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커피사
커피와 명언명구 - 한국편
커피가 한반도 들어온 지 160년
19세기 콜레라 유행 땐 약으로
개화기 소설에선 ‘유혹’으로 비유
지식인·예술가 커피로 울분 달래
최근에는 대중가요 단골 소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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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새겨진 명언과 명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한국과 관련한 것은 그다지 풍성하지 않다. 커피가 우리 땅에 들어온 지 이제 160년이고, 대중문화로 꽃을 피운 지는 해방공간부터 헤아려 78년이다. ‘커피’가 처음 기록된 조선 헌종 때의 『벽위신편』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Coffee’에 이르기까지 커피에 관한 말과 글에는 시대정신이 배어난다. ‘언어는 정신의 얼굴’이라는 세네카의 말처럼, 커피에 마음이 일어 흘러나온 표현은 곧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인 까닭이다.
커피 관련 최초 기록물 『벽위신편』
국내 기록물 가운데 최초로 커피를 적은 『벽위신편』은 스페인이 필리핀을 침략해 커피나무를 심은 사실을 소개하면서 “가비(加非)는 넓적한 청흑색 콩으로서 볶고 삶아 먹는다. 맛은 쓰고 향은 차와 유사하여 서양인이 차 대용으로 마신다”고 적었다. 당시 서부도사직을 맡은 윤종의가 헌종의 지시를 받아 서양 세력의 움직임을 추적해 1848년 『벽위신편』을 펴냈다. 이 책은 시간이 흐르면서 7권 5책으로 증보됐는데, 커피가 기록되는 시점은 1852년 철종 4년 때이다. 청나라의 『해국도지』에 적힌 커피의 표기를 옮긴 것으로, 직접 커피를 보지는 못하고 전해 들어 소개한 것이다.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커피는 1861년(철종 12년) 3월 랑드르, 조안노, 리델, 칼레 등 프랑스 신부 4명이 백령도 북방에 있는 월내도를 거쳐 입국할 때 홍콩에서 들고 온 것이다. 조선에 이미 들어와 있던 베르뇌 주교가 편지로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커피의 분량은 40리브르(약 18.14㎏)였고, 이후 3차례 더 요청해 국내로 들어온 커피의 총량이 130㎏에 달했다. 당시 한약재를 달이는 것처럼 달임법으로 커피를 추출했기 때문에 한 잔을 만드는 데 5g 정도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베르뇌 주교에게 전달된 커피는 2만6000잔을 만들 수 있는 적지 않은 양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커피가 이토록 필요했을까?
1859년 9월 말 콜레라가 서울에서 유행했다. 전염병은 전국으로 번져 희생자가 40만 명에 달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병으로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천주교 기록에 따르면 베르뇌 주교가 몇 주일 만에 서울에서만 1500여 명에게 고해성사를 줄 정도였다. 커피가 단지 프랑스 성직자의 기호품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밤길을 쫓겨가며 선교하면서 환자까지도 돌봐야 했던 선교사와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커피를 마시면 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고, 환자의 회복에도 좋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커피를 더욱 간절하게 찾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교사의 손을 통해 한국 땅을 밟은 커피는 백성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소중한 약이었다.
궁중서 민가로 퍼진 커피 문화
베르뇌 주교 이후 커피가 흔적을 남긴 곳은 제물포항이다. 1883년 8월 수입한 외국산 물품 품목에 커피가 적혀 있다. 1884년 1월 조선을 방문한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한강변에 있는 ‘담담정(The house of sleeping waves)’에서 커피를 마신 사연을 소개한 대목에서 “조선에서 유행하던 커피를 식후에 마셨다”고 적었다. 조선 말기에 이미 항간에 커피가 퍼졌으며, 특히 식후에 마시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즈음 경복궁도 커피를 소중하게 여겼다.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서 고종의 어의를 지낸 호러스 앨런은 저서 『한국의 풍물(Things Korean)』에 1884년 경복궁에서 겪은 일을 적으면서 “궁중에서 대기하는 동안 시중들은 사양하는데도 불구하고 잎담배와 샴페인, 사탕, 과자를 끝까지 후하게 권했다. 그들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그 품목에 홍차와 커피를 추가했다”고 회고했다. 커피 대접이 손님뿐 아니라 커피를 내주는 측의 품격을 올리는 문화적 행위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커피문화가 궁중에서 시작돼 민가에 퍼진 사연 덕분에 커피를 나누는 것이 격조 있는 행동인 것으로 일상에 뿌리를 내렸다.
식민지 지식인에게 커피란?
