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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선수범

입력 2023. 12. 05   15:10
업데이트 2023. 12. 0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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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강 육군5군단 군종실 신부·대위
김문강 육군5군단 군종실 신부·대위


솔선수범(率先垂範)이라는 고사성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나,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것은 다름 아닌 두 번째 군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육군학생군사학교에 입교했을 때부터였습니다.

기초군사훈련을 온종일 받던 사관후보생 시절, 저녁 개인정비 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리고 점호 시간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점호 때마다 육군 복무신조와 더불어 장교와 관련된 훈을 낭독해줬습니다. 그 내용이 온전히 생각나지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장교는 부대의 기간(基幹)이다. 장교는 솔선수범해야 하며, 공명정대(公明正大)해야 한다”였습니다.

비단 장교뿐 아니라 군에 몸담은 이들이 기억해두면 좋을 고사성어가 솔선수범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말을 명사로써 ‘보다 앞장서서 행동해 몸소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솔선(率先)은 ‘지킬 솔’ 자에 ‘앞 선’ 자를 사용해 먼저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범(垂範)의 수는 ‘드리울 수’ ‘법 범’자를 사용하는데, 드리운다는 것은 끈이나 천 따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무엇인가 수직으로 드리우기 위해서는 지지할 바닥이 단단하고 내린 것이 올곧게 서야만 가능합니다. 즉, 수범은 법을 올바르게 세운다는 뜻인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솔선수범’이란 규정이나 법규를 먼저 모범이 돼 올바르게 지키는 모습이나 행위를 뜻하겠습니다.

천주교 성경 중 마태오 복음 22장 34절 이하의 말씀에 예수님의 가르침이 등장합니다. 가장 큰 계명(규율)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첫째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응답하십니다. 같은 마태오 복음 23장 11절 이하의 말씀을 살펴보면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돼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위 구절 내용의 맥락을 함께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바를 남에게 해주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심과 더불어 남의 어깨에 무겁고 힘겨운 짐을 올려놓기보다 자신이 먼저 타인을 섬길 수 있는 이들이 돼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누군가를 돕고, 그가 원하는 바를 잘 살피어 이루어주고, 타인에게 짐을 지우고 일을 떠넘기기보다 오히려 먼저 앞장서서 그 과업들을 행하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먼저 모범을 보이는 솔선수범한 인물의 양태이기도 합니다.

간부, 군무원, 그리고 의무복무 중인 용사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솔선수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은 모두가 협심하고 합심해 한마음으로 국가를 지키고 안보를 공고히 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격언과 교훈적인 의미뿐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과 타인이 바라는 바를 위해 먼저 행동하고 희생할 수 있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솔선수범의 자세를 견지해 모두가 서로에게 먼저 모범을 보이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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