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영화

짓밟힌 평화, 짓눌린 희망

입력 2023. 10. 11   16:34
업데이트 2023. 10. 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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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 레바논(2009)
감독: 사무엘 마오즈·마오즈 슈무릭
출연진: 레이몬드 암살렘, 오슈리 코엔, 조허 슈트라우스

1982년 6월 레바논 전쟁 배경 
스무 살 남짓 전차병 시각으로 
숨 막히는 공포와 폭력·광기 전해

마오즈 감독, 실제 참전기 바탕 제작 
끝나지 않는 중동의 비극…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의 본질

‘레바논’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이스라엘 탱크병의 시각에서 묘사한 반전영화다. 영화 ‘레바논’ 포스터.
‘레바논’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이스라엘 탱크병의 시각에서 묘사한 반전영화다. 영화 ‘레바논’ 포스터.

 

“내가 목격한 죽음 중에서 가장 끔찍한 베이루트식 죽음은 1982년 8월 일어났다.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수용된 서베이루트의 8층 건물을 폭격했다. 건물이 주저앉으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산 채로 묻혔다. (중략) 베이루트에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해도 사망자나 생존자 명단을 작성하지 않는다. 베이루트는 죽음에 무감각하다.”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중, 토머스 L.프리드먼 지음, 창해 펴냄)


제5차 중동전쟁의 서막?

발칸반도가 20세기의 화약고였다면, 중동은 21세기의 화약고다. 그 화약고의 가장 위험한 뇌관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이다.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과 두 차례에 걸친 ‘인티파다(Intifada·팔레스타인 저항운동)’로 유혈 충돌이 끝없이 이어져 왔다.

사실 이스라엘의 존재는 처음부터 전쟁터, 그 자체였다. 제1차 중동전쟁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마자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 아랍 5개국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시작됐다. 신생국이지만 잘 조직된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 오히려 국경을 확대했다. 쫓겨난 10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난민 수용소로 모여들었다.

제2차 중동전쟁은 1956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운하를 점령하면서 시작됐다. 1967년에는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둬 가자지구 등 요충지를 확보했다. 제4차 중동전쟁은 1973년 이집트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열세였지만 미국 지원으로 전황이 역전됐다.

1987년과 2000년에는 인티파다와 더불어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아랍어로 봉기·폭동을 의미하는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통치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그러다 다시 뇌관이 터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유대교 안식일인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것. 여기에 헤즈볼라가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하면서 확전 가능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각에선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소재 반전영화

1982년 6월 6일, 레바논 전쟁 첫날. 영화 ‘레바논’은 해바라기가 끝없이 넓게 펼쳐진 들판을 비추며 시작한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사랑과 기다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투입된 탱크 ‘코뿔소’의 신임 포수 슈물릭은 전차장 아시, 탄약수 헤첼, 조종수 이갈과 인사를 나눈다. 탱크는 해바라기밭을 짓밟고 공중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레바논의 영토를 향해 전진한다. 이들의 임무는 공수부대 ‘신데렐라’를 엄호하며 폐허가 된 마을에 남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잔당을 정리하는 것. 그러나 전쟁이 어디 계획대로 진행되던가. 임무 수행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적군에게 포위되는 상황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다친 부대원들은 마을 한복판에 갇혀 공포에 몸을 떨게 되는데….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네 명의 병사는 용감한 전사들도 아니고,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전쟁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죽음이 두렵고 전쟁을 싫어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자화상일 뿐이다. 21살에 신병으로 참전했던 사무엘 마오즈 감독은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탱크 안의 숨 막히는 공포와 탱크 밖의 폭력과 광기를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감독은 관객을 탱크 안으로 초대한다. 폐소 공포증과 가위눌림을 반복할 것 같은 공간. 덜컹거리며 운명을 알 수 없는 길을 뚫고 가는 탱크. 사람을 처음 죽이는 탱크병의 공포는 전쟁에서 폭력을 마주한 민간인의 공포와 다를 바 없다. 탱크 밖 세상은 처음과 마지막 장면을 제외한 모든 장면이 조준기로 바라본 전차병의 시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를 통해 영화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의 본질과 그 속에서 피폐해져 가는 인간 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의 고통을 겪는 이스라엘 병사 4명에게 공감할 뿐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난민 희생자들을 애도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영화의 한계다. 2009년 제66회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작.

영화는 해바라기가 끝없이 넓게 펼쳐진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전차 한 대를 비추며 끝난다. 해바라기의 꽃말처럼 기다리면 중동에도 사랑이 찾아올까.



무장 정파 ‘하마스’ 왜 공격 개시했을까?
철저한 반유대주의…‘팔’ 해방 목표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판 9·11’ 혹은 ‘이스라엘판 진주만 공습’으로 비유된다. 그만큼 충격이 크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이후 50년 만에 가장 충격적인 피의 충돌이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최첨단 방어 시스템 ‘아이언돔’은 동시다발적인 로켓포탄을 막지 못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신베트(국내)와 모사드(해외)도 공격계획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해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파타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라는 2개의 정파로 분열돼 있다. ‘승리’라는 뜻의 파타는 PLO를 이끌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1957년 설립한 정당이다. 파타는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한 ‘2국가 체제’를 지지한다. ‘2국가 체제’는 이스라엘과 장래 들어설 팔레스타인 국가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공존하는 방안이다.

강경 수니파인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이라는 뜻으로 1987년 1차 인티파다 당시 셰이크 아메드 야신에 의해 창설됐다. 하마스는 이념과 정책에서 파타와 완전히 극과 극이다.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철저한 반유대주의다. 이스라엘을 타도하고 유대인을 내쫓아 전체 팔레스타인 지역을 해방하는 게 목표다. 당연히 ‘2국가 체제’를 거부한다. 파타와 하마스는 동족이라는 말을 쓰기도 어려울 정도로 서로 대립하고 적대시한다.

여기에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헤즈볼라도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이 PLO의 근거지를 없앤다는 이유로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탄생했다. 레바논 시아파 민병대가 시초다. 공식 명칭은 ‘레바논 이슬람 저항을 위한 신의 정당’. 이란의 지원 아래 세력을 키웠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최근 들어 반이스라엘 기치 아래 뭉치고 있다. 이 전쟁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이 때문에 휴전이 이뤄져도 언제 다시 화약 연기가 자욱해질지 아무도 모른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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