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그들이 온다 - 대만 곳곳에 휘날리는 오성홍기
내년 1월 총통 선거 앞두고
“중, 가짜뉴스 유포 가능성” 긴장
70여 년간 치열하게 이어온 정보전
포섭된 군인·사업가 적발 잇달아
‘내년 총선’ 한국도 남의 일 아냐
대만 사업가, 중국을 위한 스파이망 조직
지난달 24일 대만 검찰은 대만 내 티벳인(人) 관련 정보를 중국에 전달한 전직 공무원 천더먼포옌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내 소수민족인 티벳인 관련 정보는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천더먼포옌은 문화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2019년 12월 몽골-티벳 문화센터 간부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해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에 전달했다. 이 때 그가 사용한 펜으로 위장된 녹음기는 팡샹이라는 대만 사업가로부터 전달받았다고 한다. 중국 하이난성에서 사업을 하던 팡샹은 이미 2017년 중국에 포섭된 스파이로 지난 8월에 체포됐다.
기자 출신인 팡샹은 은퇴 후 중국인 아내 란주와 함께 중국 하이난성에서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며 하이난성 대만인 기업가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2017년 1월 하이난성 국가안전청 간부인 허우정에게 포섭돼 대만 내 스파이망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팡샹은 먼저 사립탐정 회사 대표 딩자오청을 포섭한 뒤 그와 함께 스파이 대상자들을 물색했다. 팡샹의 아내 란주는 주로 자금관리 역할을 했다. 그들은 2017년 6월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가오칭난을 하이난으로 유인해 국가안전청 허우정과 면담을 주선, 포섭한 뒤 대만 독립지지 모임인 ‘편련회’ 간부 등 대만 독립지지 성향 인사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 또 모임의 회장 출마까지 권유하며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당선시키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2018년 1월에는 폭력배 출신인 타오타이바오를 포섭해 중국의 무력 침공 시 곳곳에 게양하라며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83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중국 내 사업 특혜를 빌미로 대만 사업가들을 포섭하는 것은 대만인들의 중국 시장 진출이 늘면서 확대되어 가고 있는 중국 정보기관의 공작 수법 중 하나다.
퇴역 대령이 현역 장교들을 스파이로 모집
최근에는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된 대만 퇴역 장교가 오랫동안 현역 장교들을 포섭해 구축한 간첩망이 발각돼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공군대령 출신인 류싱슈는 2013년 전역 후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대만 내 간첩망 조직을 지시받았다. 류싱수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 중국에서 지원받은 자금을 대만으로 들여와 활용했다고 한다. 그는 도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중령급 장교와 역시 대만군 장교인 그의 부인을 돈으로 포섭해 군사 정보를 수집했는데, 주로 군용 항공기와 군함 성능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2명의 퇴역 장교와 3명의 현역 장교 등 5명이 국가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지난달 25일 스파이 모집책인 류싱수에게 징역 20년과 함께 7억 원의 몰수형, 포섭된 현역 장교 부부는 징역 20년과 4000만 원의 몰수형 등 중형을 선고했다.
대만 군인들이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되는 일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2년 전인 지난 2021년 2월에도 대만 검찰이 퇴역 장교 4명을 기소했는데, 그중에는 중국 정보활동을 주 임무로 하는 대만 군사정보국 장군 출신 웨자충 예비역 소장까지 포함돼 있었다. 2012년 광둥성에서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된 웨자충은 2013년부터 5년 동안 대만에 스파이망을 구축해 기밀정보를 수집해 왔다. 주로 중국 내 대만 정보기관이 구축한 스파이망, 중국 해군과 공군에 대한 대만의 대비상황 등에 대한 정보였다고 한다.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이 끝나고 70여 년이 흘렀지만 양안 간 정보전은 여전히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대만을 사이에 둔 미-중 정보전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간 분쟁으로 인해 관심이 분산되긴 했지만, 미·중 간 패권 경쟁 속에서 직접적인 전쟁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역시 대만이다. 시진핑 주석이 대만 편입 원칙을 천명한 것도 확실해 보인다. 윌리엄 번스 CIA국장은 작년 10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군에게 2027년까지 대만을 공격할 준비를 완료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려 한다면 미군은 대만을 지킬 것이라고 언론을 통해 네 번이나 공언했다.
하지만 이들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국제정치 학자들의 말처럼 위협(Threat)은 역량(Capability)과 의도(Intention)의 곱(T=CxI)이라고 한다면 이제 양국 정보기관의 임무는 분명하다. 상대국 지도자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내는 노력과 함께 상대국의 군사적 역량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기지 주변에 끊임없이 정찰기를 보내 영상과 신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의 각 요소에 스파이를 심어 미국이 지원하는 무기의 성능과 제원을 알아내는 등 상황을 파악한다. 정보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미국이 대만에 군사적 지원만 아니라 정보를 지원하는 이유다.
지난 4월 27일 대만 국가안전국장 차이밍옌은 입법원(국회) 보고에서 작년의 대대적인 컴퓨터 네트워크 개량작업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어권 5개국 정보기관 동맹체)와의 실시간 비밀정보 교류를 위한 것이라며 처음으로 파이브 아이즈와의 관계를 인정하였다. 이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대만지원 수준을 말해주는 것으로 군사 지원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향력 공작이 더 위험
중국은 군사적 수단이 아닌 방법으로 대만을 편입시키려는 다양한 정보활동과 영향력 공작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영국·호주·캐나다 등에서 의회나 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중국의 영향력 공작이 노출돼 각국의 경각심이 높아져 가는 가운데, 내년 1월의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중국이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공작을 추진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4일 차이밍옌 국가안전국장은 입법원 보고에서 중국이 군사, 경제적 압력뿐 아니라 여론조사기관, 홍보업체와 결탁해 조사 결과를 조작하는 등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하였다.
과거 소련 정보기관이 주로 활용하던 가짜 문서나 조작된 서신 등을 통한 여론조작 공작(Disinformation)이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의해 빠르고 정교하게 가능해 짐에 따라 여론 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선거가 위험에 처해 있다. 다양하고 검증되지 않은 여론이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전파되며 위험성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주 중국 업체가 ‘충청타임즈’ ‘경기도데일리’ ‘대구저널’ 등 지방 언론사와 유사한 명칭의 위장 사이트 38개를 개설해 정상 기사와 함께 반미친중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조작된 기사들을 유포하다가 국정원에 적발됐다. 내년에 총선을 앞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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