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와삶

포용의 정신

입력 2023. 09. 12   15:19
업데이트 2023. 09. 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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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혁 소령 해군1함대사령부 법사
황준혁 소령 해군1함대사령부 법사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도 인연입니다. 사람과 짐승, 모든 자연현상이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것입니다. 그 숱한 인연 중 가장 귀한 인연을 꼽으라면 무엇을 첫손에 꼽을 수 있을까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은 부모님과의 인연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과의 인연을, 사랑하는 연인은 서로를, 여러분은 군에서 만난 인연을 즐기며 살 것입니다.

불교란 어떤 종교입니까? 불교를 한두 마디 말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인식의 초점이 어디냐에 따라 마음의 종교 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옳은 소리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설명하고 정의 내리는 단면을 통해 불교의 특성을 이해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포용이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바로 받아들임의 종교입니다. 불교 전파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 포용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불교는 단 한 번의 전쟁도 없이 세계로 전파됐습니다. 바로 받아들임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신 뒤 그 깨달음의 가능성이 부처님 자신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두루 갖춰져 있는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모든 중생이 깨달음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 설법의 핵심입니다.

일체중생이 다 성불을 할 수 있다는 위대한 가르침이야말로 삼라만상과 삼천대천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섭수의 정신을 발현시키게 됐다고 봅니다.

사람과 자연, 천지 만물이 다 같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바로 불국정토 구현을 통한 일체중생의 성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산의 나무들은 키가 각각 다르고 생김새도 다릅니다. 하지만 나무들은 저토록 조용히 어우러져 살고 있죠. 이렇듯 모든 것은 허락돼 있고, 열려 있는 받아들임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 사람 또한 그렇습니다. 생김새, 자라온 환경, 습관, 개성은 다르지만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우주관이며 세계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문명의 발달로 이런 자유의 공간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보다 편리하고 배부르고 차원 높은 그 무엇을 안겨다 줘야 함에도 오히려 인간을 황폐화하고 있습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인간 개인의 염치가 상실되고 있습니다. 우주가 원래는 다툼 없는 자유의 공간임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서로를 포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은 지 오래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선과 악의 양면성을 다 뛰어넘은 곳에 진정한 자유보다 큰 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선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악을 저지르고 “선을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자기모순을 합리화하는 변명에 불과합니다. 내 옆 사람은 부처가 될 이들입니다. 이 부처가 될 사람들의 고통을 구제하는 일이 관세음보살의 자비이고 원력입니다. 마음을 맑히고 지혜의 공덕을 얻어 맺은 좋은 인연입니다. 이 인연과 공덕이 헛되지 않게 자신과 주변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남을 위해 한 번 더 자비심을 내도록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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