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우명소 시즌2

[우명소 시즌2] 추운 겨울…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전합니다

입력 2023. 12. 21   15:31
업데이트 2024. 01. 0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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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눔 행복한 가족

권희원·김성희 씨 부부
2010년부터 위탁부모 활동
육군1보병사단 권성현 대위
육군15보병사단 권서연 중사
헌혈·모발기부 등 실천하며
부모님 뒤이어 봉사 적극 참여

국방일보 인터뷰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선순환 가족’. 윗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남 권성현 대위, 아버지 권희원 씨, 막내 아들 권태호 군, 어머니 김성희 씨, 장녀 권서연 중사.
국방일보 인터뷰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선순환 가족’. 윗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남 권성현 대위, 아버지 권희원 씨, 막내 아들 권태호 군, 어머니 김성희 씨, 장녀 권서연 중사.



거리 곳곳에 울리는 구세군의 종소리는 세밑이 왔음을 알린다. 얼굴을 때리는 모진 칼바람은 나보다 힘든 이들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나눔의 절실함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주머니 속 지폐 몇 장 꺼내기도 주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 꾸준하게 다른 이를 돕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데 앞장서는 가족이 있다. 부모의 봉사를 보고 자란 군인 자녀들도 기부와 나눔에 앞장서는 ‘선순환 가족’이다. 육군1보병사단 무적칼여단 권성현 대위와 15보병사단 을지여단 권서연 중사, 이들의 부모님 권희원·김성희 씨, 막내 권태호 군이 한자리에 모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따스함의 의미를 찾아본다. 글=배지열/사진=양동욱 기자


베풀 수 있는 마음 가득한 ‘권씨 군인 남매’

1사단 무적칼여단 공보정훈과장 권성현 대위와 15사단 을지여단에서 분대장을 맡고 있는 권서연 중사 남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오빠 권 대위는 꾸준한 헌혈로 지난달 13일 50번째 헌혈을 달성하고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유공장 금장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 처음 헌혈에 동참한 권 대위는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헌혈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바늘이 찌를 때 따끔한 건 여전하고, 헌혈을 자주 하다 보니까 혈관 벽에 바늘이 닿는 느낌도 난다”며 “그러나 생사를 다투는 환자의 고통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인 만큼, 참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권성현 대위 가족이 헌혈, 모발기부, 위탁부모 활동 등으로 받은 포장증, 기부증서, 감사장과 위탁부모 교육과정 수료증.
권성현 대위 가족이 헌혈, 모발기부, 위탁부모 활동 등으로 받은 포장증, 기부증서, 감사장과 위탁부모 교육과정 수료증.



2017년 1월 입대해 같은 해 6월부터 을지여단에서 지금까지 근무 중인 권 중사는 길고 긴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모발기부에 동참했다. 지난 2020년 11월에 2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 30㎝를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어머나) 운동본부’에 전달했다. 어머니 김씨도 함께였다.

그는 주변에도 모발기부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자신도 추가로 머리카락을 길러 전달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머리카락이 길어지면 정리하기가 어려워 불편하지만, 누군가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베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여건이 되는 한 계속 기부하고 싶습니다.”

사실 권 대위와 권 중사도 여느 남매처럼 썩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에서 함께 군복을 입는 전우가 되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비록 다른 부대 소속이지만, 힘든 일은 반으로 나누고 기쁜 일은 두 배로 축하하면서 지내고 있다.

권 대위는 “예전에는 거의 연락할 일이 없었고, 심지어 같이 운동하러 가서도 남처럼 행동한 적도 있다”며 “이제는 서로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권 중사도 “힘들 때 오빠에게 연락해서 받은 조언 덕분에 고민을 해결한 적도 있다”며 “부대를 옮기면서 적응하느라 분명히 힘들 텐데 잘 해내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고 답했다.

