부스타보다 고온과 가뭄에 강한 커피가 리베리카(Liberica)와 엑셀사(Excelsa)이다. 그러나 이 두 품종은 나무가 크고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또 수확량이 많지 않아 20세기 들어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에 밀려 커피밭에서는 사라졌었다.

최근 둘 중 맛이 좋고 열매가 더 많이 달리는 엑셀사를 재배하는 곳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우간다에서는 엑셀사 커피농장이 200곳에 달하고, 로부스타를 키우던 농장이 점차 리베리카로 바뀌고 있다. 남수단에서도 소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엑셀사를 재배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엑셀사는 아라비카 열매와 크기가 비슷하며 맛이 순하면서도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페인 함량이 적은데다 쓴맛도 덜한데, 아라비카와 달리 고산지대가 아닌 저지대에서도 재배할 수 있어 스스로 엑셀사를 선택하는 재배 농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라오스에도 유럽 자본이 투입돼 3~4년 전부터 엑셀사를 집중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라오스 커피의 기원지인 볼라벤에서 45만 평 규모의 커피밭을 운영하는 한국의 CGC(Club Green Coffee)도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커피 재배에 집중하고 있다.

최한영 CGC 대표는 “미래를 위해 리베리카와 엑셀사를 확보하려는 경쟁에서 한국이 소외되지 않도록 첨단 농법을 동원해 K커피 교두보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필자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은 충북대 미생물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 영어영문과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커피인문학』 등을 저술했다.
필자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은 충북대 미생물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 영어영문과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커피인문학』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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