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우리 곁에, 예술

제주 푸른 바다와 초록빛 정원을 상상해보세요

입력 2023. 10. 10   16:29
업데이트 2023. 10. 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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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Artist Studio ① Working with nature _ 김보희의 제주 찬가 

제주도 이주해 아틀리에 마련
일상의 제주 풍경 화폭에 담아
편안하되 몰입도 높은 화면 제시
캔버스에 전통 안료 분채 사용
청아하고 맑되 선명한 색감 구현
다채로운 초록의 스펙트럼 완성

더 테라스(The Terrace), 캔버스에 채색, 324x520㎝, 2019.
더 테라스(The Terrace), 캔버스에 채색, 324x520㎝, 2019.



‘아티스트 스튜디오(Artist Studio)’는 작품이 구상, 제작되는 공간인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창작 과정,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연재된다. 앞으로 매달 1명의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대표작을 독자들께 소개할 예정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제주의 푸른 바다, 야자수와 각종 식물이 무성한 이국적인 정원, 그리고 그 초록의 정원을 뛰노는 반려견 한 마리. 상상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이 장면은 작가 김보희의 삶과 작업이 펼쳐지는 풍경이다. 서울 태생인 김보희는 2003년 제주도로 이주해 서귀포에 아틀리에를 마련한 후 제주에 터를 잡고 살아가며 보고 느낀 일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초기 동양화의 전통적 모색기와 양수리, 대성리 등의 산과 강을 묘사한 내면적 풍경화 시기를 거쳐, 2010년 이후 세밀한 묘사와 다시점의 다면 회화를 통해 싱그러운 초록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김보희의 그림은 평화롭고 쉽다. 복잡한 미사여구도 없고 대단한 의미를 내포하지 않지만, 편안하되 몰입도 높은 화면을 제시한다. 생명력 넘치는 제주의 풍경과 그 속의 삶을 담은 김보희의 작품은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발이 묶인 현대인들의 자연과 여행에 대한 갈증에 화답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김보희는 성실하고 규칙적인 작업 루틴을 가진 작가다. 새벽 6시경 기상해 반려견 레오와 정원과 집 주변을 산책한 뒤 오전 9시부터 하루에 9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한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작가가 머무르는 작업실은 천장고가 5m 이상이고, 한쪽 벽면은 100호 작품 27점을 걸 수 있을 만큼 넓고 탁 트였다. 작가의 작업실 크기는 곧 작품의 사이즈가 된다. 이 작업실에서 그의 기념비적 대표작 ‘더 데이스(The Days)’가 제작되었다. 작업실 크기에 맞춘 최대 크기의 작품. 27점의 대형 캔버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어지간한 거리에서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대작이다. ‘더 데이스’, ‘더 테라스(The Terrace)’와 같이 여러 캔버스를 이어 붙인 대형 작품에는 다양한 시점과 시간이 섞여 있어 파노라마 식으로 스토리를 읽어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여러 캔버스로 구성된 작품은 다시점으로 작업을 했어요. 동양화의 심원법, 고원법, 평원법 등의 시점이 공존하죠. 그림을 그릴 때도 화면을 읽어가면서 그려, 27개의 캔버스로 구성된 작품은 아침으로 시작해서 밤으로 끝나는 것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한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죠.”


제주도 작업실에서 만난 김보희 작가.
제주도 작업실에서 만난 김보희 작가.

 


작가의 설명대로 비현실적 시점과 시간의 공존은 작가의 제주 시기 특징으로, 대상을 가깝게 끌어당겨 한눈에 펼쳐 보이고, 세밀한 묘사를 더해 자연 속에 관람자가 들어가는 듯한 몰입도 높은 화면을 제시한다. 관람객은 어느덧 작품 속의 반려견 혹은 탁자나 의자에 무심하게 놓인 커피잔의 주인이 되며 작품 속 풍경에서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몰입도는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실감미디어 작품에 이르러 공간 전체를 감싸는 영상과 음악을 통해 진정 작품 속에 파묻혀 자연과 풍경을 감상하는 체험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김보희의 제주 풍경이 가진 흡인력이자 치유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작품의 재료와 안료, 그리고 도구를 발견할 수 있다. 김보희의 스튜디오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여러 개의 통을 빽빽하게 채운 다양한 종류의 붓이었다. 사이즈와 형태, 용도가 제각각인 붓들은 동서양의 재료를 함께 쓰며 실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해온 작업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도구이다. 이젤에 세워진 대형 캔버스 또한 여느 동양화가의 작업실 풍경과는 다르다. 김보희는 캔버스에 분채를 사용한다. 지지체를 캔버스로 옮겨온 것은, 대형 작업으로 인한 한지 폭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나, 안료만은 여전히 분채를 고집하고 있다. 익숙한 재료이기도 하거니와 작가가 추구하는 다양한 초록색, 백록과 청록 같은 색감의 스펙트럼을 아크릴 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캔버스 위에 분채와 먹으로 선명한 색감을 올리기 위해 캔버스 천의 종류를 바꾸거나 뒤집어 보고 전처리 과정을 생략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색감을 올리는 붓도 둥글고 부드러운 붓부터 넓고 거칠고 뾰족한 붓까지 가능한 모든 시도를 거쳐 동양화 물감만으로 청아하고 맑되 선명한 색감을 구현하게 되었다. 이토록 선명하고 이국적인 풍경이 전통 안료로 표현한 것이라니 놀라운 동시에 이 다채롭고 평안한 색감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색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김보희 특유의 다채로운 초록의 뉘앙스이자 다양한 밝기와 깊이를 머금은 초록의 스펙트럼으로 완성된 것이다.

작가의 제주 시기 대표작은 단연 이국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식물과 씨앗 등으로 구성된 ‘정원풍경’과 하늘과 바다 그리고 수평선으로 화면을 분할한 색면 회화인 ‘바다풍경’이다. ‘정원풍경’은 이상향으로 꿈꾸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그 자체이며, 언뜻 잔잔하고 넓은 색면으로 보이는 하늘과 바다는 수많은 터치와 색 점으로 메워진 화면으로 작가의 제스처와 수행의 시간을 전달하고 있어 그 색감과 디테일을 자세히 그리고 하염없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감상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 속에서 위로받고 회복의 에너지를 얻게 된다.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계절, 김보희의 제주 찬가 작품을 통해 제주도의 가을과 자연 그리고 색감을 만나보자. 사진=작가 제공

김보희(1952) 작가는
이화여대 동양화과 및 대학원 순수미술과 졸업. 2017년까지 이화여대 교수·박물관장을 역임했다. 월전미술상,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을 수상했다. 갤러리바톤, 제주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등에서 20여 회 개인전을 개최했고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 전시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등 유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홈페이지 kimbohie.com/. 

필자 심지언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전시팀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큐레이터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각예술 전문 매체 월간미술의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필자 심지언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전시팀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큐레이터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각예술 전문 매체 월간미술의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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