형과 누나의 대화를 지켜보던 12살 막내 권태호 군도 군인의 꿈을 꾸고 있다. “학교에 가족이 군인인 친구들이 많은데, ‘우리 형이랑 누나도 군인’이라고 자랑해요.” 천진난만한 한마디에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권서연(오른쪽) 중사와 김성희 씨 모녀가 지난 2020년 11월 모발기부를 하기 전 머리카락을 들고 찍은 기념사진. 본인 제공
권서연(오른쪽) 중사와 김성희 씨 모녀가 지난 2020년 11월 모발기부를 하기 전 머리카락을 들고 찍은 기념사진. 본인 제공



위탁아동 돌보는 부모님…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

3남매의 대화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권희원·김성희 씨 부부는 이들에게 나눔과 봉사의 길을 몸소 보여준 존재다.

부부는 2010년부터 위탁부모로서 가정위탁활동에 동참해 왔다. 가정위탁이란 아동이 여러 사정으로 친부모의 보호를 받기 어려울 때, 아동의 안전과 건강한 성장을 위해 일정 기간 위탁 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하면서 아동의 보호와 원가정의 가족기능 회복을 돕는 아동복지 서비스다.

친남매 말고 다른 아이가 우리 집에 있다는 건, 자식 입장에서도 낯선 풍경이었다. 권 대위는 “그때 제가 중학생이었는데, 위탁아동도 돌보면서 제 진로 고민도 같이 해주셨다”며 “오히려 일찍이 육아의 어려움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았나 싶다”고 그때를 돌아봤다. 권 중사도 “서운하다기보다는 어머니가 새벽에도 일어나서 아기를 돌보시느라 힘들까 봐 걱정했다”고 떠올렸다.

자녀들의 자발적인 나눔·기부에도 분명히 가정교육의 영향이 컸을 터. 

권씨는 “‘내 생각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생각해 보라’고 항상 이야기했다”며 “그 말이 어떤 영향을 줬을지 모르겠지만, 인생을 사는 데 약간의 방향 설정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부는 자녀들이 헌혈과 모발기부에 나서겠다는 결정에도 박수를 보냈다. 김씨는 “아이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부모로서 매우 뿌듯했다”며 “내가 하는 작은 무언가가 다른 어떤 이에게는 정말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족에게 도움을 베풀고 나눔을 실천하는 원동력은 ‘행복’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각자 처한 환경 때문에 조금 더 나누거나 나누지 못할 뿐이죠. 내가 가진 걸 나눠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그 사실 덕분에 나도 행복해지는 겁니다.” 권씨의 설명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권성현 대위가 지난달 13일 헌혈유공장 금장을 받고 50번째 헌혈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권성현 대위가 지난달 13일 헌혈유공장 금장을 받고 50번째 헌혈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나눔은 멀리 있지 않아…” 주변에도 권유

가족의 공통된 바람은 더 많은 사람이 나눔과 기부가 주는 기쁨을 알았으면 한다는 것. 생전 만나본 적 없는 어떤 이의 안타까운 사연에 자기 일처럼 아파하는 게 우리나라 국민이다. 여기에 조금만 용기를 내 나눔을 실천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게 이 가족의 믿음이다.

“나눔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애정을 쏟으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제가 받는 기쁨이 큽니다. 여건이 된다면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권희원 씨)”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를 돌보는 건 사실 힘듭니다. 그래도 그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잠깐이나마 저와 있는 시간 동안 사랑을 받고 다른 좋은 가정으로 갈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김성희 씨)”

“헌혈용 바늘은 특히 더 두꺼워서 무서워하는 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바늘을 꽂을 때 ‘1초의 찡그림’만 넘기면 분명히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생각으로 한 번만 용기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권 대위)”

“저도 소액이지만 매달 사회복지단체에 기부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여러분도 나눌 수 있습니다. 기부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당신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권 중사)”

이렇듯 이 가족의 머릿속에는 나눔과 기부가 가득하다. 10년 넘게 아이들을 돌본 부모님과 헌혈·기부로 뜻을 잇는 군인 자녀, 심지어 초등학생 막내마저도 말이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막내 권군이 “나도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싶어요”라고 말하자, 다른 가족들이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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