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한미동맹을 말하다

[한미동맹을 말하다] (16) 선영제 전 전쟁기념사업회장

입력 2023. 09. 10   13:49
업데이트 2023. 09. 2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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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걸어온 길…우리가 걸어갈 길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자 희생한 미군 장병들에 대해 신의를 지키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이번 방문의 기억과 명예를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2013년 당시 부통령 자격으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명록에 남긴 문구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쟁기념관 방문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미군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대한민국의 노력을 소개한 이가 있다. 굳건한 한미동맹의 시작점인 미군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많은 이에게 알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변화를 추진했던 선영제(예비역 육군중장) 전 전쟁기념사업회장. 그가 ‘한미동맹을 말하다’ 열여섯 번째 주인공이다.

글=배지열/사진=조종원 기자


선영제 전 전쟁기념사업회장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본관 외부 통로에 있는 전사자 명비를 가리키면서 설명하고 있다.
선영제 전 전쟁기념사업회장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본관 외부 통로에 있는 전사자 명비를 가리키면서 설명하고 있다.





전쟁기념관 세계적 명소로 알린 일등공신 2011년부터 3년간 총괄…곳곳에 손길

 
“제 모든 정성을 쏟고 그동안 쌓은 역량을 다 발휘한 곳입니다. 그만큼 지금도 애정을 듬뿍 가지고 있죠.” 

지난 8일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선 전 회장은 깊은 감회에 젖은 듯 보였다. 그는 2011년부터 3년 동안 회장으로서 기념관 업무를 총괄했다. 연건평 2만5000평(약 8만2600㎡) 규모로 1994년 개관한 이곳은 각종 귀중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하면서 전쟁의 교훈과 선배 전우들의 호국정신을 전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과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선 전 회장은 이날 전쟁기념관 곳곳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손길을 거친 게시물과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상세히 소개했다. 그가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유엔전시관. 6·25전쟁 당시 참전국·의료지원국·물자지원국의 현황을 자세하게 담은 이곳에서 맨 처음 관람객을 맞이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최초 참전 과정부터 전후 재건에까지 힘을 보탠 미군의 활동상이 다른 나라보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모든 참전국이 같은 비중으로 설명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장병을 보내고, 전사자도 최다였던 미국 관련 내용이 추가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편 이후 많은 이의 관심이 쏠렸죠. 참전용사인 찰스 랭걸 전 미국 하원의원은 방한했을 때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념관 본관 외부 통로에 있는 전사자 명비에도 미국의 비중이 크다. 워낙 이름이 많아 주(州)별로 명비가 따로 있을 정도다. 이 장소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그 대상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2013년 그를 안내한 선 전 회장은 지금도 당시 기억이 또렷하다. “자기 고향인 델라웨어주 명비에 헌화하면서 ‘아는 사람의 이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도 한 번 더 그 앞으로 가서 한참을 들여다보고는 이름을 찾아내더군요.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게 대단했습니다.”

이곳을 찾는 다른 미국인들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군 참전용사를 기억·추모하는 우리의 노력에 놀라곤 한다. 선 전 회장은 “고마움과 함께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느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전쟁기념관이 한미동맹 강화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은 선 전 회장 재임 기간에 연간 관람객 200만 명을 돌파하는 성과도 거뒀다. 세계 여행정보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서 선정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에는 2013년 3위부터 2014년 2위, 2015년에는 1위에 올랐다. 2014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 사실을 듣고는 “Excellent!(대단하군요!)”라고 외쳤다는 후문이다.

이렇듯 선 전 회장은 전쟁기념관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남정옥 전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쓴 책 『대한민국과 함께한 국군과 주한미국 70년』에는 ‘이병형 초대 관장이 기념관을 설립하여 그 기틀을 마련한 창업의 역할을 했다면, 선영제 관장은 전쟁기념관을 세계적 명소로 자리 잡게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선 전 회장은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올 때는 무심코 왔던 사람도 이곳을 나설 때는 다르길 바랐습니다. 뭔가를 느끼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과 함께 감동하고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선영제 전 전쟁기념사업회장이 국방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선영제 전 전쟁기념사업회장이 국방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미군이 훈련 임하는 모습에 많이 배워”

육군사관학교 25기인 선 전 회장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는 등 치열한 군 생활 끝에 육군참모차장을 끝으로 군문을 떠났다. 지금은 예비역 장군이 모여 있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선 전 회장은 복무 당시 미군과 연합훈련을 하면서 본 그들의 진지한 훈련 태도가 뇌리에 박혔다고 말했다. 그는 1982년과 1983년 미군과의 ‘팀스피릿(Team Spirit)’에 대대장으로, 1985년에는 30보병사단 작전참모로 참가했다. “전술차량 보닛 위에 상황판을 펼쳐 놓고 관계관 여럿이 모여 토론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기동할 때는 살짝 방심하는 것 같았는데,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돌변하더라고요. 그들의 부대 운영시스템과 사고방식, 전투 수행방식을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는 이어 “6·25전쟁에 참전한 백선엽 장군을 생전에 만났을 때 ‘한국군 장교들의 전투 수행 능력이 전쟁 당시와 비교해 갈수록 성장해 안심된다. 그 배경에는 미군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미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전쟁으로 보는 한미동맹의 중요성

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올해 선 전 회장이 느끼는 소회도 남다르다. 그는 적의 도발이 심화하면서 대내외적으로 불안요소가 많아지는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동맹의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안보 버팀목으로서 확실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안보와 번영, 평화를 위해 상호 간 긴밀한 협력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앞으로도 지속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알려야 합니다.”

선 전 회장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론이 나뉘고 힘이 없으면 외침(外侵)이 따릅니다. 지금은 굳건한 동맹의 힘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미국 같은 군사강국도 혼자서는 국가를 보위하기 어렵습니다. 위기 시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확실한 동맹국이 있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에게 한미동맹은 중요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전쟁기념관을 향한 사랑과 관심도 당부했다. “전쟁기념관에는 한미동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전시물과 게시물이 있으니 시간을 내 방문해 보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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