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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는 별자리가 길잡이였다는데…

입력 2023. 10. 31   16:25
업데이트 2023. 10. 3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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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북극성과 은평의 별, 광진의 별 

북극성을 나라 중심·임금의 별로 여겨
주변 밝은 별 무리 보며 지역 위치 가늠
청동기 때 중국선 1개 아닌 5개로 판단
실제는 인접한 3개 별이 1개처럼 보여
먼 과거와 미래엔 위치도 현재와 달라

북극성을 유럽에선 ‘폴라리스’라고 부른다. 별자리로 구분하면 작은곰자리에 속하는 별이다. 사진=게티이미지
북극성을 유럽에선 ‘폴라리스’라고 부른다. 별자리로 구분하면 작은곰자리에 속하는 별이다. 사진=게티이미지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으면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처럼 별들도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별들은 밤하늘의 어떤 한 위치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돌아가는 것 같은 모양으로 움직인다. 한반도가 있는 북반구 지역에서 밤하늘을 보면 그 중심 위치와 아주 가까운 곳에 마침 그럭저럭 잘 보이는 별 하나가 보인다. 바로 ‘북극성’이다. 유럽에서는 ‘폴라리스’라고 부르는데, 별자리로 구분해 보면 작은곰자리에 속하는 별이다.

밤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이 모두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 신분제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북극성이 다른 모든 이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지위의 고귀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극성이 임금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자연히 조선시대에는 북극성과 그 주위 별들이 임금과 관계있다거나 임금이 머무는 장소와 통해 있다고들 생각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550년 전, 조선에서 풍수지리가로 유명했던 문맹검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1452년 음력 3월 3일 기록에 당시 문맹검이 생각하던 풍수지리와 별에 대한 이론을 문종에게 글로 써서 올린 내용이 나와 있다. 그는 밤하늘의 별들과 그 형상을 잘 이어받은 땅은 서로 닮은 기운을 품고 있다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의 종로 지역이 북극성과 그 주변 별들과 잘 들어맞는다고 봤다. 그는 조선의 임금이 있는 경복궁 근처의 북악산을 가리키면서 바로 그 지역이 북극성 주변을 나타낸다고 풀이했다. 

고대 중국 고전에서 북두칠성을 포함한 북극성 주변 별을 묶어 ‘자미원(紫微垣)’이라고 불렀으며, 그 지역이 밤하늘의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고대 중국에서 북극성을 비롯한 자미원의 별들이라고 본 것을 조선에서는 나라의 중심인 북악산·경복궁의 별들로 여겼다.


조선 풍수지리가 문맹검은 북악산과 경복궁 주변이 북극성의 기운을 이어받는 지역이라고 봤다. 사진은 경복궁 남문인 광화문의 야경.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조선 풍수지리가 문맹검은 북악산과 경복궁 주변이 북극성의 기운을 이어받는 지역이라고 봤다. 사진은 경복궁 남문인 광화문의 야경.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중국 고전에선 자미원의 별들 옆에 있는 다른 별을 묶어 태미원·천시원의 별들로 따로 분류하기도 했다. 문맹검은 북극성이 있는 자미원뿐 아니라 태미원·천시원의 별들과 통하는 지역도 서울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쪽의 영서역이 태미원과 통하고, 동쪽의 낙천정이 천시원과 통한다고 봤다.

영서역은 연서역이라고도 부르는 곳으로 지금의 서울 은평구 역촌역 지하철 근방이었고, 낙천정은 지금의 잠실대교 근처 광진구에 있는 정자를 말한다. 태미원에 속하는 별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큰곰자리의 곰 발 부분을 나타내는 탈리사·타니아·알룰라가 있고, 천시원에 속하는 별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헤라클레스 자리의 머리 부분을 나타내는 라스알게티가 있다. 이들 별은 비교적 잘 보이는 밝은 별에 속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큰곰자리 곰 발 부분의 별들을 보면서 영서역, 지금의 은평구 지역을 나타내는 별이라고 여기고 헤라클레스 자리 머리 부분의 별들을 보면서는 낙천정, 지금의 광진구 지역을 나타내는 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지역이나 건물을 나타내는 별이 밤하늘에 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런데 옛 학자들이 북극성 주변 별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정작 밤하늘의 중심이라는 북극성이 긴 세월이 흐르면 자꾸만 바뀌어서다.

