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여행 후 피로 푸는 방법 알아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카펫 위에서 발가락을 주먹처럼 오므려봐요.” 첫 장면에 이 대사가 나오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이 대화 때문에 주인공이 신발을 벗었다가 영화 내내 맨발로 고생하게 되는 영화 ‘다이하드’가 올해 개봉 35주년이 됐다. 그리고 35년째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논쟁이 있는데 바로 ‘다이하드 크리스마스 영화’ 논란이다.
‘다이하드’가 크리스마스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이하드’는 어쩌다가 크리스마스이브가 시간적 배경이 됐을 뿐인 액션 영화라고 말한다. 주요 줄거리가 크리스마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뉴욕 빌딩을 장악한 테러리스트들과 이들을 상대하게 된 존 맥클레인 형사의 대치이기에 배경이 여름이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또한 개봉 시기가 12월도 아닌 7월이었다. (우리나라에는 9월에 개봉했다.) 살인, 테러, 총격전 등 잔인한 장면도 많으며 크리스마스 정신인 가족 간의 사랑이라든가 자선, 탄생, 구원 등의 테마를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한 투표에서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아니라는 쪽이 근소한 차이로 우세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에게도 질문이 갔는데 그는 강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 다이하드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아닙니다. 브루스 윌리스 영화입니다.” 브루스 윌리스다운 능청스러운 대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각본가인 스티븐 E. 수자는 단박에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주장하는 쪽의 의견을 들어보자. 먼저 12월 24일 밤부터 25일 새벽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존 맥클레인 형사가 애초에 LA에 온 이유도 크리스마스에 헤어져 있던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건이 호텔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고 있고 연휴라 경찰 경비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총 21번 등장하며 산타 모자가 나오고 산타의 “호호호”도 있다. 존의 아내 이름은 ‘홀리’ 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악의 힘에 맞서서 뉴욕시를 구원하려는 존 맥클레인 형사는 예수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는데 맨발에, 손과 발이 피로 젖어 있기 때문이란다. ‘34번가의 기적’도 여름에 개봉했는데 여름에 개봉한 것이 문제가 되는가.
왜 많은 이들이 몇십 년째 이 주제로 옥신각신하는 걸까? 사실은 우리 모두가 1988년에 나온 ‘다이하드’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기의 논리를 내세우는 척하며 이 영화와 영화를 보던 날을 추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몇 살에 누구와 어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는지 기억하고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독보적이었는지 말하고 싶다. 근육질의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이 나왔던 80년대 주류 액션 영화와는 달리 평범한 주인공의 외로운 싸움과 느슨한 유머에 대해 꺼내며 그때 그 시절의 우리까지 소환하고 싶다.
영화의 감독 존 맥티어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영화를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joy) 때문에 크리스마스 영화가 된 것이 아닐까요?”
올해 성탄절에 또다시 ‘나홀로 집에’와 ‘러브 액추얼리’를 볼 수도 있고 ‘다이하드’를 보며 크리스마스 영화 논쟁을 해도 좋겠다. 어쨌든 기쁨과 재미와 웃음만 보장된다면 그것으로 크리스마스 정신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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