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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으로 여기던 혜성,행운으로 역이용 ‘왕위’ 뺏어

입력 2023. 09. 19   16:17
업데이트 2023. 09. 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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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혜성은 장보고의 친구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하는 혜성

옛사람들 불길하다며 두려워해
20세기 초 지구 종말론까지 등장

혜성 출현으로 신라인 겁에 질렸을 때
장보고, 성공 신호라며 병사들 다독여
5000명 군사로 10만 병력 상대해 대승


옛사람들은 혜성을 굉장히 이상한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장보고는 떨어지는 혜성을 보고 “혜성은 세상이 변혁한다. 즉 뒤집힌다는 뜻이다”고 말해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사진=게티이미지
옛사람들은 혜성을 굉장히 이상한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장보고는 떨어지는 혜성을 보고 “혜성은 세상이 변혁한다. 즉 뒤집힌다는 뜻이다”고 말해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사진=게티이미지



보통 ‘혜성’이라고 하면 별 같은 것이 긴 꼬리 모양을 달고 밤하늘에 나타나는 물체를 일컫는다. 옛사람들은 혜성을 굉장히 이상한 현상으로 여겼다. 모양부터 괴상한 데다 무엇보다 난데없이 불쑥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혜성을 두려워했다. 대부분의 별은 계절에 맞춰 일정한 규칙에 따라 뜨고 진다. 행성은 그보다 움직임이 훨씬 복잡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혜성은 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게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하늘에 무슨 큰일이 난 것 같았을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혜성도 규칙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핼리혜성은 약 76년마다 규칙적으로 나타났다 물러간다. 딱히 더 신비롭고 이상한 기운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혜성은 얼음과 함께 돌·흙 따위가 엉켜 있는 지저분한 덩어리로, 햇빛에 일부가 녹고 끓어오르며 튀어 나가는 과정에서 먼지 조각들을 뿜어내기에 꼬리 모양이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핼리혜성도 대략 산 하나 정도 크기인 덩어리가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일 뿐이다. 옛사람들은 혜성이 몇십 년이라는 아주 긴 세월에 걸친 규칙을 갖고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거라고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혜성은 그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혜성이라고 하면 큰 재난이나 무엇인가 나쁜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들 생각했다.

심지어 20세기 들어서도 꽤 오랫동안 사람들은 혜성이 어쩐지 불길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인식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이런 느낌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물체인 혜성이 지구 가까이 온다면 혜성이 지구에 무슨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조차 있었다.

1910년 핼리혜성이 지구에 다시 출현했을 때 벌어진 소동은 비교적 여러 매체를 통해 잘 기록돼 있다. 당시 핼리혜성을 정밀 관찰한 결과 혜성에 상당히 독특한 성분의 물질이 섞여 있다는 학설이 알려졌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혜성 성분에 독성물질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혜성이 지나가면서 그 꼬리를 지구에 드리우면 지구 곳곳에 그 독성 성분이 쏟아져 내릴 것이고, 수많은 생명체가 몰살당할 거라는 ‘지구종말론’이 돌기 시작했다. 겁먹은 사람들을 노리고 핼리혜성이 지나갈 때 버티려면 독성물질을 막을 수 있는 우산을 사라거나 방독면 비슷한 장비를 준비해 놓으라는 장사꾼들이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역사를 잘 살펴보면 옛사람들 중에도 혜성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가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혜성을 행운의 상징으로 역이용한 사람도 있었다. 혜성과 관련한 가장 화려한 일화를 남긴 인물로 ‘바다의 왕자’라는 별명으로도 친근한 신라의 장보고를 소개하고 싶다.

838년 당시 신라는 임금 자리를 놓고 진골 가문의 세력가들이 서로 피 튀기는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김명과 김우징, 두 사람의 대결이 치열했다. 다툼 끝에 김명에게 밀린 김우징은 복수를 다짐하며 도망쳤다. 그리고 그는 바다에서 세력을 키운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김명을 몰아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장보고가 ‘바다의 왕자’라고 해도 무역으로 성공한 상인에 불과했다. 칼과 활을 다루는 부하들을 꽤 거느리고 있었지만, 숫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게다가 장보고는 가난하고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다. 신라 사회에선 미천한 출신이라고 하면 얕보고 따르지 않는 사람이 많아 군사를 거느리고 지휘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그에 비해 김우징의 상대인 김명은 신라의 궁궐과 경주를 차지한 채 자신이 신라의 임금이라 주장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대단히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하늘에 혜성이 등장했다. 아마 그 혜성을 본 많은 신라인이 겁에 질렸을 것이다. 그러나 장보고는 병사들 사이에 자신감 있게 다른 의견을 퍼뜨렸다. “혜성은 세상이 변혁한다. 즉 뒤집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경주를 차지하고 있는 김명을 몰아내야 하는 김우징과 장보고 입장에선 세상이 뒤집힌다는 이야기는 자신들이 뒤집기에 성공해 이긴다는 뜻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다들 혜성을 보고 덜덜 떨고 있을 시기에, 오히려 장보고의 부하들은 큰 용기를 얻었다. 『삼국사기』에는 혜성을 보고 서로 축하의 말을 건넬 정도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장보고는 얼마 후 신라의 경주로 쳐들어간다. 이때 장보고의 군대 수는 5000명이 조금 넘는 규모였는데, 지금의 대구 지역에서 김명이 이끄는 10만 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병력을 만났다. 하지만 사기가 오른 장보고 군대는 승리를 거두고야 만다. 장보고는 신라 최고의 영웅으로 이름을 드높이게 되고, 장보고를 믿은 김우징 역시 복수에 성공해 김명을 몰아내고 임금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 이야기를 놓고 보면 혜성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별이었지만, 자신만만한 장보고에게는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 준 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장보고는 ‘바다의 왕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젊은 시절 낯선 바다를 혼자 힘으로 개척하며 온갖 고정관념을 깨면서 길을 뚫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수없이 방향을 잡아 본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 덕분에 장보고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잡다한 미신 중 별로 믿을 만한 게 없다는 점을 깨달았고, 그래서 혜성을 보고도 그렇게 용기를 낸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의 과학 연구를 보면, 마침 장보고의 생각처럼 혜성을 좋은 역할로 추정하는 이야기들이 자주 보이는 편이다.

예를 들어 혜성은 얼음덩어리이기 때문에 수분이 많은 물체이고 다른 독특한 성분도 꽤 많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먼 옛날 지구에 충돌한 혜성들이 메마른 지구에 물을 끼얹어 줬고, 생명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물질을 지구의 땅에 퍼부어 주기도 했을 거라고 보고 있다. 2016년 유럽의 로제타 탐사선은 혜성에서 ‘글리신’이라는 성분을 발견한 적도 있다. 글리신은 아미노산 영양제의 성분이기도 하다. 혜성이 하늘에서 지구에 영양제를 뿌려 줬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몇몇 과학자는 먼 옛날 여러 혜성이 지구에 떨어지는 바람에 다양한 성분이 풍부해져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혜성 때문에 지구에 생명이 탄생했고, 우리는 모두 혜성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신기하게 들린다. 그러나 아직 생명의 탄생 과정은 덜 밝혀진 점이 많기에 쉽게 단정하기는 조금 이른 상상인 듯하다. 그러나 최소한 장보고의 용기처럼 혜성을 딱히 불길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는 과학이 확실하게 밝혀냈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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