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제2의 인생 도전 이주은 예비역 해병대위
4년 전 해병 장교 임무 수행 중 사고로 왼발 잃어
“소대원들 아닌 나여서 다행” 남달랐던 마인드
“상이군인 돕고파” 상담센터로 옮겨 헌신 이어가
하재헌 예비역 중사와의 인연으로 실내조정 시작
최근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서 은메달 ‘결실’
지난 12일 독일 뒤셀도르프 메르쿠르슈피엘아레나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 ‘인빅터스 게임 2023’ 실내 조정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주은이 두 팔로 태극기를 펼쳐 들며 세리머니를 펼친 것. 그는 예비역 해병대위로 군 생활 중 지뢰를 밟아 왼쪽 발을 잃은 상이군인이다. 전역 후에는 서울시 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운영실장을 맡아 상이군인들을 위한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뢰를 밟아 한쪽 발을 잃었지만, 해병대에 간 걸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해병대에 입대할 겁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해병대기념관에서 만난 이주은은 4년 전 지뢰 폭발 사고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9년 8월 29일 그는 경기도 김포시 해병대2사단 OO소초에서 소초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독립 숙영지 부대. 과거 인근 지역으로 북한군이 침투한 사례도 있어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는 이날 새벽 경계작전에 필수인 갈대제거작전을 전개하다 지뢰를 밟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무게 중심을 이동한 게 아니라 왼발이 살포시 땅에 닿는 순간 ‘펑’ 하고 지뢰가 터졌습니다. 잠시 블랙아웃 됐다가 정신 차려보니 귀에서 ‘삐~’ 소리가 났고, 몸은 날아가서 앉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폭죽 터지듯이 멀리 떨어져 나간 왼발을 보고 지뢰라는 걸 알았습니다.”
“악!” 정신을 차린 이주은은 공포감에 소리를 질렀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도 소대원을 먼저 생각했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소대원을 향해 “지뢰가 더 있을지 모른다”며 “가까이 오지 마라. 돌아가서 부소초장에게 보고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피를 뚝뚝 흘리며 남은 한 발로 껑충껑충 뛰어 혼자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지뢰를 밟은 뒤 실려 가는 동안 ‘내가 지뢰를 밟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제가 지뢰를 안 밟았더라면 다음날 소대원 중 누군가는 무조건 그 지뢰를 밟았을 거니까요.”
이주은은 2018년 해병대 학군 63기로 임관했다. 한때 해병대사령관을 꿈꿨던 그는 지뢰 폭발 사건 이후에도 군 생활을 이어가다 지난해 2월 대위로 전역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다친 상이군인들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한 것.
“해병대사령관은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전우들이 많지만 상이군인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보상받으려면 어떠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알려주는 건 당사자로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2021년 서울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러한 뜻을 전했고, 상이군인을 위한 기구인 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센터는 상이군인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상담을 비롯해 트라우마 심리상담, 사회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취업 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은은 2015년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사건 부상 장병인 하재헌 예비역 육군중사와의 인연으로 조정을 시작했다. 하재헌은 SH공사 장애인 조정팀 소속으로 2019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남자 조정 개인전 1000m PR1(선수부)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지뢰 사건으로 병원에 있을 때 일면식도 없던 재헌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락했어요. 두 다리를 잃고도 웃는 얼굴로 찾아온 재헌이를 보니 ‘내가 지금 누워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헌이를 만나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주은은 인터뷰를 마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과 군 생활 중 다친 상이군인들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모두 군인이거나, 군인이었거나, 군인의 가족입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가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많은 군인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 헌신하고 있는 덕분이라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안승회/사진=양동욱 기자
인빅터스 게임?
2014년 영국의 해리 왕자가 창설한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상이군인들을 예우하고, 그들의 화합과 재활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독일에서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은 지난 9일 개막해 16일 폐막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21개국 500여 명의 상이군인 선수가 10개 종목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우리 선수단은 양궁·사이클·탁구·실내조정·육상 등 8개 종목에 11명이 출전해 금 5개, 은 2개, 동 1개 등 8개의 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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