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군기(軍紀)와 군기(軍氣)

입력 2023. 09. 06   16:15
업데이트 2023. 09. 0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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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국군간호사관학교 육군중령
정유미 국군간호사관학교 육군중령



최근 한 온라인 방송에서 유명한 소통전문가가 본인이 강의를 나갔던 육군 부대에서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 장교가 잔뜩 기합 든 모습으로 강의를 듣고 난 뒤 개인적인 자리에서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군인에게는 두 가지가 중요한데, 그것이 군기와 사기다. 우리는 지휘관이 나타나면 군기는 쭉 올라가지만 사기가 낮아진다. 그런데 지휘관이 사라지면 사기가 높아지고 대신 기합이 빠진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군 생활 중인 필자도 그 장교의 농담이 자연스럽게 이해돼 혼자 방송을 보다가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군기와 사기는 정말 반비례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군기(軍紀)는 군대의 규율과 풍기(風氣)다. 이 중 풍기는 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오는 생활 전반에 걸친 습관을 의미한다. 사기(士氣)는 의욕이나 자신감 따위로 가득 차서 굽힐 줄 모르는 기세다. 군대의 사기는 군기(軍氣)라고 한다. 군기(軍紀)의 기(紀)에는 법칙·규칙의 의미가 있지만, 군기(軍氣)의 기(氣)에는 기운·기세의 의미가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군기(軍紀)란 법과 규정을 지키는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고, 군기(軍氣·사기)는 군의 몰아치는 기운 또는 기세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본을 경시하고 규정을 지키지 않는 군, 즉 군기(軍紀) 없는 군에게 적을 두려움에 떨게 할만한 군의 기세인 군기(軍氣)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생각한다면 군기(軍紀)와 사기(士氣)는 서로 깊이 얽혀 있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군은 전쟁 같은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집단이다. 강한 군대는 평상시 강한 군기와 높은 사기를 갖출 때 가능하다.

그리고 높은 사기는 강한 군기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군기(軍紀)는 악습이라는 오해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군은 시대변화를 따라 조직문화를 쇄신하기 위한 다양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 악습을 철폐하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은 이 시대의 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군인이 군모를 착용하지 않고, 상급자를 봐도 예를 표하지 않는 것은 군복의 가치와 상하 위계를 가볍게 여기는 행동이다. 두발 상태가 규정에 어긋나도 지적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이를 두고 군 문화가 유연해졌다거나 군의 사기가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군기(軍紀)는 강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군의 법과 규칙에 따라 스스로 바른 복장·바른 언행·바른 사고를 하는 것이다. 군의 사기(軍氣)는 즐겁고 신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휘관을 중심으로 부대가 강하게 단결하고, 상호 존중하며 협력해 조직의 목표를 한결같이 지향하고 추진하는 힘이다. 백전백승의 전승을 보장하는 높은 군기(軍氣)를 끌어내고 싶다면 무엇보다 강한 군기(軍紀)를 먼저 세워야 한다. 그리고 강력한 군의 기강은 기본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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