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9·19 군사합의 파기, EU 통합사례서 교훈 얻어야

입력 2023. 12. 08   15:46
업데이트 2023. 12. 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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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서 유럽연합(EU)정책연구소 원장 한국유럽학회 부회장
이종서 유럽연합(EU)정책연구소 원장 한국유럽학회 부회장

 


북한의 일방적인 9·19 군사합의 파기와 지속적인 도발로 남북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의 통합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EU는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시작으로 경제적 통합을 이뤘지만, 70여 년의 세월 동안 외교안보정책을 회원국의 배타적 권한으로 뒀다. 최근 들어서야 국가와 집행위원회가 공유권한을 갖게 됐다. 이는 통합을 위한 마지막 단계로의 진전을 의미한다.

반면 우리 정부는 남북 간 기능적 통합을 생략한 채 9·19 군사합의로 남북관계의 평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합의사항을 검증할 기구가 없었다는 점에서 9·19 합의는 파기를 잉태하고 있었다는 비판이 있다. 지금의 EU를 있게 한 유럽 경제재건계획인 마셜플랜(Marshall Plan)은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총 200억 달러로 알려진 경제원조를 유럽에 제공했는데,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이는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원조를 철두철미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EU의 통합사례가 반드시 우리의 사례와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용한 면이 상당하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벨라 발라사는 통합을 5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는 자유무역지대, 2단계는 관세동맹, 3단계는 공동시장, 4단계는 경제동맹, 5단계는 완전경제통합 또는 정치적 통합 단계로 회원국 간의 정치적 통합이 이뤄지는 경제통합이다.

이처럼 EU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기능적 통합부터 시작해 긴긴 세월 동안 서서히 지금의 외교안보정책 통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관계의 평화가 항상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여기에 편승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9·19 합의를 끌어냈고, 결국 파기선언으로 남북 간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EU는 상호인증과 보충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통합을 이뤄 왔다. 상호인증은 회원국이 자국의 규정과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다른 회원국에서도 동일하게 인정한다는 원칙이다. 보충성은 EU 회원국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고, 회원국이 수행할 수 없는 분야에만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두 원칙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상호인증은 보충성을 구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EU는 회원국이 자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에 대해 상호인증을 함으로써 EU가 직접 제품 안전 규제를 하지 않고도 회원국 간 자유로운 상품의 이동을 보장할 수 있다.

아직도 EU의 공동 외교안보정책 중 군용물자 품목의 수출 통제와 관련한 사항은 회원국에 권한이 있다. 반면 이중용도 품목은 공동 통상정책의 범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EU의 배타적 권한하에 있다. 그럼에도 통제규칙을 어겼을 경우 이에 따른 EU 공통의 처벌규정은 없고 회원국 자율에 맡겨 놓는다. 이처럼 완벽한 배타적 권한이라고 하는 공동 통상정책조차 보충성의 원칙이 적용되는 등 아직 EU의 공동 정책도 고유 권한, 공유된 권한 등으로 나눠진다. 남북관계가 항상 긴장상태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해빙무드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군사 및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합의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섣부른 합의는 오히려 갈등을 재발할 수 있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합의는 통합을 위한 마지막 합의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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