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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멈춘 ‘크리스마스의 기적’ 하지만 고요한 밤은 너무 짧았다

입력 2023. 12. 20   16:19
업데이트 2023. 12. 2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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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2005) / 감독: 크리스티앙 카리옹 / 출연: 다이앤 크루거, 벤노 퓨어만, 기욤 카네

1차 대전 격전지 이프르 전선
후방서 파티 즐기는 최고 명령권자
참호 속엔 총구 겨눈 병사들만이…

1914년 12월 24일,
전쟁터에 캐럴 울려 퍼지자
잠시의 평화 누리는 군인들
전쟁 한복판에도 사랑은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을 뿐이다. 노래는 나지막이 울리더니 죽음처럼 고요한 플랑드르 풍경 속을 떠돌다 사라졌다. 그러나 노래는 곧 파도처럼 전장 곳곳으로 퍼져 나가 어둡고 긴 전선의 모든 참호에 길게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중, 미하엘 유르크스 지음, 예지 펴냄)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스틸컷.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스틸컷.


1차 대전의 기적 ‘크리스마스 정전’ 

저 높은 하늘에서는 신의 영광, 땅에서는 인간의 평화. 그러나 ‘그분’이 지상에 부재함이 확실했던 1914년 12월 24일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 이프르 전선. 독일군과 영국군·프랑스군 병사들은 크리스마스에 신의 축복을 기다리기보다는 주저하면서도 서로를 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평화’는 전쟁 역사상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1차 대전 당시 전선에서의 전투 중지는 그 자체로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숨을 돌리기 위한 짧은 휴식은 언제나 있었다. 부상자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아 몇 시간 동안 비명을 지를 때는 자발적으로 휴전을 약속하는 것이 묵인됐다. 병사들이 볼일을 보러 갈 때도 공격하지 않았다. 바지를 벗은 상태에서 죽이는 것은 인간 존엄을 해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겨우 30~100m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던 진지전에는 나름대로 법칙이 있었고 실제로 친밀성이 존재했다.

이처럼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일종의 합의들이 지켜질 수 있었던 이유는 사령부에 있는 최고위 사령관들보다는 반대편의 비슷한 계급의 병사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사령관들이 국가사회를 지배하는 특정계급에 속해 있었다면 이곳의 병사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또 다른 특정계급에 속해 있었다.

무엇보다 낙엽이 지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던 희망은 사라졌다. 모두 시체에 질렸고, 죽음에 지쳤다. 전쟁에 회의했던 병사들은 부모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마음속 깊은 절망을 토로했다. 이 편지의 다수는 플랑드르 야전 박물관과 뮌헨의 전쟁문서고, 런던의 대영제국 전쟁박물관에 보존돼 끔찍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우리가 이 편지들을 지금 볼 수 있는 까닭은 편지의 주인공들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뒤 1916년 크리스마스. 이프르 전선의 킹스 리버풀 제5연대 맞은편에서 한 독일군 병사가 흉벽 위에 올라가 영국군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기원하고 ‘무인지대’ 중간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영국군 지휘관 고든 소령은 이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두 명의 저격병에게 독일군을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명령에 따랐다.


참혹했던 1914년 이프르 전선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el/Merry Christmas)’의 배경은 1차 대전 당시 ‘크리스마스 정전’이 일어난 이프르 전투. ‘크리스마스 정전’은 1914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부전선 여러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비공식적 정전을 말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대치 중인 병사들이 참호에 웅크리고 있다. 막상 전선엔 전쟁을 결정한 최고 명령권자는 없다. 그들은 후방 저택에서 칠면조 구이에 샴페인을 즐기고 있다. 참혹한 참호 속에는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병사들만이 총구를 겨누며 방아쇠를 당기고 수류탄을 던질 뿐이다.

예수님이 탄생한 성탄 전야. 잠시 총성은 그쳤지만, 병사들의 마음은 착잡하고 스산하다. 그때 독일군 진영에서 오페라 스타 출신 장교 니콜라스(벤노 퓨어만)가 때마침 자신을 찾아 전쟁터까지 온 연인 안나(다이앤 크루거)와 함께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국군 백파이프 연주자가 독일군의 찬양에 맞춰 반주하기 시작한다. 양 진영은 ‘크리스마스 기적’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선다.

그렇게 한두 명씩 참호를 나와 본국에서 보내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즐기고,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을 찍으면서 작은 평화는 시작된다. 공터에선 영국과 독일 군인들이 축구 경기까지 벌인다. 점수는 독일이 3대2로 앞섰지만, 마지막 득점은 오프사이드였다고 한다.

휴전은 사령부에 알려지고, 각 진영의 장교들은 추궁당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칠면조를 먹으면서 독일인을 죽이자고 외쳐대는 사람들보다 독일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져요.” “당신이 그걸 믿지 못하는 건, 저와 같은 전쟁을 겪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전쟁에 휘말린 인간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하지만 기적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끝났다.



잘 먹어야 잘 싸운다 ‘전투식량의 진화’
미군, 1·2차 대전 겪으며 발전…인스턴트 커피·초콜릿 등장

용감한 병사도 굶주리면 전쟁에서 싸울 수 없는 법. 장병이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간편하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분도 충분한 간편식이 필요하다. 전투식량이 만들어진 이유다.

1차 대전은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양상의 전쟁으로, 전투식량 또한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화포의 발달은 취사 마차의 전선 투입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1차 대전은 근대적 전투식량 개발의 출발점이 되었다.

처음에 내놓은 전투식량은 형편없었다. 비슷한 음식만 섭취하다 보니 영양 불균형이 발생해 병사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참호전은 불을 피우기가 어려웠고, 맛없는 통조림에 질린 병사들이 전투식량을 기피, 건강이 악화되는 일이 허다했다. 이에 따라 전투식량은 영양분을 높이고 입맛을 돋우는 기호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당시 미 육군은 집단 배식용인 트렌치, 개인용인 리저브 레이션, 비상용인 이머전시 레이션이라는 세 종류의 전투식량을 개발했다. 이는 미군 최초의 근대적 전투식량으로 이후 개발되는 다른 나라 전투식량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리저브 레이션은 딱딱한 빵, 콘비프, 포크 앤 빈스, 커피, 베이컨 등으로 구성됐다. 당시 보급된 인스턴트커피는 참호에서 간편하게 마실 수 있어 전쟁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전투력을 높이는 활력소였다. 달콤함과 각성효과를 동시에 주었던 인스턴트커피는 1차 대전을 계기로 각지로 전파되며 인기를 얻었다.

리저브 레이션은 이후 지속적인 개량이 이뤄졌으며, 2차 대전 중에 사용되었던 C-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커피 외에도 전투식량에는 단골 아이템이 등장한다. 19세기부터 음료에서 식품으로 모습을 바꾼 초콜릿이 그것이다. 고열량 영양식품은 전장에서 이상적인 영양 보급 수단으로 널리 자리 잡았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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