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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성 예상궤도 이탈…계산의 힘으로 1846년 발견

입력 2023. 09. 05   17:10
업데이트 2023. 09. 0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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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해왕성이 복수의 별이었던 시절

태양계 맨 끝 지구와 40억 ㎞ 거리
맨눈으로 볼 수 없고 망원경으로 봐야
로마신화 속 ‘바다의 신’서 이름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 각색
이상협 작가 ‘해왕성’으로 출간

태양계의 여덟 행성 중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왕성’. 이상협 작가의 소설 『해왕성』에서는 복수를 생각하는 주인공의 아득한 꿈을 상징한다. 사진=게티이미지
태양계의 여덟 행성 중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왕성’. 이상협 작가의 소설 『해왕성』에서는 복수를 생각하는 주인공의 아득한 꿈을 상징한다. 사진=게티이미지



해왕성은 태양계의 여덟 행성 중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대단히 추운 행성이다. 해왕성은 기체와 낮은 온도 때문에 많은 구성성분이 얼어붙어 있다. 그 자체의 무게는 지구 무게의 15배가 훌쩍 넘는 큰 행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해왕성은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한 19세기 중반이 돼서야 발견됐다.

40억 ㎞가 넘는 먼 곳에, 망원경으로 살펴봐야 겨우 보이는 행성이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첫 번째 단서는 해왕성보다 먼저 발견된 천왕성을 연구하던 중 나왔다.

세상 모든 물체는 자기 무게만큼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을 받는다. 태양계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 때 공전 모양과 속도가 일정한 것도 태양과 그 행성 사이에 그 무게만큼 잡아당기는 중력을 받기 때문이다. 뉴턴의 중력 법칙과 미적분학이 개발된 후 과학자들은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떤 행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면, 그 중력을 계산해 앞으로 그 행성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알아낼 수 있게 됐다.

과학자들은 천왕성이 발견된 뒤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천왕성의 움직임을 계산했다. 그런데 천왕성의 실제 움직임을 꾸준히 지켜보니 계산과 실제 사이에 아주 약간 차이가 있었다. 왜일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검토해 봐도 계산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자 몇몇 학자는 천왕성보다 더 먼 곳에 천왕성 비슷한 덩치의 또 다른 행성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상상을 했다. 사람들이 아직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꽤 큰 덩치의 어느 행성이 어딘가에 있어 중력의 힘으로 천왕성을 조금씩 당기기 때문에 천왕성의 움직임이 계산과 어긋난 것은 아닐까?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여성 수학자 메리 서머빌 같은 인물은 그런 추측을 제시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1846년이 되자 여러 학자의 계산 끝에 알지 못하던 행성이 있음 직한 위치에서 실제로 찾아낸 행성이 바로 해왕성이었다. 다시 말해 망원경으로 이곳저곳 밤하늘을 두리번거리다가 우연히 행성을 찾아내는 바람에 해왕성을 알게 된 게 아니다. 이론과 들어맞지 않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고, 그 현상을 풀이할 수 있는 생각을 해낸 뒤 종이에 숫자를 계산해 본 다음 그 풀이에 들어맞는 행성이 어디에 있는지 지목하는 방법으로 해왕성을 발견됐다. 해왕성 발견은 숨겨진 사실을 알아내는 과학이론과 계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증명한 사건이었다.

해왕성이 발견된 때는 이렇게 이미 과학이 상당히 발달한 시대였다. 그렇기에 해왕성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게 없다. 해왕성은 행성이 신비로운 기운을 갖고 있다거나 신령 같은 역할을 한다는 등 예스러운 생각이 이미 아주 엷어진 시대에 등장했다. 해왕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도 별스러운 게 없다. 그저 유럽권에서 다른 행성들에 모두 그리스·로마신화 속 이름이 붙어 있으니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과학자들끼리 새로 발견된 행성에도 ‘넵튠(Neptune)’이라는 로마신화 속 신의 이름을 붙이자고 합의해서다. 한국에서 쓰는 해왕성이란 말은 넵튠이 바다의 신이기 때문에 그 뜻을 번역한 한자어다.

그래도 해왕성과 관련된 재미난 문화가 아주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한국에선 ‘해왕성’이라는 말이 색다른 어감으로 어느 정도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한국의 소설 독자 중 적지 않은 사람이 해왕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복수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이상협 작가가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동아시아판으로 각색했는데, 그 제목이 바로 『해왕성』이었기 때문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망한 주인공이 몬테크리스토섬에서 큰 보물을 얻은 뒤 원수를 갚는 내용의 프랑스 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복수를 소재로 한 이야기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어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뮤지컬로도 계속 제작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진작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암굴왕』이라는 각색판으로 소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상협 작가 또한 비슷하게 자신만의 각색판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해왕성』이었다. 저작권에 대한 제도가 자리 잡지 않았던 시대에 볼 수 있었던 독특한 소설이다.

『해왕성』의 내용은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차이가 있다. 일본의 『암굴왕』은 일본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사건의 배경은 원래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 그대로 프랑스와 유럽 지역이다. 하지만 이상협 작가의 『해왕성』은 아예 무대를 동아시아로 옮겼다. 주인공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중국인이고, 지중해 지역의 해변을 오가며 모험을 벌이는 게 아니라 서해를 오가며 모험을 벌이는 것으로 내용을 바꿨다.

이상협 작가는 소설 제목을 멋지게도 ‘해왕성’이라고 붙였다. 이 제목엔 바다의 왕이라는 뜻도 있으면서 복수에 대해 생각하는 주인공의 아득한 꿈을 상징하는 멀고 먼 행성, 태양계에서 가장 외딴 행성이라는 의미도 있기에 운치를 더한다.

보기에 따라 ‘해왕성’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 격변을 상징하는 이름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상협 작가가 『해왕성』을 쓴 시대는 ‘해왕성’이 발견된 지 100년도 지나지 않았던 시기다. 그 시대에 ‘해왕성’이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문화, 첨단 기술을 상징하는 신기한 단어였을 것이다. 게다가 『해왕성』이라는 소설은 배경을 아시아로 옮겨 줄거리를 풀어 가면서 기술이 발전한 강대국이 기술이 뒤떨어진 약소국을 침략하고, 그래서 나라 잃은 민족들이 곳곳에 생겨나는 당시 역사의 격변에 얽힌 사연을 그 내용 속에 은근슬쩍 활용했다. 그렇다면 역사의 변화라는 소재도 ‘해왕성’이라는 제목이 가진 새로운 느낌에 맞아 든다.

안타깝게도 지금 『해왕성』이라는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중에 김내성 작가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또 다른 한국판인 『진주탑』이라는 소설을 써서 『해왕성』보다 더 크게 성공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진주탑』조차 많이 잊혔다. 일본에선 여전히 ‘암굴왕’이라는 제목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일본판으로 통하는 것과 비교하면 옛 문화를 너무 쉽게 잊는 듯한 한국의 유행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도 해 본다.

차디찬 태양계의 맨 끝, 황량한 먼 곳에 복수를 상징하는 행성이 있다니 멋지지 않은가? 오늘은 고달프고 힘들지만, 언젠가는 멋지게 성장해 보겠다고 결심할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주 저편에 자리 잡고 있을 해왕성 방향을 보며 다짐한다는 사연은 여전히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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