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에서 전쟁사를 가르치다 보면 가끔 당황스러운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전쟁사에 관심이 많다며 다가와 함정의 크기나 함포 구경과 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져올 때가 그렇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런 밀리터리 마니아들을 만나면 ‘내가 혹시나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할까’ 걱정할 때가 많다. 다행히 내가 아는 질문을 해줬을 때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그런데 위의 경우보다 더욱 당혹스러운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쟁사 교육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다. 전쟁사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인공지능과 무인체계 시대에 꼭 노선(櫓船)이나 범선(帆船)시대까지 공부를 해야 해?”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 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150년 전의 영국 해군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세기로 접어들며 ‘증기 장갑함’이라는 첨단 무기체계가 등장하자 당시 해군력을 선도하던 영국을 비롯해 여러 강대국이 기술의 변화를 따라가는 데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사 교육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여겨졌는데, 더 강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익히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를 배우는 일은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최첨단 함정을 운용하더라도 적과 싸우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는 과정은 여전히 필요했다. 또한 그것을 위해 안보 상황과 적의 의도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임무도 수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 해군에는 그런 임무를 할 수 있는 인재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오랜 전쟁의 부재 속에서 경험 많은 해군 장교는 다 사라졌고, 전쟁사 교육은 외면하고 기술 교육에만 주력했던 당시의 해군들은 과거의 전략이나 전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략이나 전술을 수립하는 일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군사적 천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겼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영국 해군의 일부 선각자들이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전쟁사 교육을 위한 ‘역사학 운동(Historical Movement)’을 펼치며 몇 안 되는 소수나마 인재를 양성했다. 그리고 바로 그들이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영국 해군을 힘겹게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위의 사례가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전쟁사 교육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실전과 같은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출문제를 제공해준다. 그 기출문제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학습해야 진짜 실전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성적을 받길 희망하는 학생이 기출문제를 풀어보지 않고 시험에 임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시험은 결국 ‘사람’이 출제하는 것이고, 문제를 푸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사용된 무기체계는 완전히 다르지만 2000년도 더 지난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의 전쟁 동기나 지휘관의 의도 등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150년 전의 영국 해군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첨단과학기술 교육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전쟁사 및 전략 교육 또한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인공지능과 무인체계의 시대에도 전쟁사 책을 펼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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