별들이 뜨고 지는 위치는 얼핏 일정한 것 같아 보인다. 해와 달, 별이 뜨고 지는 이유는 지구가 돌기 때문인데, 지구는 항상 일정하게 돌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비틀거리기도 하고 긴 세월이 흐르면 다른 이유로 지구의 위치와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그렇기에 북극성이 모든 별의 중심인 것 같아 보여도 세월이 흐르면 별들이 도는 중심도 조금씩 바뀐다. 먼 옛날에는 지금 우리가 북극성을 보는 위치에 북극성이 없었고 다른 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대략 1500년 전에는 작은곰자리에 속하는 코카브라는 별이 더 중심 위치에 있었고, 반대로 서기 3000년 정도의 미래가 되면 케페우스 자리에 속하는 다른 별이 지금의 북극성 위치로 다가오게 된다.

청동기 시대 중국 학자들은 북극성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5개의 별이 있고, 그게 밤하늘의 중심이라고 봤다. 이를 ‘북극오성’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수백 년, 수천 년이 흐르자 그 5개의 별이 중심 위치를 나타낼 때 잘 들어맞지 않게 되면서 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아마도 삼국시대의 고구려인도 이 문제를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구려인은 무덤 벽화에 별자리를 그릴 때 중심을 상징하는 별로 중국식 북극오성보다는 북두칠성을 넣고 별 3개가 이어진 독특한 형상을 자주 그렸다.

김일권 교수는 별 3개를 이어 놓은 모양이 고구려인이 다른 방식으로 북극성을 표시한 거라고 보고, 그것을 북극삼성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정말 고구려인은 고구려 기준의 새로운 북극성을 정해 놓고 별을 관찰했을까? 이런 내용을 고구려인이 직접 설명해 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명쾌한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지식을 좀 더 활발히 공유하고 널리 퍼뜨리며 잘 보존하려는 문화가 있었다면, 그래서 그 많은 별 그림을 왜 그렸는지와 별을 어떻게 관찰하고 해석했는지에 대한 옛 생각이 전해졌다면 더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세월이 흐르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북극성에 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선 우리가 북극성이라고 부르는 별이 사실은 하나의 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북극성은 3개의 별이 가까이 모여 있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하나로 겹쳐 보여 한 덩어리의 별처럼 보일 뿐이다. 만약 북극성이 임금을 나타낸다는 옛 생각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나라에 임금님이 3명 있다는 이상한 말이 된다. 기이한 우연이지만 문맹검이 살던 조선 전기엔 태종 이방원이 임금이고 태조 이성계, 정종 이방과가 각각 태상왕과 상왕의 칭호를 갖고 있던 시기가 있어서 한 나라에 왕으로 불리는 이가 3명이던 때가 있었다.

북극성의 별빛을 이루는 3개의 별 중 가장 큰 것을 기준으로 하면 이 별은 태양보다 5배 이상 무거운 상당히 큰 별이다. 만약 북극성에 가까이 다가가 본다면 태양보다 훨씬 큰 별이 이글거리며 열기를 내뿜고 있고, 그 옆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양에 버금가는 크기의 다른 별도 같이 빛나고 있는 눈부신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극성은 지구에서 4000조㎞ 정도 떨어져 있기에 너무 멀어 그저 반짝이는 작은 별로 보일 뿐이다. 누리호의 속력으로 날아가도 1500만 년 이상 가야 도달할 수 있는 머나먼 거리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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