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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밑의 적’ 전쟁 끝나도 지뢰는 남는다

입력 2023. 11. 29   16:17
업데이트 2023. 11. 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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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 
킬로 투 브라보(원제-Kajaki: The True Story, 2016)
감독: 폴 케이티스 / 출연진: 데이비드 엘리엇, 마크 스탠리, 말라치 커비, 스콧 카일

1979년 12월 아프간 침공한 소련, 협정 어기고 무작위 매설
10년간의 전쟁, 부상자 중 지뢰 피해 전체 3분의 1에 달해
2006년 배경 영화, 전술·영웅담 아닌 지뢰와의 분투 초점
죽는 자 관점서 본 전쟁이란 무엇일까…

영화 ‘킬로 투 브라보’포스터. 사진=코리아스크린 제공
영화 ‘킬로 투 브라보’포스터. 사진=코리아스크린 제공



“지뢰는 제작비가 적게 드는 데다 단독으로 제 역할을 한다는 이점이 추가됐다. 지뢰는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아 희생자가 처형 집행자를 찾아올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인내심으로 조용히 기다렸다. 지뢰는 지극히 경제적인 무기다. 그래서 그렇게 역겨울 정도로 많이 사용됐다.” (『전쟁의 재발견』 중, 마이클 스티븐슨 지음, 교양인 펴냄)


세계 최대의 지뢰밭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이 ‘형벌의 땅’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지뢰 때문이다. 지뢰는 아프간 전역에 깔려 있다. 아프간은 전 세계에서 지뢰 매설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무려 1000만 발 이상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칸다하르와 북서쪽 헤라트의 지뢰 매설 밀도는 ㎢당 50발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매설 장소를 추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제네바협정은 지뢰를 매설할 때 일정한 패턴을 따르거나 지뢰 위치를 기록해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은 이 협정을 따르지 않았다.

1979년 12월, 소련은 당시 친소련파 정권에 저항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 무자헤딘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했다. 아프간 지뢰는 대부분 이때 소련이 매설한 것이다. 과거 소련군은 항공기에서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대인지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탄생한 지뢰가 바로 양쪽에 날개를 달아 만든 PFM-1, 일명 ‘나비지뢰’다.

당시 소련은 이 지뢰를 헬리콥터에서 무작위로 뿌려댔다. 살포할 때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고 빙글빙글 돌면서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비가 내려오는 것처럼 보여 이런 별명이 붙었다.

나비지뢰는 플라스틱 외피로 둘러싸여 탐지가 어렵다. 길이 12㎝, 높이 6㎝, 무게는 74g밖에 나가지 않는 아주 작은 지뢰다. 안에는 37g의 폭발물이 장착돼 있는데, 이는 성인의 발목을 날릴 수 있는 양이다.

더 지독한 것은 당시 아이들이 이 지뢰를 장난감으로 착각해 갖고 놀거나 집에 들고 가기도 했는데, 이때 뇌관을 건드리는 경우가 허다해 ‘죽음의 장난감’으로 불렸다. 가벼워 폭우나 바람에 의해 강과 저수지로 옮겨지기 쉬웠고, 이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컸다.

소련은 결국 10년간 아프간 전쟁 비용으로 840억 달러(약 97조 원)를 쏟아붓고, 병력 5만 명을 잃은 채 1989년 철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군 부상자 6만8000여 명 가운데 3분의 1이 지뢰 탓이었다.


영화 ‘킬로 투 브라보’. 사진=코리아스크린 제공
영화 ‘킬로 투 브라보’. 사진=코리아스크린 제공

 

 

병사들의 눈높이서 본 전쟁의 민낯

2006년 9월 아프간을 배경으로 만든 ‘킬로 투 브라보’는 특이한 전쟁영화다. 전쟁의 원인과 결과, 전쟁의 승패를 가른 전략과 전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영웅담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영화는 관점의 전복을 시도한다. 죽이는 자가 아닌 죽는 자의 관점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테러조직 탈레반은 온데간데없다. 끝까지 이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영국군이 싸우는 대상은 지뢰다.

아프간의 젖줄 헬만드강에 위치한 카자키댐. 이곳엔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탈레반을 감시하던 이들은 적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순찰에 나선다. 작전에 들어간 군인들이 와디(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에 들어선 순간 소련군이 설치해 둔 지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해 다른 군인들이 출동하지만, 잇따라 폭발이 일어나며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이곳은 사방이 지뢰밭이었던 것. 구조 헬기가 착륙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지뢰를 밟은 영국군은 하나둘씩 발목이 절단되고 몸이 부서지면서 죽어 간다. 구급약품도 떨어지고 무전도 되지 않는 와디에 고립된 18명의 군인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적군의 공격 위험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하는데….

“(전쟁은) 기관총의 총탄이 사춘기 청년의 이마에 박히는 것을 그리는 것이요, 이름 없는 갈리아인의 복부를 갈라 동맥과 장기를 도려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투를 완곡어법으로 설명하거나 살인의 생생한 묘사를 빠뜨리는 것은 범죄와도 같다.” 영화 ‘킬로 투 브라보’는 전쟁사학자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이 말에 충실하다.



발소리에 터진다? 진화하는 ‘죽음의 덫’

러시아, 우크라 전쟁서 신종 대인지뢰 사용설

전후 불발탄 제거 우려

전쟁은 끝나도 지뢰는 남는다. 지뢰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또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대인지뢰가 지구상에서 가장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무기인 이유다.

게다가 대인지뢰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장애인으로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비열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부상으로 팔과 다리가 잘린 병사는 전사한 병사보다 더 사기를 떨어뜨리고 의료와 병참 보급에도 부담을 준다는 논리였다.

지뢰의 원조는 로마군이 기원전 52년께 사용한 ‘릴리아’와 ‘스티물리’. 릴리아는 깔때기 모양의 함정을 파고 그 안에 끝을 뾰족하게 깎은 통나무를 설치한 것이다. 지금의 대전차지뢰쯤 된다. 스티물리는 S자형 바늘을 통나무에 박아 놓은 뒤 바늘을 건드리면 지면 위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었다. 대인지뢰라 할 수 있겠다.

현대식 지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개발됐다. 땅에 매설된 폭약을 영국군이 건드려 희생자가 많이 나온 데서 착안했다. 독일이 1917년 처음 만든 지뢰는 방어용 대전차지뢰. 이후 대인지뢰가 개발되면서 점차 지뢰는 공격용 무기로 변모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신종 대인지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대인지뢰는 고성능 진동 감지센서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인식해 동물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 센서가 인기척을 감지하면 공중으로 소형 폭탄을 발사하는 방식이다. 최대 반경 1.5m 내 대인 살상력을 높였다. 전문가들은 이 지뢰가 전후 불발탄 제거작업을 훨씬 위험하고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처럼 지뢰는 죽음의 덫이다. 땅 밑에 숨은 살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고민하던 여러 국가의 노력이 1997년 오타와협약이라는 결실을 봤다. 이른바 ‘대인지뢰 사용, 생산, 비축, 이전 금지와 폐기’를 규정한 협약이다. 160여 개국이 가입했지만 미국은 한반도의 예외적 상황을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과 북한, 러시아, 중국도 마찬가지다. 포성은 70년 전에 멎었지만 분단국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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