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눈길도, 차디찬 바람도 거뜬하게…
오는 8일은 겨울의 시작이라는 입동(立冬)이다. 곧 도심 곳곳에는 반짝반짝한 조명과 예쁜 장식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길 것이다. 하지만 경계태세를 철저히 유지해야 하는 군 장병들에게는 본격적으로 추위를 맞이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다. 눈이 키만큼 쌓이고, 차디찬 바람이 살갗을 에는 곳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 아직은 그리 춥지 않지만, 장비와 장병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철 대비에 선제적으로 돌입한 육군 부대들의 월동 준비 현장을 다녀왔다. 글=배지열/사진=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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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보병사단 번개여단 전승대대
철책 경계코스 정비·물자 보급 장비 점검 등
지난 1일 강원도 철원군 육군15보병사단 번개여단 전승대대의 한 초소. 비무장지대(DMZ)로 연결되는 통문과 철책을 따라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 순찰로가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 근무하는 장병에게는 이미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산간지방에는 지난달 첫 서리가 내렸고, 통문 근처부터 주둔지 인근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상태였다.
장병들은 겨울철 폭설로 임무 수행에 제한이 생기지 않도록 월동 준비에 나섰다. 우선 초소 천장에 난방패널을 설치해 근무자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했다. 초소 바로 옆 철책 순찰로에서는 장병들이 철제 계단식 발판에 굵은 마닐라 로프를 칭칭 감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눈으로 뒤덮인 군화 때문에 이동 중 미끄러져 다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대대는 지난달부터 월동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방한 외피(스키 파카)를 비롯해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의복을 개인별로 나눠줬다. 의복은 지난해 동계작전 종료 후 깨끗하게 세탁·보관하다 불출했고, 난로 등 채난(採暖) 장비도 작동상태를 꼼꼼히 점검 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박정훈(대위) 중대장은 “과학화장비도 있지만, 결국은 사람에 의한 경계작전이 이뤄져야 하는 곳이라 임무 수행 여건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뒀다”며 “기온·기상 등에 최대한 영향을 덜 받으면서 정상적인 초동조치를 전개하도록 주변 환경과 개인 복장에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곳에는 폭설로 물자 이동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모노레일도 있다. 201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모노레일은 가파른 소초 진입로에 눈이 쌓여 진입하기 어려울 때 위력을 발휘한다. 차량을 대신해 부식과 장비 등을 옮길 수 있는데, 최대 약 350㎏의 화물을 싣고 300m 이상 떨어진 고개 정상의 주둔지까지 15분 만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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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천수(하사) 분대장은 “겨울에는 부식을 비롯한 물자 보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더 추워지기 전에 시설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비상시 바로 쓸 수 있게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본부중대로 이동하니 생소한 장비가 보였다. 트랙 로더(Track Loader)로 불리는 이 장비는 보통 앞쪽에 달린 버킷에 물건을 담아 들어 올려서 트럭에 싣는다. 그러나 겨울에는 또 다른 역할을 맡는다. 기다란 봉에 플라스틱 재질의 솔을 장착해 눈을 제거하는 것. 좁은 비포장도로에서 트랙 로더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눈이 양쪽으로 말끔하게 치워져 장비 기동로를 확보할 수 있다.
대대는 원활한 유류 추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군수과 간부들이 소형 유조차를 운용할 수 있도록 위험물 산업기사 자격증 취득을 독려했다. 또 3차에 걸쳐 필터와 약품 탱크로 정수한 물이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통합급수관에 열선과 내부 보온재 등을 추가 설치했다.
최민석(대위) 군수과장은 “겨울철에는 물과 기름을 어떻게 조달하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미리 여러 방면으로 대비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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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보병사단 황금박쥐여단 푸른박쥐대대
방한용품 준비·제설작업 물품 확보 만전
이튿날은 무대를 강으로 옮겼다. 자유로 변에 있는 경기도 파주시의 한 초소.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옆으로 기러기와 두루미가 휴식을 취하는 한강의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경계작전을 수행하는 9보병사단 황금박쥐여단 푸른박쥐대대 장병들은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새가 없었다. 강 너머에 맨눈으로도 보이는 북한 땅이 지척이기 때문. 긴장을 늦추지 않는 그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강을 끼고 있는 근무환경 특성상 장병들에게 겨울은 폭설보다는 차디찬 강바람을 견디는 것이 관건이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육종현 상병에게 매서운 강바람은 생전 처음 겪는 혹독한 겨울 추위의 인상을 깊게 남겼다. 지난해 9월 입대한 그는 발이 얼고, 몸이 계속 떨렸던 그때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부대에서 제공한 방한용품 덕분. 털 달린 모자가 붙어있어 방탄헬멧을 쓰고도 머리를 덮는 스키 파카부터 방한복 내외피와 방한용 장갑·귀마개, 안면 마스크, 방한화 등이다.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람을 막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구성이다.
육 상병은 “많이 껴입으면 오히려 땀이 나고 덥다”며 “올해 처음 임무를 수행할 후임들은 양말을 여러 겹 신어서 발이 시리지 않도록 하고, 여분의 핫팩도 많이 챙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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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을 위한 보온대책뿐만 아니라 각종 장비에도 월동 준비가 필요하다. 강을 바라보고 있는 열영상감시장비(TOD)에는 눈·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탐지 세트 덮개가 장착됐다. 장병들은 장비와 연결된 케이블에도 스티로폼으로 된 보온재를 붙이고 테이프로 고정했다.
적의 침투 및 월선을 대비해 배치된 화기에도 추위를 막으려는 조처가 단단히 이뤄졌다. 습기에 노출돼 부식되고, 낮아진 기온에 오작동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장비 일부분에 덮개를 씌웠다.
겨울철에는 장병들이 지켜야 할 사항도 추가된다. 초소에서 채난 장비를 가동했을 때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변 환경을 점검해야 한다. 또 눈이 오지 않더라도 땅이 얼어붙을 수 있어 낙상·미끄럼 방지에 특히 신경 쓴다.
대대는 동계 기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물품도 확보했다. 적사함에는 제설작업용 염화칼슘 포대가 가득했다. 그 옆에는 직접 눈을 치울 수 있는 빗자루·삽·넉가래도 보관하고 있다.
김형일(중위) 소초장은 “겨울에는 다른 때보다 갖춰야 할 자재 소요가 많고, 작전 준비도 더 철저해야 한다”며 “빠짐없는 준비로 동계 악기상을 극복하고 결전태세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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