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영화

개인의 삶 파고드는 제국주의 파편

입력 2023. 11. 01   16:32
업데이트 2023. 11. 0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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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 스파이의 아내(2020)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주연: 아오이 유우, 다카하시 잇세이, 히가시데 마사히로, 반도 류타

일본서 만든 ‘731부대’ 생체실험 고발 영화
만행 폭로 결심 후 파국 치닫는 가족의 운명
사회·개인 갈등, 추리물 문법으로 세밀히 묘사
현지서도 반일 영화 낙인…투자 난항 겪기도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컷. 사진=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컷. 사진=엠엔엠인터내셔널



“731부대 장교들은 전후 일본에서 빛나는 경력을 이어갔다. 그들 가운데 세 명은 일본 혈액은행(나중에 거대 제약회사인 녹십자가 됨)을 설립하고 2차 대전 당시 인간 생체실험에서 얻은 혈액 동결건조 기술을 활용하여 건조 혈장 제품을 제조했고, 이를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731부대 사령관이었던 이시이 시로 중장은 전후 미군의 생물학 무기 연구에 협력했으리라 추정된다.” (『종이 동물원-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중, 켄 리우 지음, 황금가지 펴냄) 


중일전쟁의 서막 ‘만주사변’

1931년 9월 18일, 만주 선양시 인근에서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일본 관동군 수뇌부가 도쿄 내각에 보고도 하지 않고 전쟁 도발을 위해 철도 폭파사건을 조작한 것. 철도 폭파 후 관동군은 “중국군이 철로를 폭파하고 수비대를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일제히 중국 동북군 북부 사령부를 기습공격했다. 류타오후 폭파사건은 만주사변으로 확전됐다.

중국 동북군은 무방비 상태였다. 만주의 중국 동북군은 20만 명에 이르렀지만, 1만~3만여 명에 불과한 관동군에게 패해 만주 전역을 내주게 됐다.

류타오후 폭파사건이 터지자 일본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선통제)를 만주로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1932년 3월 1일 일본 관동군은 푸이를 황제로 내세워 만주국을 세웠다. 만주국은 일본이 만든 괴뢰정권이고, 실제 통치는 관동군이 주도했다. 만주사변은 중일전쟁, 즉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유럽보다 앞서 아시아가 세계 대전에 휘말린 것이었다.


전쟁으로 파탄을 향해 가는 가족

“전 미치지 않았어요. 그건 제가 미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필시 이 나라에서는요.” 주인공의 절규처럼 군국주의라는 광기가 한 시대를 가로지르는 가운데 개인은 어떻게 일상을 마주하며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있을까. ‘스파이의 아내’(2020)는 어두운 과거를 여전히 외면하는 일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영화다.

배경은 1940년 고베.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으로 일본 제국주의는 대동아 신질서 건설이란 망령에 휩싸여 있다. 일본군은 중국과 동남아로 진격 중이다. 곧 화염에 휩싸일 듯한 세상과 달리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부부가 있다.

무역상 유사쿠(다카하시 잇세이)와 그의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 유사쿠는 고급 양복과 위스키를 즐기는 자본가이고, 사토코는 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소녀 같은 감성의 여자다. 헌병대장으로 부임한 사토코의 어릴 적 친구 다이지(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이 부부가 못마땅하다. 전운이 감도는 시국에 현실은 외면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유사쿠가 만주로 출장을 떠난다. 그런데 돌아온 남편이 수상하다. 혹시 새로운 여자가 생긴 걸까. 아내는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남편을 불안한 가운데에도 믿고, 믿는 가운데에도 불안에 떤다. 남편의 주위를 맴돌던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만주에서 일본군이 병균으로 인간을 생체실험했고, 수많은 주검을 보았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 증거를 미국으로 가져가 폭로하려는 계획까지 밝힌다.

사토코는 고뇌에 빠진다. 사랑하는 남편이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행복하고도 안락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길을 갈 것인가. 사토코의 선택은 부부의 운명을 바꿔놓는데….

영화는 전쟁으로 인해 파탄을 향해 가는 가족, 이들을 둘러싼 주변 관계, 전체주의 사회와 개인의 갈등을 극적으로 풀어간다. 하지만 정치적 수사와 메시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영화의 이음새와 매듭은 정교하다. 유사쿠를 의심하는 사토코의 심리, 사토코의 밀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유사쿠의 모습을 추리물의 문법으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반일 영화’로 찍혀 투자에 난항을 겪었다. 공영방송인 NHK가 나서면서 겨우 제작할 수 있었다. 제작비가 부족했던 감독은 CG를 쓸 수 없어 영화에 등장하는 창문들을 모두 불투명하게 처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정이 영화를 더욱 ‘영화적으로’ 만들었다. 불투명한 창문은 곧 바깥세상을 온전하게 볼 수 없는 인물들의 상황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디테일한 묘사는 물론이고 본격적인 전쟁 장면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일본 731부대에 대해 어설프게 피하지 않는다. 흑백으로 된 기록 필름이나 노트를 통해 참혹한 현장을 그대로 고발한다. 일본 호러 영화의 대가라 불리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첫 시대물이다. 2020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 수상.



‘아시아의 아우슈비츠’ 한국인 포함 최소 3000명 희생

“중국인 포로들이 공터에 한 줄로 길게 서 있었다. 맨살이 드러난 포로들의 팔에 물을 뿌렸다. 팔이 꽁꽁 얼었는지 확인하려고 곤봉으로 때렸다. 깡, 깡. 나무토막을 때릴 때 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포로들을 ‘통나무’라는 뜻의 마루타라 불렀다.”

만주 하얼빈시 근교 핑팡 지구. 일본군은 지역 당국에 이곳 시설을 제재소라고 신고했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아시아의 아우슈비츠’라 불렀다. 일본제국 육군 제731부대가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중국인과 한국인, 연합군 포로에게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으로 적어도 3000명이 희생됐다. 731부대는 탄저균, 페스트균, 콜레라균 등 20여 종류의 병원체를 세균병기로 개발했다.

731부대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준다. 생체실험에는 세 살짜리 어린이도 포함돼 있었다. 1981년 일본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는 ‘악마의 포식’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731부대를 다룬 책이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악행임에도 일본 정부나 관계자가 이를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한 적은 없었다. 사과는커녕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다’라느니 ‘고통이 뒤따랐다’라느니 하는 식의 목적어 없는 자동사 구문 뒤에 숨어 부정과 회피라는 치졸한 화법을 사용할 뿐이었다.

731부대원들 중에는 도쿄의과대 같은 고학력의 인텔리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전범재판을 받지 않고 전후 일본 후생성 등에서 고위 관직에 올라 천수를 누렸다. 731부대 제2부대장이었던 기타노 마사지 소장은 6·25전쟁 때 인공혈액을 팔아 막대한 부를 챙겼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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