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커피사 - 카페의 역사 (상)
아프리카 오로모족 음식에서 음료로
전투 앞두고 커피 의식 '부나 칼라' 진행
시간 지나며 손님 환대 관습으로 진화
17세기 프랑스 카페 문화로 이어져
1554년 콘스탄티노플의'커피하우스'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카페로 인식
커피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며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지혜가 싹트고 시대적 각성이 이루어졌다. 술과는 다르게 마실수록 정신을 또렷하게 만드는 커피의 아폴론적 면모는 카페를 ‘집단지성의 원천’으로 만들어 주었다.
카페가 커피를 부른 게 아니라 커피가 있는 곳에 카페가 만들어졌다. 정신에 작용하는 커피는 인류에겐 그야말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으며, 병 치료를 돕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효능은 커피 자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눈을 지그시 감게 만드는 커피의 매력적인 향미를 ‘덤’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커피야말로 프루스트의 마들렌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로 하여금 기억을 더듬게 만든다. 커피를 목 뒤로 넘긴 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살피며 관능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다 보면 생각에 잠기게 된다. 향미가 나로 하여금 내면의 나에게 자꾸 말을 걸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커피를 감상하는 카페는 ‘사유의 공간’이다.
에티오피아의 부나 칼라
카페를 ‘여럿이 모여 커피를 나눠 마시는 시공간’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최초의 흔적을 마땅히 인류가 커피를 음식으로 처음 먹기 시작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찾는 것이 옳다. 유목민인 오로모족은 자주 이동해야 했기에 간편하게 지니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잘 만들었다. 그러던 중 체리처럼 생긴 빨간 커피 열매를 씹으면 힘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절이 지나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부족해지면 딱딱한 채로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땅에 떨어진 커피 체리를 끌어 모았다. 이것을 동물성 기름과 섞어 끓인 후 당구공처럼 뭉쳐 갖고 다니며 힘을 써야 할 때 꺼내 먹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주거지를 옮겨야 했기에 부족 간 마찰이 잦았고, 부족의 생존을 위해선 불가피하게 크고 작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두고 각 부족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찾기에 골몰했다. 전투에 앞서 커피를 마시는 성스러운 의식도 생겨났다. 의식은 커피 마시는 방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은 각성을 일으키는 성분이 씨에 농축돼 있음을 깨닫고 씨만 골라내 볶기 시작했다.
커피의 약효가 널리 알려지면서, 커피는 부족의 음식이자 음료가 됐다. 오로모족은 이동이나 전투 등 중요한 일이 생기면 커피 주변으로 몰려들어 ‘부나 칼라(Buna Qalaa)’를 치렀다. 이 말은 ‘커피를 살육한다’는 뜻이다. 이들에게는 일종의 사육제(Carnival)인 셈이다. 의식은 오로모족의 여인들이 맡는데, 부나 칼라를 하면서 읊조리듯 계속 주문을 외운다. “커피 향기를 신에게 드리니 부족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을 내려 달라”는 간곡한 기도다. 오로모족은 전통적으로 커피나무는 신의 눈물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특별하다고 믿고 있다. 오로모족에게서 시작된 ‘커피 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라는 관습으로 뿌리를 내렸다. 17세기 프랑스에서 문화적으로 근사하게 형성되는 카페는 이렇게 태동했다.
아랍 커피,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부족에 손님이 오면 그 자리에서 커피를 볶고 추출해 귀하게 대접하는 관습이 ‘에티오피아 세리머니’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문화로 유네스코의 인정을 이끌어낸 쪽은 아랍이다. 유네스코는 2015년 “아랍 커피에는 인류가 계승해야 할 환대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서 ‘너그러움의 상징, 아랍커피(Arabic coffee, a symbol of generosity)’라는 명칭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아랍인들은 전통적으로 손님이 보는 앞에서 커피를 준비하는데, 우선 커피 생두를 커다랗고 평평한 철제 팬 위에 놓는다. 팬을 불 위에 올려놓고 볶으면서 끝이 둥글고 작은 철제 도구를 이용해서 커피콩이 타지 않도록 저어준다.
볶아진 콩을 구리로 만든 절구에 넣고 절굿공이로 빻는다. 이때 건강과 행복을 부르는 노래를 부른다. 이어 커피 가루를 달라(Dallah)라고 불리는 커다란 구리 주전자에 넣고 물을 부어 함께 끓인다. 한 번 끓여 거품이 오른 커피는 더 작은 달라에 옮겨 담은 후 60~90mL 용량인 작은 핀잔(Finjan)에 따라 손님에게 건넨다.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이 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상 풍경이 됐고 커피를 나눠 마시는 공간은 차츰 오늘날 카페와 같은 개념의 공간으로 변했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여론이 형성되고 위정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커졌을 것이다. 당시 카페의 분위기와 의미는 해당 국가에서 펼쳐진 정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1511년엔 메카의 통치자가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음탕한 짓을 한다”는 이유로 커피 음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거센 반발에 부딪쳐 결국 메카의 통치자가 되레 카이로의 군주로부터 파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당시 카페가 위정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널리 확산됐음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다. 그러나 딱 꼬집어 카페 이름이 적시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15세기 후반쯤 메카에 ‘카베 카네스(Kaveh kanes)’라 불리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고 전하는 정도다. 카베 카네스가 간판에 적힌 고유명사인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당시 카페들은 간판 없이 주인장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오스만제국 이스탄불 시대부터 기록 발견
16세기 초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 시대부터 커피 문화를 기록한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셀림 1세가 1519년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커피를 알게 된 이래 오스만제국의 궁중에서도 커피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궁 안에 커피를 담당하는 하인이 따로 지정될 정도였다. 오스만제국이 1536년 커피 생산지 예멘을 점령한 뒤엔 커피가 일반에게도 빠르게 퍼졌다. 졸음을 쫓는 각성 효과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작용 때문에 커피는 군인들에게도 지급됐는데, 이는 오스만제국이 점령한 수많은 나라에 커피가 전해지는 통로가 됐다.
155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커피하우스가 목격되는데, 이를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커피하우스’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몇몇 서적에 ‘카페 키바 한(Cafe Kiva Han)’이란 용어가 이 커피하우스를 지칭하는 말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한 업소의 이름인지, 당시 카페들을 총칭하는 건지는 확실치 않다. 이보다 앞서 1475년 콘스탄티노플에 문을 연 ‘키바 한’이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1544년 콘스탄티노플에 문을 연 ‘차이하네(Cayhane)’가 세계 최초의 카페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한 물증이 더 필요하다.
정확한 연도는 확인되지 않지만, 1600년대 들어 커피는 거의 1000년 동안 갇혀 있던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난다. 구전에 따르면, 그 주역은 17세기 이슬람 학자이자 수피로 추앙받는 인도의 바바 부단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순례하고 예멘을 거쳐 귀국하면서 커피 씨앗 7개를 몸에 숨겨 왔다. 바바 부단은 커피 씨앗을 카르나타카(Karnataka)의 마이소르(Mysore) 근처에 있는 찬드라기리 힐(Chandragiri Hill)에 심었다. 그에 의해 아랍의 커피 독점은 막을 내리고, 커피는 더 넓은 지역에서 경작됐다.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커피를 대량으로 본국으로 보내면서 인도는 거대한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마침내, 유럽이 커피의 가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7세기 유럽은 커피로 들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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