커피가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 등장하는 것은 유학파가 귀국해 커피를 일상의 음료로 즐기기 시작해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라는 특수계층을 형성하던 1910년대이다. 이해조가 1910년 3월부터 대한민보에 연재한 신소설 『박정화(薄情花)』에서 커피는 여인을 유혹하는 ‘작업 도구’로 쓰인다. 양반댁 자제이자 장안의 난봉꾼인 이시종이 창극장에서 박참령의 첩실인 ‘강릉집’을 꾀기 위해 사환을 통해 가비차를 보내고 “일기가 추운데 한 곡보씩 마십사 여쭈라고 하셔요”라는 말을 전한다. 마침내 커피가 소설 속에서 ‘한 잔의 유혹’으로 비유된다. 당시 독자들은 소설에서 묘사된 ‘가비차’를 ‘마시면 안 되는 독’으로 여겼을 것 같다. 이해조는 커피의 쓴맛과 중독성을 멋지게 소설에 녹여냈다.
카페가 사유와 고독의 공간이라는 의미심장한 면모를 포착한 인물은 시인 정지용이다. 1926년 발표한 ‘카페 프란스’에서 특히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자”는 대목은 절규와 같다. 식민지 시대에 우울함에 젖어 있는 지식인에게 정신을 또렷하게 만드는 커피는 차라리 고통이었다.
커피 자체를 노래한 시는 1933년 김기림이 잡지 『신여성』에 발표한 ‘커피 잔을 들고’이다. ‘당대의 신사’로 불릴 정도로 취향이 고급스러웠던 그는 시인으로서는 한국 최초의 커피 마니아였던 것 같다. “오, 나의 연인이여/ 너는 한 개의 슈크림이다./ 너는 한잔의 커피다”라는 시구에서, 그가 과자나 설탕을 곁들이지 않고 커피의 쓴맛 자체를 정서적으로 달콤하게 즐겼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커피가 와인보다 달콤하고 키스보다 황홀하다고 읊은 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가산 이효석은 1938년 발표한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낙엽 타는 냄새에서 헤이즐넛 향이 그윽한 한잔의 커피를 느끼고, 따라서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그의 제자 김현승은 커피를 몹시 즐긴 이유로 다형(茶兄)이라는 호를 받았는데, “나의 시는 커피 감정(鑑定)만큼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가곡 ‘보리밭’에서 커피향이 나는 이유
커피를 소재로 삼은 최초의 대중가요는 1939년 이난영이 부른 ‘다방의 푸른 꿈’이다. “내뿜는 담배 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이라는 노랫말에는 일제강점기를 겪는 지루한 삶의 고뇌가 담겨 있다. 이 시기 태평양 전쟁에 혈안이 된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했다. 그 폭정 속에서 꽃다운 청춘들의 투신자살이 이어졌고, 항일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의 소식이 이어졌다. 마음이 무거운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다방 한구석에서 커피를 마시며 울분을 달래야 했다. 같은 해 김장미가 발표한 ‘엉터리 대학생’은 연애를 하느라 십 년이 넘도록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수업을 땡땡이친 채 다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학생을 조롱하고 풍자했다. 언뜻 코믹한 노래로 들리지만, 마지막 소절에 “아서라 이 사람아 정신 좀 차려라”라는 따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패배주의에 빠져 다방을 전전하는 젊은이, 특히 지식인들에게 행동변화를 촉구한 일갈이겠다.
커피 애호가들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라는 가사로 끝나는 가곡 ‘보리밭’을 들을 때 커피의 정취를 느낀다. 1952년 6·25전쟁 통에 다방에서 쓰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절박한 부산 피란지에서 문학인과 예술인들이 위로의 공간으로 삼았던 다방 ‘밀다원’에서 당시 종군기자였던 시인 박화목과 해군악대 소속 군인이었던 윤용하가 만나 빚어낸 곡이다. 서정적인 가사와 가슴을 파고드는 선율이 마치 한잔의 커피가 관능에 스며드는 것 같다.
1960년대 신중현이 작곡하고 펄시스터즈가 노래한 ‘커피 한 잔’, 70년대 나훈아가 부른 ‘찻집의 고독’과 노고지리의 ‘찻잔’, 80년대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90년대 김성호의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등 커피와 카페가 준 영감은 대중가요로 꽃을 피웠다. 2000년대 이후 대중가요에서 커피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방탄소년단의 ‘Coffee’ 등이 그렇다. 커피가 특별히 새로울 것 없이 공기처럼 숨 쉬는 일상이 됐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는 이렇게 차라리 평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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