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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길채에게서 ‘스칼렛’이 보인다

입력 2023. 11. 07   15:39
업데이트 2023. 11. 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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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 ‘추억의 명작’ 소환하는 드라마
 
파트1·2 인기몰이 중인 드라마 ‘연인’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설정 차용
‘…워터멜론’ 주인공의 기타 연주 장면
영화 ‘빽 투 더 퓨쳐’와 비슷하기도

검증된 이야기가 주는 확실한 재미
빠르게 몰입감 높이는 데 ‘한몫’
부모와 자식 세대 소통 돕고
극에 흥미 더하는 요소 되기도

MBC 드라마 ‘연인’은 1936년 출간되고 영화로도 큰 인기를 얻었던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여러 설정이 비슷하다.
MBC 드라마 ‘연인’은 1936년 출간되고 영화로도 큰 인기를 얻었던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여러 설정이 비슷하다.


완벽하게 새로운 이야기는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이미 세상에 선보인 수많은 작품의 소재와 구성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탓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스토리 제작자는 기존 이야기를 적절하게 선별해 조합·변형하는 식으로 새 작품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새로운 작품을 소비할 때도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우리는 그것을 종종 ‘익숙한 맛’으로 포장하며 반긴다.

파트1에 이어 파트2 역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MBC 드라마 ‘연인’도 비슷한 맥락이다.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의 생명력을 다룬 휴먼 역사 멜로 장르인 ‘연인’은 1936년 출간되고 영화로도 큰 인기를 얻었던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유사한 느낌을 부여한다. ‘연인’에서 마을 청년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유길채(안은진)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그러한 여인에게 반한 남자 이장현(남궁민)은 레트 버틀러를 절로 연상케 한다. 이외의 등장인물, 디테일한 설정과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 남북전쟁은 ‘병자호란’으로 치환됐고, 몰락하는 남부는 ‘조선’으로 탈바꿈됐다.

이와 관련해 앞서 ‘연인’ 제작발표회에서 황진영 작가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이후 이를 두고 ‘오마주’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유사성이 짙어 ‘리메이크’라고 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 드라마 방영 중 고개를 디밀기도 했다. 물론 원작자 마거릿 미첼 사후 70여 년이 지난 현재에는 관련 저작권이 소멸된 상태이므로, 이를 모티브인가 리메이크인가로 구별하는 건 법적 문제와 무관하다. 오히려 흥미로운 대목은 1936년 탄생한 당시의 서사가 현재에도 여전히 큰 호응을 얻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는 ‘연인’에 한정된 사안은 아니다. 드라마 ‘연인’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경우처럼 직접 ‘모티브’로 언급되진 않았고, 리메이크 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유사성은 아닐지라도 왠지 낯익은 ‘추억의 명작’이 소환되는 작품들이 있다. 소환을 유발하는 매개체는 때로 스토리의 주요 설정이기도 하고, 때로 효과음이기도 한다.

tvN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 속 주인공의 기타 연주 장면은 영화 ‘빽 투 더 퓨쳐’ 댄스파티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tvN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 속 주인공의 기타 연주 장면은 영화 ‘빽 투 더 퓨쳐’ 댄스파티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tvN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한국 최초로 ‘코다(CODA·농인 부모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소재로 했기에 처음엔 영화 ‘코다’를 떠올리게 했던 터. 하지만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로 떠난 주인공이 학창 시절 부모님을 만나게 된다는 핵심 설정에서 1985년 제작된 영화 ‘빽 투 더 퓨쳐’를 떠올리도록 이끌었다. 영화 ‘빽 투 더 퓨쳐’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작품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을 맡아 그해 최고의 흥행을 거뒀으며, 이후 3편의 시리즈로 확장되면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의 바이블처럼 회자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디테일한 부분은 다르지만 해당 시간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야만 현재의 주인공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상황이 일치한다. 특히 두 사람을 이어주려고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은결(려운)이 수준급 기타 실력을 선보이는 장면은 ‘빽 투 더 퓨쳐’ 속 마티(마이클 J. 폭스)가 댄스파티에서 척 베리의 ‘자니 비 굿(Johnny B. Goode)’을 연주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괴력을 지닌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는 외화 시리즈 ‘소머즈’를 연상케 하는 효과음이 나온다.
괴력을 지닌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는 외화 시리즈 ‘소머즈’를 연상케 하는 효과음이 나온다.



최근 안방극장에 화제를 몰고 온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도 소환을 자극하는 작품이 있다. 작중 모계 유전을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괴력을 지닌 강남순(이유미)은 세계관 최강에 해당하는 캐릭터인데 이는 단순한 괴력 외에도 월등한 시력, 자동차보다 빠른 스피드, 고층에서 뛰어내려도 무사한 낙하력 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순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때 슬로모션 화면에 등장하는 효과음은 그 옛날 ‘소머즈’를 연상케 한다. ‘소머즈(The Bionic Woman)’는 미국 ABC에서 1974~1978년 방영한 드라마 ‘6백만불의 사나이(The Six Million Dollar Man)’에 등장해 인기를 얻은 제이미 소머즈를 주인공으로 한 별도의 스핀오프물로 제작된 작품이다. 소머즈(린제이 와그너)는 태생적인 강남순과 달리 불의의 사고로 바이오닉 인간으로 개조돼 초인이 됐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보유한 여성 캐릭터라는 점과 효과음이 연상작용을 부추긴다.

이러한 추억의 명작 소환과정은 긍정적인 효과가 확실하다. 시청자에게 자동으로 농밀한 친숙함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해당 작품과 요소들을 비교해 보면서 빠르게 몰입감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또한 최근 시대에 걸맞게 재해석된 작품에 빠지면서 동시에 기존 작품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어 들게 이끄는 몫도 수행한다. 어쩌면 여기서 더 나아가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소통을 돕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공통분모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완벽히 새로운 작품은 없지만 시청자에게 색다른 화학작용을 부여해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는 것은 가능하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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