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가격전략
물가상승에 실질소득 감소 영향
유통채널별 시장 대응 전략 부심
시간·채널·옵션·고객별 차별화 나서
수요 몰리는 시간 나눠 가격 조정
‘반품 용이’ 심리적 비용 추가하기도
최적 마진으로 소비자 선택권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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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한 캔을 구매한다고 생각해 보자. 355mL 한 캔의 가격은 얼마일까? 대형마트에서 살지, 편의점에서 구매할지, 온라인이라면 어떤 판매처에서 살지, 할인행사가 진행 중인지, 몇 개입 묶음으로 구입할 것인지 등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면 가격이 족히 100가지를 넘는다. ‘정가’ ‘소비자 희망가격’ 같은 단어는 점차 사라지고 소비자들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온라인에서 검색해 본 뒤 구입하게 됐다. 요즘 소비자들은 하나의 상품에도 여러 가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최근엔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든 만큼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급·판매자는 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느냐는 소비자에게도 사업자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됐다. 이러한 시장환경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하나의 상품에도 수요 요인에 따라 가격을 유동적으로 책정하는 ‘버라이어티 가격전략’이 필요하다.
가격을 다양화하는 축은 여러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시간’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 수요가 집중되는 시간에 더 높은 가격을, 수요가 적을 때는 더 낮은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뷔페에서 식사하는 가격은 주중과 주말이 다르고, 점심(런치)과 저녁(디너)이 다르다. 혹은 기본가격이 있고 수요가 적은 시간에 할인을 적용하는 ‘조조 할인’이나 ‘해피아워’ 같은 가격정책도 있다.
시간에 따라 다른 가격체계에는 ‘스키밍(skimming)’이란 전략도 있다. ‘skim’은 ‘(기름기 등을) 걷어 내다’는 뜻이다. 출시시점엔 가격을 높게 설정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을 점차 떨어트리는 방식이다. 흔히 고가의 전자제품을 구매할 때 ‘신제품을 사지 말고 기다렸다가 가격이 떨어지면 구입하라’고 하는 것은 스키밍 때문이다. 신제품에 지불용의가 있는, 일명 ‘얼리어답터’ 고객층은 높은 가격에 구매하고 이후 지불용의 수준이 낮은 고객층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두 번째 가격 버라이어티의 축은 ‘채널’이다. 온라인 유통채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 소비자들은 단순히 최저가만을 찾지 않는다. 한 소비자가 쇼핑에 관한 인터뷰에서 “무조건 최저가로 사는 것보다 1000원을 더 주더라도 차라리 반품이 잘되는 게 편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옷이나 신발처럼 실물을 보는 게 중요한 물건의 경우 온라인 구매 시 교환·반품에 소요되는 시간적·심리적 비용까지 고려한 ‘최적가’를 찾는다는 것이다.
최근 중요해지는 채널로는 일명 ‘자사몰’이 있다. 과거에는 제조와 유통이 완전히 분리돼 있었다면 온라인 채널이 활성화되면서 제조사들이 직접 쇼핑몰을 열고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D2C(Direct to Consumer)’ 형태가 각광받고 있다. ‘나이키’는 D2C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브랜드다. 소비자들이 직접 공식 홈페이지에 찾아와 구매함으로써 유통업체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아끼고 가격도 통제할 수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안심하고 정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이 다양화되는 세 번째 축은 ‘옵션’이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 주면서 기능이나 가치 면에서 더 좋은 옵션을 원할 경우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대표적인 게 항공권 구매다. 동일한 항공편을 이용하더라도 소비자는 더 넓은 좌석을 선택할지, 수화물을 얼마나 많이 가져갈지, 기내 서비스를 얼마나 누릴지에 따라 각기 다른 가격의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기존의 상품을 쪼개 옵션을 세분화한 상품도 등장했다. 원래 호텔을 이용하는 가격에는 하나의 객실을 오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이용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숙박, 부대시설 이용권한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런데 최근엔 4시간, 8시간, 12시간 등 이용시간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이 출시됐다. 특히 숙박을 포함한 가격이 부담스러운 특급호텔의 경우 숙박 없이 부대시설만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해 소비자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마지막 가격 다양화 전략은 ‘고객 버라이어티’다. 어린이·청소년·성인 요금을 나누는 것, 지역주민 할인, 신규 고객 할인, 흔히 ‘얼리버드’로 부르는 조기예약(구매) 할인 등 고객 특성에 따라 가격 조정이 이뤄진다. 최근엔 멤버십이나 제휴 할인, 쿠폰 할인 등 소비자들이 활용 가능한 할인제도가 개개인마다 달라지면서 가격체계가 무척 복잡해졌다. 이에 따라 한 오픈마켓에선 개별 소비자에 맞게 실질적인 최저가 상품을 먼저 보여 주는 ‘초개인화 가격비교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최근 기업들은 앞서 설명한 4가지 축을 결합해 가격 유동성을 높인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을 활용한다. 아마존이라는 미국의 온라인몰은 하루에도 250만 번 가격이 변한다고들 말한다. 심지어 오프라인 가격도 실시간 상황을 반영한다. 인공지능(AI) 기반 무인편의점 ‘프라이스랩’은 한 시간에 한 번씩 하루에 총 24번 가격이 바뀐다. 시간대별 유동인구나 날씨 같은 수요 변동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 상품의 유통기한이나 신선도에 따라 가격을 낮추기도 한다. 이를 통해 판매자는 최적의 마진을 취하고 소비자는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사실 가격은 예전부터 마케팅 전략을 구성하는 4P(Price, Product, Promotion, Place)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다만 이제까지 가격을 상당 부분 관습이나 감에 의존해 책정했다면 앞으로는 ‘버라이어티 가격전략’을 취함으로써 변동성이 크고 경쟁이 치열한 시장환경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버라이어티 가격전략을 단순히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상품의 가격을 낮춰 많은 소비자가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 정상적인 소비가 어렵다거나 제품 용량을 줄여 단위당 가격으로 보면 전혀 가격이 저렴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는 더 이상 그 제품과 브랜드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소비자가 지각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가격을 제안하는 것, 그것이 최적의 가격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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